서너 살 즈음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 앞 공터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작은 구덩이를 한참 바라봤다.
모래 무덤 아래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운 반려동물 금붕어 여러 마리가 가만히 누워있다.
서른여덟아홉 살의 아버지는 서너 살 먹은 딸의 손을 잡고 금붕어의 ‘명복’을 기도했다.
그 어떤 목숨조차 결코 작지 않게 보던 사람,
너무 다정했던 탓에 자신이 쏟아냈던 사랑만큼 돌려받지 못할 때면 그렇게 서글퍼했던 사람,
때때로 벼락 같이 분노를 분출하는 사람,
그럼에도 주말이면 다 큰 두 딸과 아내 먹일 국과 찌개, 각종 반찬을 한 솥 가득 만들어 놓는 사람.
그게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어머니와의 첫 장면은 작은 가게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뱃속에 넣고서도 일을 쉴 수 없던 어머니.
나를 낳고서는 다 허물어져 가는 연금 매장 한편에 몇 평 되지 않는 공간을 빌려
B급 운동화를 떼다 장사했다.
서른두 살 어머니는 나를 유아차에 태워 매일 아침 자기 일터로 출근했다.
육십이 넘은 나의 어머니는 가끔 그때를 이야기한다.
미안, 그땐 먹고살기 너무 막막해서 어린 너를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거든.
어린 네가 얼마나 고생을 했니.
그러면 나는 아주 덤덤하게 대답한다. “그땐 너무 어렸잖아. 그래서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반은 진실, 반은 거짓.
생계를 짊어지고 부지런히 노동하는 젊은 어머니를, 나는 단 몇 장면만 남아있음에도
컬러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
재작년부터 근 일 년을 준비했고 작년 한해동안 기쁨으로 함께 했던 일이 있다.
어르신 자기기록 모임 '싱글생(生)글'.
할머니 여섯 분과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자기 글을 읽고 쓰고, 서로 응원, 지지, 격려, 칭찬하는 모임이다.
올초 부서이동으로 더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멀리에서나마 그 여섯 분을 응원하고 있다.
잘 이뤄가길, 꾸려가길 전심으로 기도한다.
당시 함께했던 곽 씨 어르신은 나를 보면 늘 그렇게 고맙다, 고맙다, 했다.
어르신은 십몇 년 전, 아주 간단한 눈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중 신경 손상을 입어 한쪽 눈을 영구히 못 쓰게 됐다. 의료 사고였다.
한동안은 '죽지 못해 살았었다.' 한다.
오십 년 넘게 잘 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눈을 잃고 말았으니
그때 어르신이 느낀 좌절감을, 나로서는 결코 안다, 공감한다, 이해한다, 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어르신은 글이 아닌 그림으로 자기기록했다.
"배움이 짧아 글 쓰는 게 영 자신 없어. 그래도 그림은 꽤 잘 그려.
예전에 전자회사 다닐 때, 그림으로 상 받고 그랬거든."
어떤 수단, 방법이든 관계없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어르신 여섯 분이 자기 삶을 가만히 톺아보며
'늘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진 않았어.'라고 자조하길 소망했고
누구 어머니, 누구 할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시간과 공간을 찾아 누려가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일 년간 곽 씨 어르신의 '작품 활동'을 열렬히 응원했고
그 귀한 그림 몇 점을 선물 받기도 했다.
작년 모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곽 씨 어르신은 "새로운 문이 열린 것만 같아." 라고 했다.
최 선생님 덕에 매일 그림 그려. 그림 그리려면 한참 살펴봐야 하거든.
눈이 잘 안 보이잖아. 그래서 더 잘 보고 기억해야 해.
지나가다 예쁜 꽃이 있다? 그러면 그걸 가만히 보다 오는 거야. 그리고 나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지.
색연필 말고 요즘은 수채 물감을 사서 쓰고 있어.
나는 다 늙어 갖고 이렇게 그림 다시 그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덕분이야.
사회사업 하는 사람에게 이만한 찬사가 어디 있을까.
그 말을 곱씹던 나는 그 말을 듣기 몇 달 전, 어르신이 지나가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르신은 아들딸, 손자손녀 중 몇몇이 그림으로 '먹고 산다' 했다.
어느 한 명은 만화를 그려 먹고 살고, 또 다른 한 명은 디자인 일을 한다.
또 손녀 한 명은 '손재주'가 좋다.
"손을 쓰는 데는 아무튼 타고 났어. 내년에 유학 간다 하대. 제과제빵 공부하러."
곽 씨 어르신은 아들딸, 손자손녀의 그런 면면에 대해 늘 궁금하다 했다.
'누구를 닮아 그런 걸까?'
어디에서 솟았을까. 우리 핏줄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그리고 나는 그 유래를 것만 같다.
곽 씨 어르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이제 확실히 안다.
"어르신, 저는 알겠어요.
어디에서 갑자기 솟아나고 어떻게 하다보니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다 엄마 닮고 할머니 닮아 그렇지요.
어르신의 그 귀한 면이 아들, 딸, 손자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나봐요."
곽 씨 어르신처럼, 곽 씨 어르신의 아들딸, 손자손녀처럼
나에게도 그런 '유산'이 있다.
아버지의 ‘다정함’과 어머니의 ‘부지런함’.
사랑했고 때론 미워했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 두 사람의 핏줄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보고 배운 나의 귀한 면.
그리고 나는 그 면면이 유전자 구조 깊이 박혀 있는 '천성'이길 소망한다.
다 깨지고 부서지고 모두 잃고 만다해도,
마음 한편을 꼼꼼히 뒤적이다보면 결국에는 찾아내어 손에 꼭 쥘 수 있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천성'이길,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잠시잠깐 무너지고 무뎌지고, 때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젊은 날의 두 사람을 닮아 다정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회귀하는, '천성'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가끔은 사는 게 너무 막막하고 팍팍해서, 빨리 나이 들고 싶단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서른여덟 살의 아버지, 서른두 살의 어머니 모습을 생각한다.
막막하다 못해 팍팍하고, 메말라 버렸을 때,
바스러지고 버석거릴 때마다 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유산을 만지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