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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퍼센트 Nov 16. 2024

아버지 손톱

자작시를 올리며.

 뇌졸중 파킨슨 치매 아버지입니다.

이미 여러 가지 병이 깃든 아버지의 몸입니다.

손톱을 자르거나 세수를 하는 일조차 귀찮아하십니다.

"아버지, 여기 좀 앉아 보셔요."

귀가 어두운 아버지, 큰 소리를 지르는 게 일상입니다.


 아버지는 거실에 나오면 커다란 갈색 소파에 항상 앉아서 텔레비전을 뚫어지게 보십니다.

올여름, 그 모습조차 볼 수 없어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밥 수저만 놓으면 바로 안방 침대로 가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솟아오르는 절망감에 아버지의 손을 놓아야 할 시간이 돌아왔는지 셈을 해볼 정도였습니다.


  다행스럽게 가을바람과 함께 아버지의 기운이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아침식사를 하고도 한두 시간 정도 거실에서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시니 그것만으로 눈이 번뜩하고 가슴 설레게 반갑습니다.

아버지의 양손을 쭉 펴서 손톱이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봅니다.


 그새 손톱이 고양이 발톱처럼 굽어 꼴 보기 싫습니다.

어서 잘라내야 마음이 깔끔해질 듯합니다.

"에구, 고양이가 우리 형님 하겠어요. 

손톱 좀 깎아 들릴게요."

손톱깎이를  줄 세워 놓고 아버지의 무릎 위에 신문지를 활짝 펼쳐 얹어놓습니다.


 "어어! 아녀! 나 안햐!"

갑자기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손을 휘저으며 얼굴 표정까지 찡그리고 계십니다.

이럴 때 가장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입니다.

절대 무르게 막무가내로 뻗대는 아버지의 손사래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 금~방 끝나요. 아프지 않게 살살할게요."

훅 치미는 답답한 심정을 꾹 누른 채 꼬맹이 달래듯 아버지의 마음을 부드러운 말투로 구슬려봅니다.

다행히 꿀 바른말의 효과를 봅니다.

아버지의 잔뜩 찌푸린 얼굴에  환한 빛이 얼핏 스쳐지납니다.

바로 지금, 아버지의 손톱을 깎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엄지손가락부터 하나씩 부여잡고 손톱을 깎기 시작합니다.

그새 자란 손톱이 언뜻 노란빛이 띤 것이 곱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고 싶어 하시면 눈치껏 본인 손으로 하시도록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손톱이 제법 날카롭게 뾰족한 부분은 지난번에 스스로 깎도록 한 쪽 손을 그대로 둔 탓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릅니다.

이번 참엔 어찌 된 영문인지 이렇게 많이 자랐는데도 스스로 해보려고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할 수 없이 양손의 손톱을 모두 차례대로 깎아드려야겠습니다.

한숨이 나도 몰래  확 쏟아져 나올까 싶어 숨을 크게 들이마셔봅니다.


 자칫 손톱조차도 이젠 스스로 하지 않으려 하실까 저어하는 마음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처진 살갗이 손톱깎이에 슬쩍 물려도 진저리를 치시는 통에 아주 조심스럽게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합니다.

아버지의 손은 뼈와 가죽만 남아 앙상한 나뭇가지 같습니다.

피부가 하도 얇아서 습자지처럼 금방 찢어질 듯 위태롭습니다.

너무 느리 적 거리 다간 금방 아버지의 가라앉은 변덕이 툭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하여 손톱 하나를 깎으면서도 그새 아버지의  눈치까지 슬쩍슬쩍 봐야 합니다.


 긴장한 채 열 손가락의 손톱을 자르고 나니 뚜껑까지 들어찬 쓰레기를 내다 버린 듯 가슴이 후련합니다.

이번엔 마무리, 마음 편히 손톱 끝을 부드럽게 다듬어드립니다.

"아버지, 잘하셨어요. 이제 잘 끝났어요."

깨끗해진 아버지의 손톱을 보니 절로 가슴 한편이 뿌듯합니다.

씩씩한 인사말로  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넵니다.


 점점 아기처럼 변하고 계시지만, 아직 혼자 밥을 드실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니 행운입니다.

여든 하고도 일곱,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아버지가 집에 계시니 글 쓰는 마음이 고요합니다.

이미 늙으셨으니 더 늙을 것이 없고, 이미 허물어졌으니 더 허물어질 게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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