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의 온기가 되어

by 인아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항상 사람에 목말랐다. 10살까지 살았던 동네의 골목에는 내 또래의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같은 골목에 살았던 남매와 친하게 지냈지만 그 집이 이사를 간 후에는 동네친구라고 부를만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친언니와 5살의 나이차이가 났는데 어린 시절 그 나이차이는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과도 같았다. 바쁜 엄마는 항상 어디를 가던 언니에게 동생도 같이 데려가라고 했고 언니는 억지로 데려가야 했던 나의 존재를 매우 성가셔했다. 10살 가을, 태어나 처음으로 이사와 전학을 경험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났고 그 나이대의 아이답게 토라지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은 나에겐 조금 버거운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어려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마 정처 없이 떠 도는 방랑자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항상 내 옆에 이정표처럼 서 있어 줄 수 있는 존재를 갈망했다. 안타깝게도 아빠는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고, 엄마는 멀리 있었다. 사춘기였던 언니는 동생을 챙겨야만 하는 일상을 힘들어했다. 나는 언니가 나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 환상을 품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관계에 서툰 나는 누군가를 향해 맹목적인 친절을 바랐다. 나의 친절을 단 한 사람에게 퍼붓고 그런 나의 친절에 조금이라도 보답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집으로 숨어버렸다. 누군가의 비난이나 가시 돋친 말과 눈빛을 피해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방 한구석에서 이불을 덮고 책 속으로 회피하곤 했다. 내가 사교성이 좀 더 좋은 어린이였더라도 아마 내가 원하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또래에게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또한 내가 인간관계에 서툰 것보다는 또래가 줄 수 없는 것을 그들에게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나의 서툰 관계 맺음에 대해 나 역시 나를 비난하고 탓했다. 항상 더 나은 관계들을 바라고 그런 목마름에 대해 일찍이 알고 있었다면 나의 외로움이 조금은 버틸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서투름을 탓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을 탓했다. 그들은 내 관심과 친절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욕했다. 그들에게 건네었던 내 애정의 조각들을 거두어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한테 모조리 퍼부었다. 그런 나에게 질려서 그들이 떠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준 마음을 다시 되돌려 받지 못해 내가 먼저 인연을 끊어버리는 일들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러면서 나는 항상 외롭고 외로울 존재라고 나를 인식해 갔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는 계속해서 외롭고 쓸쓸했다.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조용히 잔류하고 있을 때에는 내가 고독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색무취 무미건조의 삶을 가늘게 이어 가며 일방통행의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잔잔한 물결이라 생각한 외로움은 거칠고 폭력적인 파도처럼 날 덮쳐왔다. 팔 한번 허우적거리지 못하고 익사할 것만 같은 공포심과 마주쳐야 할 때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주기가 다가올 때마다 나는 질식할 것 만 같은 극렬한 두려움을 느꼈다. 산소 한 톨 들어갈 틈도 없이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느꼈다.



하루 종일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과 일터만 반복하는 내게 그런 반나절은 마치 여행 같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거리를 걷고 그 인파 속에서 함께 속해 있을 때는 나는 전혀 외롭거나 혼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계절의 온도를 오롯이 느끼며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는 일은 따뜻한 위로였다. 반가운 반나절의 만남을 뒤로하고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눈다. 서로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서러웠다. 서럽다기보단 쓸쓸했다. 쓸쓸했다기보단 외로웠고 외롭다기 보단 고독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들었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울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난 집에 갈 때까지 날 고통스럽게 하는 그 감정들을 펑펑 내뱉었다. 내일이 되면 나는 다시 잔잔한 외로움의 물결 위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분출하는 감정을 쏟아내 다시 차곡차곡 내 안에 정리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외로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부당함도 나의 것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벗어날 수 없는 거라면 그 감정도 모두 수용하기로 했다. 누군가 오면 반갑게 맞이했고 떠난다면 섭섭한 마음을 애써 꽁꽁 뭉쳐버렸다. 집에서 아이와 3년을 씨름하다 보니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아주 작은 외향성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과도 서슴없이 얘기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건넨다면 대답 이상의 TMI를 방출하기도 했다. 그만큼 내 안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들이 쌓여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터져 나와 날 삼키지 않도록 조금씩 흘려보내고 싶었다. 내가 흘려내는 이야기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답장을 받기를 바랐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려 계속 노력을 이어갔다. 나로서는 그런 노력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다. 연결되지 못하는 수많은 인연을 뒤로하고도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사람을 그리고 나를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을 애타게 찾았다.



10대의 나보다, 20대의 나보다, 30대의 나와 소통해 주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은 참 감사한 일이다. 절대 내가 서투르고 이기적인 게 아니었다고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고 상처받았던 나를 자위한다. 혼자였던 시간들이, 아이를 낳고 엄마로 살고 있는 시간들이 날 조금은 깊고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런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그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시간을 적립해 나간다. 적립된 시간들은 우리에게 젊은 날의 우정보다 더 진하고 성숙한 감정의 여운을 전해준다. 그들과 나는 서로 연대하며 자신만의 나이를 지나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왔던 모양도 제각각이었던 우리들은 서로를 멘토 삼아 걸어 나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의무감과 책임감의 연속인 나날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농담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준다. 그 위로와 농담은 한 잔의 술보다, 한 개비의 담배보다, 한 알의 항우울제보다 더 톡톡한 효과로 서로의 존재감을 증명해 준다.



가끔씩 결핍된 마음의 습관들이 비뚤어진 모습으로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자꾸만 나에게 도달하는 그것들의 양을 가늠하는 나 자신을 인지하며 부끄러운 수치심이 불쑥불쑥 돋아난다. 그럴 땐 의도적으로 키의 방향을 나에게 돌린다. 내 마음 한 지점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나만의 중심을 잡아본다. 경솔하지 않게, 유치하지 않게, 꾸미지 않고 진실되게, 나와 너의 감정을 모아 자그마한 온기를 만든다. 그 온기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 한 달, 일 년이 무탈하게 유유히 흘러가길 기도한다. 내가 당신의 옆에 있을 수 있음을, 당신이 나의 옆에 있어줌을,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인연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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