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큐어모피즘과 플랫 디자인.
과거 스마트폰 앱 아이콘들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오늘날 앱 아이콘들과 비교해보면 꽤나 투박하게 생겼다고 할 수 있는 생김새를 하고 있죠. 그런데 저렇게 투박하게 생긴 아이콘들이 당시에는 굉장히 트렌디 한 생김새의 아이콘들이었습니다.
당시 아이콘 디자인의 트렌드는 기존에 있던 물건이나 사물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이게 아이콘으로 녹여내 사람들이 아이콘만 보고도 “이 앱은 이런 기능을 하겠구나”라고 예측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죠.
이렇게 사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아이콘에 담아내는 기법을 스큐어모피즘이라고 칭하게 됩니다.
스큐어모피즘은 그리스어로 도구를 뜻하는 스큐어(Skeuos)와 형태를 의미하는 모피(Morphe)를 합친 단어로 당시 이런 스큐어모피즘 형태의 디자인이 많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활발해지고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죠.
스마트폰의 보급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앱들이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앱 아이콘을 실제 존재하는 사물과 최대한 비슷한 생김새로 만들어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도 앱의 용도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스큐어모피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옛날 인스타그램 아이콘과 유튜브 아이콘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공유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폴라로이드 모습을 한 아이콘 형태를 취했고, 유튜브는 영상을 시청하는 공간이었기에 옛날 브라운관 TV의 모습을 보여주었죠.
아이폰의 옛날 전화번호부, 계산기, 나침반 아이콘들도 이런 스큐어모피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과거 삼성 갤럭시에 탑재된 앱 아이콘들의 모습들만 보더라도 어떤 앱이 어떤 기능을 할지 바로바로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아이콘 디자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스큐어모피즘은 단순히 앱 아이콘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 UI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과거 ibooks가 나무로 된 책장 모습의 UI를 보여주었었고, 아이폰의 음성녹음 앱도 실제 아미크와 닮은 모습의 UI를 사용했으며, 나침반 앱 역시 실제 나침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런 스큐어모피즘이 장점만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데요, 실제 사물을 기반으로 아이콘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콘 디자인이 나올 수 없고 작은 아이콘 안에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하니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애플에서 스큐어모피즘 스타일을 밀어줬던 이유는 역시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컸습니다. 잡스가 이런 스큐어모피즘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고 난 뒤, 애플 내부에서 이런 스큐어모피즘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특히 애플의 디자이너였던 조나선 아이브는 이런 아이폰의 스큐어모피즘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 했죠.
어쨌든 스큐어모피즘이 초창기 큰 유행을 끌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큐어모피즘 스타일의 앱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스마트폰과 디지털 세상에 이제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사실적이게 생긴 앱 아이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앱이 어떤 기능을 할지, 이제는 다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점점 업계에서도 스큐어모픽한 디자인보다 조금 더 단순하고 심플하게 생긴 플랫 디자인 아이콘을 선호하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윈도우 8에서 메트로 UI를 이용한 플랫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애플은 2013년 iOS 7 업데이트를 통해서 기존 스큐어모피즘 디자인을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플랫 디자인 UI를 선보이죠.
오늘날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앱들을 당장 살펴보더라도 현재는 플랫 디자인만 살아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플랫 디자인도 등장한 지 벌써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앱들의 다자인이 너무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해외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우리가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나? 모든 로고들이 똑같아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을 가진 기사였죠.
해당 글에서는 오늘날 아이콘 디자인 트렌드가 검은색 바탕의 흰색 로고라는 겁니다. 엑스, 우버, 틱톡, 2023년에 출시한 쓰레드까지. 생각해 보면 정말 검은색 바탕의 흰색 아이콘들이죠?
꽤나 그럴싸해서 제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들을 좀 찾아봤어요. 국내 앱에서는 무신사, 크림, 핫선글라스, 웍스아웃, 29cm, 스윙, 카카오웹툰 등 블랙 앤 화이트 스타일의 앱들은 꽤나 많았습니다.
해외와 국내 앱들을 찾아보면서 약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리브랜딩을 하거나 새로 론칭하는 경우에 이런 아이콘 스타일을 많이 가져가더라고요. 예를 들면 엑스는 파랑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트위터에서 엑스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이 된 앱이고 기존에 트위터를 상징하던 색인 하얀색과 파란색에서 검은색과 하얀색이라는 엄청난 색 변화를 주었죠?
또 우버는 2016년에 한 번 바꿨었던 로고를 다시 2018년에 로고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블랙 앤 화이트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변화를 준 케이스이구요. 쓰레드는 2023년에 출시한 얼마 안 된 신생 앱이죠.
카카오 웹툰의 경우도 2021년 다음 웹툰에서 카카오 웹툰으로 대대적인 리브랜딩이 이루어진 앱이기도 합니다. 또 주황색 배경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사운드클라우드마저 최근에 블랙 앤 화이트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로고를 바꾸었는지 사운드클라우드 측에서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사운드클라우드마저 블랙 앤 화이트 아이콘으로 바꾸었죠.
따라서 리브랜딩을 시도하는 브랜드이거나 해당 브랜드에서 새롭게 출시하는 앱의 경우 진지한 분위기와 세련되고 깔끔한 무드를 뽐내기 위해 이런 블랙 앤 화이트의 정적인 앱 아이콘을 채택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이렇게 리브랜딩을 하면 '우리 브랜드가 변화를 일으켰다!'라는 시각적 정보를 유저들에게 주어야 하는데, 블랙 앤 화이트 색 조합이 뽐내는 정제되고 고급스러운 무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중립적이고 좋은 색이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들에서 이런 스타일을 많이 가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반대로 국내 앱들은 조금 재미있는 공통점들이 있었습니다.
국내 패션 쇼핑몰 앱들이 이런 블랙 앤 화이트 아이콘 디자인을 많이 가져가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무신사, 크림, 핫선글라스, 웍스아웃, 29cm, 72타임, 패션후루츠, 브랜디, 멜리즈, W 콘셉트 등, 정말 많은 패션 쇼핑몰 앱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아이콘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대 플랫 디자인 시대에서 이미 예전의 죽어버린 스큐어모피즘이 살아남아 있는 공간이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DAW 소프트웨어입니다. 흔히 작곡을 하거나 음향 엔지니어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죠.
다양한 VST 플러그인들에서는 여전히 스큐어모픽한 UI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하드웨어들을 그대로 복각한 플러그인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앱 아이콘에서는 플랫 디자인에게 밀려났지만 이모티콘 부분에서는 꽤나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스큐어모픽한 이모티콘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큐어모피즘 아이콘에 이어 플랫 디자인, 그 이후에는 어떤 트렌드가 자리 잡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