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역사가 담긴 회사의 매력적인 이야기들.
1926년, 스웨덴 엘름훌트에서 태어난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는 어렸을 때부터 사업의 재능을 보이던 아이였습니다.
그는 5살 때 고모의 도움을 받아 스톡홀름에 있는 한 가게에서 성냥을 대량으로 구매해 자신의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성냥을 팔았고 11살에는 자신이 번 돈으로 자전거와 타자기를 구매했으며 14살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시계, 펜, 직접 잡은 생선들을 판매하며 돈을 벌었죠.
그러다 그가 17살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에게 받는 용돈을 모아 창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데 1943년 그는 자신의 성과 이름에서 I와 K를, 그가 태어나서 자랐던 농장의 이름 엘름타르드(Elmtaryd)의 E와 그의 고향인 스웨덴의 도시, 아군나리드(Agunnaryd)의 A를 합쳐 IKEA라는 이름의 회사를 창업하게 됩니다.
이케아는 초창기에 시계, 스타킹, 넥타이, 양말과 잡화등을 우편으로 판매해 수익을 얻으며 1인 기업으로써 성장하게 됩니다. 1947년 잉바르 캄프라드가 21살이 되었을 때 군대에 입대하게 되면서 IKEA의 성장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만 잉바르 캄프라드는 군대에서도 자신의 사업을 멈출 생각이 없었죠. 근무가 끝난 후에는 사업을 해도 좋다는 허가를 상관에게 받아내면서 자신의 회사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2년의 군 생활을 마친 뒤 잉바르 캄프라드는 생활용품만이 아닌 가구, 액자까지 판매하며 사업을 확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고향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케아에 들어오는 주문을 받아 제품을 포장하며 평소 난독증으로 인해 장부 정리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던 그를 위해 부모님이 대신 회계 일도 도와주며 가족과 함께 이케아를 꾸려나갔죠.
이케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면서 일손이 필요해진 잉바르 캄프라드는 1952년 이케아의 첫 직원, 스벤예테 한 손을 채용하게 되며 둘은 회의를 통해 이케아의 미래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한 가지 하게 되는데요. 바로 경쟁이 과열된 잡화점 스타일의 사업을 그만두고 전문 가구 사업을 하자는 결정이었습니다.
잉바르 캄프라드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스웨덴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주택 100만 가구 건설을 추진했었기 때문인데, 주택의 확산은 곧 가구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믿었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가구 전문점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스웨덴 내에서는 카탈로그를 통해 가구를 주문하던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케아는 이와 다르게 가구를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게 1953년 가구 전시장을 고객들이 방문하기 편한 기차역 인근에 설치하게 되고 이는 오늘날 이케아에서 볼 수 있는 쇼룸의 전신이 되었죠.
잉바르 캄프라드는 가구 사업을 시작한 뒤로 계속해서 한 가지 문제만을 생각해 왔습니다.
"부피가 크고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선택한 이케아의 가구를 파손되지 않고
고객들에게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던 이 주제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해결되게 되는데요 1951년 이케아에서 근무하고 있던 디자이너인 길리스 룬드그렌은 이케아 카탈로그에 쓰일 테이블의 사진을 찍기 위해 이케아의 테이블 제품군을 차 트렁크에 넣고 촬영 스튜디오로 이동해야 했었는데 부피가 크다 보니 테이블이 손쉽게 차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았죠.
답답했던 길리스 룬드그렌은 탁자에 달린 다리 4개를 분해한 뒤 상판과 다리를 따로따로 상자에 넣어 부피를 최소화했고, 이를 목격한 캄프라드는 이케아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케아의 제품들도 전부 조립식으로 판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구의 부품들을 평평한 상자에 담아 배송하면 고객이 직접 집에서 조립하는 일명 플랫팩 패키지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1953년 이케아에서는 최초의 플랫백 가구인 DELFI, KÖKSA 및 RIGA 테이블을 선보였고 1956년 나뭇잎 모양의 선반인 Lovet을 공개하면서 오늘날의 이케아 조립식 가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가구를 포장한 상자가 납작해짐에 따라 사이즈도 작아지고 물류비용까지 줄일 수 있었으며 고객들이 가구가 들어있는 박스를 직접 승용차를 통해 집으로 가져가게 됨에 따라 유통 비용, 운송 비용, 창고 비용까지 크게 줄이게 되면서 이케아의 가구들은 이전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죠.
베스토, 피엘보, 쇠데르함, 스모예라 등...
이 이름들은 모두 이케아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대표적인 가구들의 제품명들입니다. 외국인들도 읽기 힘들어하는 이 제품명들에는 사실 이케아의 초창기부터 시작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는데요.
이케아의 설립자였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난독증이 있어 자사의 제품들에 붙여진 제품코드나 번호를 쉽게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의 제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제품에 지역 이름이나 사람 이름, 형용사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스웨덴 언어로 간단한 이름들을 지어주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이케아 제품들에게 읽기 힘들지만 독창적인 이름들이 붙게 된 것이죠.
평균 2천 개에서 3천 개 정도의 신제품이 출시되는 이케아에는 신제품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팀이 따로 존재한다고 하는데 작명팀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어느 정도의 규칙을 가지고 신제품들의 이름을 정한다고 합니다.
스펠링은 4글자에서 12글자 사이로 정한다고 하며 소파, 책장 가구들에는 스웨덴 지명을 가져와 이름을 지어준다고 하고 의자와 책상은 남자 이름, 커튼과 천은 여자 이름에서 가져온다고 하죠.
또 러그에는 덴마크의 지명, 식탁과 의자는 핀란드 지명을, 침실과 현관 가구에는 노르웨이 지명을 붙여주고 욕실 용품에는 강, 호수의 이름을, 침구류에는 꽃, 식물, 보석의 이름들을 붙여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