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의도한 아름다운 곡선
애플 제품을 사용해 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죠. 애플만의 갬성이 있다고. 애플이 워낙 마케팅과 광고를 잘하는 회사이기도 하고 제품들간의 연동성도 뛰어나 애플만의 생태계를 구축한 것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단순히 애플의 마케팅과 연동성에만 혹해서 '애플 갬성'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보고 애플만의 갬성과 애플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애플만의 곡선 디자인에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이 애플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합니다.
아이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를 iOS라고 부르는데, iOS 6 버전까지 스콧 포스톨이라는 엔지니어가 iOS 개발 총괄을 담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콧 포스톨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차린 넥스트라는 회사 때부터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했던 엔지니어로 넥스트가 애플에게 인수된 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자연스럽게 애플에 입사하게 된 엔지니어이기도 하죠.
애플에 입사한 스콧 포스톨은 이후 맥 OS 개발에 참여, 2007년 애플에서 공개한 아이폰에 탑재되는 첫 번째 iOS 개발에도 참여하게 되죠. 또 사용자들이 원하는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된다고 스티브 잡스를 설득해 앱 스토어 제작을 이끌어낸 장본인으로 스콧 포스톨은 애플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엔지니어가 되죠.
잡스가 포스톨이 아플 때 개인 침술사도 보내줄 정도로 잡스가 굉장히 아꼈던 엔지니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애플에서 근무하고 있던 조나선 아이브라는 디자이너와 큰 충돌을 겪게 됩니다. 바로 아이폰 4 출시 당시 터졌던 안테나게이트 사건 때문인데요. 아이폰 4를 잡고 통화할 때 통화 수신이 약해져서 통화가 반복적으로 끊기게 되는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처음에 포스톨은 아이폰 4의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코드를 뜯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소프트웨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이리저리 문제가 뭘까 찾아보다가 결국 조나선 아이브가 아이폰 4에 적용시킨 디자인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조나선 아이브는 아이폰 4를 디자인할 때 더 얇고 더 가벼운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금속 안테나를 아이폰 가장자리에 위치시켰고, 휴대폰을 잡았을 때 이 안테나가 가려지게 되면서 통화 품질에 문제가 일어났던 것이죠.
사용자들 사이에서 통화 수신 문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하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4 사용자들에게 통화 문제를 해결해주는 케이스를 제공하게 되지만 당시 포스톨은 이러한 아이폰 4의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비판합니다.
조나선 아이브는 그의 비판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브는 애초부터 포스톨이 산업 디자인과는 맞지 않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이브는 평소 3점 곡선을 사용하고 있던 포스톨의 아이폰 앱 디자인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아이브를 애플의 소프트웨어 디자인 회의에 참여시키지 않아 본인이 직접 애플의 디자인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없었죠.
그래서 아이브는 모든 것을 갈아엎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그 기회는 iOS 6 버전 업데이트와 함께 등장한 애플 지도로 인해 찾아오게 됩니다.
오늘날에야 애플에서 직접 만든 애플 지도가 익숙하시겠지만 iOS 5 버전까지 아이폰에는 자체적으로 만든 지도 앱이 없었고 구글 지도를 기본 앱으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애플과 구글은 협력 관계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나 포스톨이 ‘지도 2012’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애플만의 지도 앱을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iOS 6 버전과 함께 애플 지도가 기본 앱으로 탑재되게 됩니다.
공개와 함께 많은 관심을 받은 애플 지도였지만 너무나도 많은 오류와 정확도에 대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공개한 2012년 최악의 실패작 1위에 애플 지도가 뽑히는 등, 애플 지도 개발을 책임졌던 포스톨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는 또 애플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고 난 뒤 팀 쿡이 CEO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팀 쿡도 애플 지도로 인해 생긴 위기를 이겨내야 했죠. 팀 쿡은 iOS와 애플 지도 개발의 책임자였던 스콧 포스톨의 집을 직접 찾아가 퇴직금을 보여주며 포스톨에게 서명을 요구하게 됩니다.
포스톨은 팀 쿡에 의해 사실상 애플에서 해고되었고 팀 쿡은 조나선 아이브에게 그가 그토록 원했던 애플의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임명하게 됩니다. 아이브가 그토록 원했던 애플의 총괄 디자인을 책임질 타이밍이 찾아온 것이죠.
소프트웨어 디자인 책임을 맡게 된 아이브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존 iOS의 디자인을 전면 개편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iOS 7 버전이죠.
기존 스큐어모피즘 디자인의 iOS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미니멀 디자인으로의 변화를 시도합니다.
당시 타사는 물론 iOS 6까지 사용하던 앱 모서리 스타일은 둥근 사각형(Rounded Rectangle)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모서리의 곡률이 일정하게 변화하지 않고 완만히 변화하게 만든 Squircle 디자인으로 기존 모서리 곡선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곡선 디자인을 iOS 앱들의 모서리에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닌 아이폰 모서리에도 똑같이 적용시켜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통일감을 이뤄냈습니다.
조나선 아이브가 선택한 이 곡선 디자인은 오늘날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모든 애플 제품의 내부와 외부에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제품들이 깎여있는 모서리부터 시작해서 iOS 앱의 모양, 제어 센터, 폴더, 알림, 키보드, 위젯, 심지어 맥북 키보드와 베젤 모서리, 심지어 아이폰 카메라 섬에도 이 곡선 디자인이 들어가 있어 모든 애플 제품들에서 이 곡선들을 찾을 수 있죠.
우리가 애플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이 '애플 갬성'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곡선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아우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