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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스트로그 Aug 12. 2024

영어 퀴즈를 내는 네살 아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어느 날 밤,  아이가 고열로 힘들어해서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에 갔습니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해열 주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주사 바늘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심지어 찔릴 때도 아이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어요.

울 힘도, 무서워할 힘도 없었던 거죠.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행히 주사를 맞고 나서 열이 조금 내리자, 아이는 원래의 밝고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저에게 영어 단어 퀴즈를 내기 시작했어요.

요즘 퀴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영어퀴즈는 처음이었죠. 


빛 : 엄마, 꽃이 영어로 뭔지 알아?

저는 재미있게 해주려고 일부러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엄마 : 글쎄, 음... 뭐지? 라워?"

빛 : 응? 라워가 뭐야? 라워가 아니라!

아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 아, 맞다. 플라워(Flower)!" 제가 답했습니다.

빛 : (동그라미 손모양을 하며) 딩동댕!

이후 과일 영어 단어 퀴즈가 계속되다가 아이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빛 : "그럼 '속상하다'가 영어로 뭔지 알아?"

이 질문에 저는 갑자기 막혀버렸습니다. '속상하다... 음, 뭐지?' 그리곤 '아니, 속상하다는 표현을 정말 아는거야? 라는 생각도 이어졌죠. '

제가 고민하는 동안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빛 : I'm sad.


아.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 기계적으로 영어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Sad'를 단순히 '슬프다'로만 생각했습니다.

초중고 국내에서 영어를 배운 저는 한국어-영어 1:1 매칭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한국어 표현을 영어로 말을 하려고 할 때, 기계적으로 하면 매칭이 안되는 표현도 있고 어색해지기도 합니다.

그럴때는 풀어서 생각해야지 하곤 하는데, 익숙해지는데 연습이 필요하죠.

 '속상하다'도 상황에 따라 슬퍼 속상할 떄는 'sad', 화가나 속상할 때는 'upset',  실망스러울 때는 'disappointed'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튼, 아이를 별도 영어유치원이나, 영어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는 않는데요. (한글도 아직이라)

다만 책은 읽어주려고 하고, 영어는 자연스럽고 즐겁게 노출을 시켜주려고 영상을 영어로 보여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영상을 보며 맥락상 단어의 뜻을 유추하기 때문에, 

아주 쉬운 단어들은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습득하는구나 싶더라구요.

'엄마 ouch(아얏)은 잔디 밭에서 뛰다가 넘어져서 아팠을 때 쓰는 거야. ' 이렇게요.  


그런데 문득 아이가 왜 갑자기 영어 퀴즈를 내는지 생각해보니, 

최근 남편이 영어 시험을 준비하느라 운전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단어와 리스닝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날도 아이 침대 옆에서 단어를 외우고 있었죠. 

아이가 아빠가 옆에서 영어로 블라블라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영어퀴즈놀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어플로 5분씩 정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그걸 볼때면 아이도 종종 자기도 하겠다고 합니다.

뭔가 놀이처럼 따라해보려고 하는거죠.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아이도 '뽀로로 코딩컴퓨터'를 하겠다고 옆에 앉아서 하기도 하구요.


아이가 엄마아빠가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구나를 점점 더 느끼면서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볼땐, 화면은 내려놓고 이어폰으로만 듣곤 합니다.

그래도 어쩌다 아이가 엄마가 영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자기도 텔레비젼을 보겠다고 하지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라는 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우리 자신만의 소중한 이야기와 온전히 누리는 삶을 응원합니다. Live D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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