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 로베르트 발저 (1908)
오 이 작품! 읽기 전 기대와 다른 내용이었으나 감탄할만 한 내용이 참 많았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소전서림 9월 고전작품 서평단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하인학교'가 궁금해서 고르게 되었다. 하인학교를 배출하는 학교는 어떤 것을 가르칠까?
이 작품의 제목만 보고 예상했던 내용은 '하인학교'이니 인간이지만 인간의 존중은 없는, 기계나 동물같은 비참하고 처절한 취급을 받으나 당하는 본인은 인간이어서 그 간극에 괴로워하는 아주 무거운 내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내용은 무척 심플하고 많이 무겁지 않았다. 배경이 '하인학교'이니 배우는 내용이 비인간적인 것들도 많으나 현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중의 모습과 무척 많이 비슷하여서 씁쓸하긴 하나 크게 놀랍지 않고 <1984>가 떠올랐으나 그만큼 어둡진 않았다.
주인공 야콥은 주 의회 의원 아들인데 스스로 인생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하며 하인학원에 들어간다. 학원에는 하인으로서 정말 완벽하여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크라우스라는 친구를 만나고 다른 친구들도 만난다. 이 학원은 교사들이 있긴 있으나 수업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벤야멘타 원장의 여동생 리자 벤야멘타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학생들은 그녀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기본적으로 반항기도 있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의 야곱은 초반에 적응하기 좀 힘들어하나 곧 아주 잘 적응한다. 학원은 야콥을 마지막 학생으로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았고 리자는 몸이 아파서 죽고 만다. 학생들은 모두 일자리를 찾아 나가게 되고 다른 학생들과 달리 영민하고 깊이 사고하는 야콥에게 벤야멘타 원장은 자신과의 사막여행을 제안하고 야콥은 그것을 수락하여 벤야멘타 학원은 문을 닫고 둘이 함께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솔직히 스토리 자체는 임팩트 있는 큰 사건도 많지 않고 재밌는 이벤트도 거의 없다. 야콥이 일기장에서 끄적인 글들로 나열하는 것처럼 글이 이어지는데 야콥의 이야기에 감탄이 나올만한 것들이 많다.
야콥의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진정한 의미들을 잘 파악했으며 그 가치도 잘 알고 있었다. 타인은 물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장점과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도 잘 파악한다. 크라우스에 대한 관찰이 꽤 많이 나오는데 그를 엄청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그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라 하는 건 처음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그 내용들을 계속 따라가서 읽어보니 크라우스의 충직하고 숭고한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나 야콥 자신은 그런 기질을 갖고 있지 않고 그런 자기를 크라우스는 받아들을 수 없어서 자꾸 화를 내는 데 그 때 그가 더 그다워 보이게 하는 모습이라서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악한 본성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 재밌어하는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야콥을 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력> 요조의 모습이 떠오른다. 둘 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통찰력이 정말 뛰어난다. 하지만 둘 다 그렇게 알기만 할 뿐 그 능력으로 자신의 상황을 구원하지 못한다. 요조는 정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도록 막 살았다면 야콥은 그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자발적으로 하인으로 살기로 마음먹고 절대 그 이상의 삶을 살지 못할꺼라는 생각을 하는 걸로 봐서는 역시나 통찰력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야콥은 벤야멘타 원장과 새로운 삶을 시작이라도 했으니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야콥의 통찰력에서 가장 감탄할 부분들은 이중성을 꿰뚫어본다는 것이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내 속에서 억눌러버려야 하는 것,
그런 것이 내게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억눌린 것, 그것은 억누름을 통해서 더 고통스러워지지만,
동시에 보다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래, 맞다. 난 기꺼이 억눌리고 싶다.
P. 117
인간의 본성에 대해 예리하게 이해하고 잘 표현하고 있는데 여러 내용이 성경의 내용 ,특히 '로마서'가 생각날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내가 헤르만 헤세 글을 보며 감탄했던 그 부분! 인간의 본능에 숨겨있는 이중성을 알아채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등 이미 많은 작가들이 로베르트 발저에게 큰 찬사를 보내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읽어보면 정말 그랬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본질을 캐치해서 풀어내는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책은 무척 얇은 편(p.184)이나 인간의 본성,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읽고 나서 결코 얇은 책을 읽은 것 같지 않은 큰 묵직함이 있다. 서평단 활동하다가 정말 제대로 물건을 건진 기분이다. 본질적인 것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이 가득한 책 <벤야멘타 하인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