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나에게 - 다른 듯 닮아있는
다니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유화를 배우면서 꼭 그려보고 싶었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왜 그리고 싶었는지 거창한 이유도 없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고, 이론적으로 관련 책들을 섭렵했거나 전시회를 꼬박꼬박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다.
그냥 색 하나하나, 각각의 붓 터치가 퍼즐의 조각처럼 물 흐르듯 하지만 강렬하게 조화를 이룬 느낌이 좋아서였다.
아무리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열정을 쉽게 훔치는 것 같아 모작에 대한 껄끄러움이 있었지만, 이 그림만은 꼭 그려보고 싶은 이유가 됐다.
'별이 빛나는 밤' 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라고 한다. 실제 풍경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기억을 살려 그린 것이라 해석된다고.
그러고 보니 별의 형상들이 살짝 과장된 듯, 정적이기보다는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터치 하나하나를 이어갈 때마다, 발작의 고통 속에서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그림 그리는 능력에 대한 애착이, 그를 꿈꾸게 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오래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처럼 꿈꾸게 하는 무엇이, 나에게는 해질 무렵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별이 빛나는 밤' 을 밤이 아니 낮, 정확하게는 '노을지는 오후' 로 표현해 보고 싶다고 선생님께 제안했고, 다행히 선생님도 흥미로워 하시며 알맞은 색감에 대해 의논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어릴 적 해질 무렵의 노을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연의 알람임과 동시에 엄마의 저녁식사 준비를 흘깃거리며 주방창으로 보던 편안함이었다.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희석된 붉음' 이었다.
어른이 되어 직장인 이었을 때의 노을은,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의 나를 마감하는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 가까워옴에 대한 흥분이고 열정이었다.
기억을 되감아보니 고흐를 꿈꾸게 했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이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이전에는 그저 바쁘고 피곤했던 하루의 열정을 식히는 '냉정의 시간' 일 뿐이었더라.
지금은 아이를 재우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또 다른 '열정의 시간' 이 됐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사실은 무한 반복되는 냉정과 열정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냉정은 열정의 식어감을, 열정은 냉정의 끓어오름을 이야기한다. 항상 식어있어도 안되고, 항상 끓어오를 수도 없다.
깜깜한 밤하늘은 누군가에게, 특히 예술가들에게 열정을 있는 힘껏 끌어낼 수 있는 시작의 시간이 된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 있어 별이 빛나는 밤이 온다.
이 밤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피곤함과 졸음이 나의 열정을 식히려 하는 것처럼.
결국은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열정을 식히고 그냥 잠이 들지, 충분히 끓어올라 자연스레 식기를 기다릴지.
냉정과 열정을 자연스레 오가는, 한곳에 너무 머물러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고싶다.
다른 듯 닮아있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futurewave님의 댓글을 보고 음악을 추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