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말한다.
"내가 옆에 남겨 놓았던 오렌지는 유일하게 남은 것이어서 그 효과가 대단했다네. 그러나 로테가 옆에 앉은 그 염치없는 여인네에게 몇 조각 나누어 줄 때마다 내 가슴은 찢어질 듯했다네."
오렌지가 한 개 있든, 두 개 있든 그 효능에는 별 차이가 없으므로 '대단함'에 관여하는 것은 오렌지가 아니라 사람의 심리뿐이다. 물건의 가치는 성능보다 상대적 희소성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로 그 오렌지가 대단해진 이유는 유일하게 남았기 때문이라고 괴테는 적는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이 슬프며 아름다운 이유는 그 오렌지가 한 개뿐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베르테르 자신의 일부이며, 또한 독자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로테의 옆에 앉은 여인네는 잘못이 없다. 있다면 로테에게 오렌지를 건네받은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베르테르는 자신의 사랑에 눈이 멀어 로테의 사랑스러운 점을, 바로 그 자신이 사랑스러워했던 선한 면을 미워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로테에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애꿎은 여인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질투한다. 연인의 헌신적 특성이 좋지만 그 특성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오길 바라는 심리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만한 애달픈 경험이다.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아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그 이유로 미친 듯이 아프다."
조각으로 떼어줄 때마다 미친 듯이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가장 정직한 비유다. 따라서 이전문장으로 돌아가 오렌지의 가치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 오렌지는 희소성 있는 단 한 개의 오렌지에서 누군가의 가슴으로 재정의된다. 베르테르는 흠모하는 이에게 자신의 가슴을 떼어줬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평소 그녀 자신이 그러하듯 타인을 위한 오렌지일 뿐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특별하게 안착하길 바라는 베르테르의 결심은 특별하지 않은 방식으로 무너지고, 베르테르는 그 사실을 깨닫기에 분노로써 절규한다. 괴테는 사랑에 아파본 자만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적은 것이다.
다시,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일기처럼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을 글도 있고, 어쩌다 보이는 것을 상정하는 글도 있으며, 명백히 대상을 지정하여 읽히기를 희망하는 글이 있다. 내가 지향하는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하면서도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사유를 샘솟게 하는, 생각의 빈틈을 찾아 불편한 씨앗을 흘려 넣는 것이 목적인 글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글은 1차적으로 보물상자 같아서 열림과 동시에 탄산 같은 호쾌함을 준다. 그러나 그 뒤편의 숨겨진 가시까지 씹어 먹어야 단단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진정 영양가 있는 글이 된다.
나는 설명이 적은 글을 쓰고 싶다. 설명이 가미된 글은 설명으로 인해 고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은 인도의 특성을 지녔지만 동시에 유도의 특성도 지닌 것처럼 눈앞의 안내표지를 외면할 용기는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고전문학이 오랜 기간 살아남는 이유는 언제나 그것이 가장 새롭기 때문이며 자신의 옳음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의 지평을 깨부수기 위해 표현의 설명은 최소화되어야 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만이 자리에 들어차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