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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낙타 Oct 17. 2024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네이버 인명검색란에 최.인.호 석자를 입력하면 야구선수 최인호가 가장 먼저 나온다. 두번째로는 전 국회의원 최인호. 세번째에 가서야 등장하는  우리의 작가 최인호.  우리의 수준이 이렇다.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됐다해도 달라진 게 없다. 나도 야구광이지만 그래도 섭섭하다. 70년대 한국 청년문화를 선도했던, 70년 80년 90년대를 관통하며 늘 한국 최고였던 작가. 1975년부터 402월 동안 월간 샘터에 '가족'을 연재하며 무너져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최인호에 대한 대우가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그럴수 있지 않느냐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된다'. 


 지난 9월25일은 최인호 11주기였다. 아쉬운건 지난해 10주기와는 달리 관심을 가진 언론이 거의 없었다. 11주기니까 그럴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된다'.  실은 그날에 맞추어 이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책을 찾아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구르는 돌'을 꼭 읽고 싶었는데 책을 찾지 못했다. 어딘가 있을텐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마음의 풍차'는 어렵게 찾아 다시 읽었다. 77년 예문각 초판이다. 옛 감흥 그대로다. 이제 막 성인이 되던 해, '내마음의 풍차'를 다 읽고 추체할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어찌할 바를 몰라했던 그날의 새벽이 기억 났다. 아!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구나!


   초기 작품은 대부분 찾아 읽었다. '술꾼'을 읽었다. '모범동화''예행연습''처세술개론'도 읽었다. '타인의 방'도 읽었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읽는 내내 울컥했다. 미워할수 없는 '악동'들인 화자가 최인호 같았고, 그가 내 옆에서 내 귀에 대고 직접 읽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게 최인호 글의 매력이다. 초기 최인호의 중.단편은 정말 최고다. 김승옥의 환생인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니 김승옥의 감성이 최인호에게 와서 더 확장 된 느낌이다. 이미 소설의 이론과 재미를 통달한 우리의 천재작가 최인호는 악동들의 기묘한 행위를 통해 우리사회의 아픈 상처를 비판한다. 난 그런 과장된 최인호의 '장난기' 문장이 너무 좋다. 아니 슬프다.  


 "아주마니, 나 술, 마시러 왔시오"

그는 자기 말을 믿어 달라는 듯 애원하는 시선을 보냈다.

"...이 애가 미쳐나?"

"딱 두잔만 먹갔시요.돈두 있시오."

아이는 여인 앞에 지폐 두 장을 내 보였다.

"정말이지 취하고 싶어요.내 주량은 내가 잘 알고 있시요.두잔만,딱 두 잔만 더 먹으믄 꿈도 없이 잘 잘 수 있갔시요.지금 이 정도에서 그치면 안 먹은거보담 못하구,잠두 잘 오딜 않으니끼니."

 아이는 민물고기처럼 웃었다.     ('술꾼'중에서)


  '민물고기처럼 웃었다'같은 표현은 최인호니까 쓸수 있었던 문장이다. 

 

 '바보들의 행진' 영화 한편도 보았다. 다시보니 영화는 70년대 청춘의 몰락을 다루고 있었다. 사랑도 미래도 불투명한 답답한 청년이 갈 곳이라곤 군대, 동해바다 뿐이었다. 영철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래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마치 비상구가 없는 한국문학의 현실을 보는 거 같아 깜짝 놀랐다. 



    가을이다. 음악이 빠질순 없다. 브람스를 듣기 전, 가을이 오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노래는 송창식의 '날이갈수록'이었다. 최인호 원작, 하길종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의 주제 음악으로 사용됐다. 송창식이 부른 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상배의 노래가 더 애절하고 감동적이라 좋아한다. 이 영화 제작에 최인호는 깊숙히 개입했다. 이장호의 영화 '별들의 고향'에 들어간 노래 대부분 가사를 최인호가 썼다. 최인호는 소설 음악 영화를 넘나들며 70년대 청년문화론을 선도했다. 하지만 상업주의 작가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이 수능시험 지문으로 나가는 경우도 없다. 그러니 학생들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이름 석자는 우리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질 것이다. 


  고전을 읽는 젊은 세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민음사, 문학동네 등등 세계 문학전집을 발간하는 출판사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고전이란게 모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서양고전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데미안'에 버금가는 최인호의 '내마음의 풍차'가 있는데 읽지 않는다. 누구를 탓할수도 없다. 한강 덕분에 8일만에 100만권의 책이 팔려 나갔다. 책은 사는 것보다 중요한건 읽는 것이다. 

 

 오늘은 최인호 탄생 80주기다. 이 글을 그의 영전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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