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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낙타 Nov 10. 2024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김남조의 사랑시




 우리 때는 '빵 셔틀'이라는 용어가 아예 없었다. 노는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 사이의 경계도 뚜렷했다. 껌 좀 씹고 담배 좀 피우는 일명 '날라리'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지네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놀았다. 같은 반 힘없는 아이들에게 못되게 굴지도 않았다. 가끔 반 친구가 다른 반 덩치에게 맞고 오면 오히려 달려가 응징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편지 대필'이다. 굳이 요즘말로 하면 '편지셔틀'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편지를 대신 전해주지 않고 써주기만 하는 것이니 차이는 있다.


 편지대필을 부탁하는 날라리들은 하나같이 늘 공손했다.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주는 데 뒷마당에 불러 협박하는게 쪽팔리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러는 음료수를 건네면서 친한 척하며 한참 너스레를 떠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날라리가 가져온 예쁜 편지지에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그대의 모습은 여전히 지치지 않은 초록빛 어쩌고저쩌고 '하며 편지를 써주면 날라리는 '고맙다'를 연발하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찔금 거리기도 했다. 

   

그 많은 편지를 매번 창작해 낼 수는 없었다. 그때 가장 많이 애용한 건 김남조의 '사랑시'였다. 시는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야 하는 것이 첫째 덕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김남조의 시는 언제나 늘 항상 나의 심금을 울렸다. 


 편지에 가장 많이 인용된 시는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였다. 그중  '엇갈리어 지나가다/얼굴 반쯤 봐버린 사람아/요샌 참 너무 많이/네 생각이 난다'를 가장 많이 애용했다. 짝사랑하는 여학생은 매일 등하굣길에 지나치는, 또는 같이 버스나 기차를 매일 타면서도 좋다는 말도 못하는, 즉 엇갈리며 가슴에 품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반쯤 봐버린'에 방점이 찍히면 읽는 이가 가슴 설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에 '비는 뿌린 후에/거두지 않음이니/나도 스스러운 사랑으로 주고/달라진 않으리라/아무것도'를 첨가하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오직 사랑만 주겠다는 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나는 그걸 노렸다. 


 편지의 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대필 문의가 쏟아졌다. 황인용,임국희,김세원 등 심야 방송에 편지를 보내 방송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편지를 부탁하는 아이들에겐 대상이 특정됐지만, 써주는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쓰는 꼴이 됐다. 나도 모르는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쓰는 셈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나의 화양연화는 그 때였다. 


 '편지'라는 제목의 시를 하나 꼽으라면 대부분 황동규의 '편지'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김남조도 '편지'라는 시를 갖고 있다. 나는 황동규의 편지보다 김남조의 편지를 1% 더 좋아한다. 황동규의 시가 지나치게 상징적인데 비해 김남조의 시는 직설적이어서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아서다. 이해가 어렵지 않으니 읽는 순간 그냥 100% 공감이 간다. 그렇다고 '가슴 저림'의 강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황동규처럼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아서 오히려 가슴앓이는 김남조가 더 절절하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

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젊음을 보낸 문학청년들에게 순수시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더 했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는데 '사랑타령'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꽃을 피우는 법인데 독재 정권하에서 사랑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어찌 됐건 '타도 정권'을 외치는 참여시 옹호세력의 득세로 순수시를 쓰는 시인들은 왠지 죄인이 된 느낌에 주눅이 들었고, 실제 문단의 평가도 박했다. 주례사 비평, 패거리 비평 등 자기네끼리 노는 곳에서 순수문학이 설자리는 좁았다.


 김남조는 독자들로부터는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지나치게 박한 평가를 받았다. 소위 내로라하는 문학 평론가들 중 김남조의 시를 다룬 평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러 외면하는 이도 있었고 아예 상종하지 않으려는 이도 있었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는 그저 시로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잘잘못을 따지자면 논리는 옆으로 새고 말은 길어진다. 훗날을 기약하자.

 

 겨울이 오고 있다. 추위를 달래는데 시만큼 좋은게 없다. 

김남조의 불후의 명시 '겨울바다'를, 죽은 새들을 그리워하며,눈물을 감추고, 속으로 읇조리며 이 겨울을 맞이해 보자.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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