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의 최명희
작품집 앞 뒤에 붙어있는 '작가 후기' '작가의 말' 읽을 때 나는 행복하다.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본문보다 후기를 읽으며 가슴이 벅찼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생애 첫 작품집일 경우, 이제 막 첫 비행에 나서는 어린 새처럼 살짝 떨고 있는 작가의 심장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첫 책인데도 구구절절 힘이 넘치는 경우도 있다. "나 이 정도야. 어쩔래."라는 그 당당함이 나는 너무 좋다.
소설집의 후기는 시집의 후기보다 늘 길다. 아마도 장르 때문일 것이다.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처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이다. 초판의 후기와 재판의 후기도 각각 다르다. 개정판 후기는 더 다르다. 나는 초판 후기의 그 '날 것'이 너무 너무 좋다.
황지우는 1983년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自序'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쓴 시를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혐오감이 난다. 누가 시를 위해 순교할 수 있을까? 나는 시를 불신했고 모독했다. 사진과 상형문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아 그러니까 나는 시가, 떨고 있는 바늘이 그리는 그래프라는 것을, 波動力學이라는 것을, 독자께서 알아주시라고 얼마나 시의 길을 잃어버려고 했던가. 죄송합니다.'
노벨상 수상작가 한강의 생애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초판(1995년) '작가의 말은 이랬다.
'이 길 뿐일까. 하는 끈질긴 의문을 버리고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되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꺼질 듯 말 듯한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갈 길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안도감이 찾아왔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썼고, 거품을 뿜으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 때마다 보았다. 일렁이는 하늘, 우짖는 새, 멀리 기차 바퀴소리, 정수리 위로 춤추는 젖은 수초들을,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어머니인 이 세상에게 갚기 힘든 빛이 있다.'
1981년 동아일보 2000만 원 고료 당선 장편소설 '혼불'이 잡지에 연재를 끝내고 1983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혼불'의 문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한 줄 한 줄이 시였다. 소리꾼이 부르면 그게 그대로 소리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나를 홀린 건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로 시작하는 본문보다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로 시작하는 '작가 후기'였다. 첫 번째 책인데도 설렘보다 두려움이, 자심감보다는 조심스러움이 후기를 가득 채웠다.
그래서였을까. 이어지는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나는 소설집 후기 중 이렇게 길게 쓴 글을 본 적이 없다. 200자 원고지 20장을 훌쩍 넘겼다. 첫 장편 소설인만큼 할 얘기가 많았을 것이고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알리는 것 같았다.
나를 울린 또 다른 문장. '마감이 내일모레로 닥쳐온 날의 한밤중에, 그 막막함에 가슴이 짓눌려 氣盡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내가 본 것은 건너편 아파트 창문의 작은 불빛이었다. 아, 저기서도 누군가 잠들지 않고 있구나. 그 불빛은 말없이 비치고 있었지만, 내게는 마치 絶壁처럼 끊어진 어젯밤과 내일 아침을 따듯하게 이어주는 時間의 脈이 그렇게 불빛으로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눈물겨웠다'
83년 '혼불' 초판본 후기는 분명 제갈공명의 출사표보다 여리지만, 그 이면에는 이제 긴 여정을 떠나려고 신발꾼을 힘껏 동여매는 작가의 의지가 서려있다. 나는 '서늘함'마저 느꼈다. '지금, 이렇게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거기 거멍굴 사람들의 쓰라린 혼불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으니, 나는 아마도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 때까지 충실하게 쓰는 심부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뒤 쫓느라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 나처럼 최명희에 푹 빠진, 최명희와 동향인 내 친구 K는 최명희가 초록색 잉크를 채운 만년필로 이 후기를 썼다며, 자기도 앞으로 초록색 잉크로 글을 쓰겠다며 한동안 초록색 잉크를 들고 다녔다. 그러면서 후기에 있는 '이 일을 위하여 千軍萬馬가 아니어도 좋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오래오래 나의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를 읽고 감격하며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독자'가 되어 그 약속을 지켰다.
'혼불'은 절절한 '후기'처럼, 그 후 원고지 1만 2천 장의 장편으로 계속 이어졌다. 2년의 투병 끝에 1998년 12월 11일 오후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한참 더 이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운명 전 최명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
며칠 후면 최명희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26주기다. '혼불' 초판을 다시 꺼낸다. 늘 봐도 눈이 부시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장이다. 어느 구석이건 그 녀의 고통이 스며들지 않을 곳이 없다. 그녀는 느리게, 아주 천천히, 쓴 글을 읽고 또 읽고,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말도 남겼다. "남들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일필휘지'가 갖고 있는 한순간에 우주를 꿰뚫는 정곡을 찌르는 강력한 힘도 있지만, '천필만필'이 주는, 다듬어진 힘이 나는 좋다."
늦은 밤이다. 창문을 열어본다. 찬 바람이 훅~ 하고 들어온다. 그래, 이 시간에도 저기 저 아파트 어딘가에 불이 켜진 방이 있구나. 그 방의 주인이 나의 이 작은 불 켜진 방을 보면서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명희 처럼 긴 호흡으로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편소설이 사라진 문학계.
시간이 흐르고 흘러 먼 훗날, 전주 한옥마을 최명희문학관과 남원 혼불문학관에 들렀을 때, 초록 잉크로 쓰인 원고지를 나는 보질 못했다. K는 절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친구가 아니다.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초록이 지쳐 흑색으로 변했을거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