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를 애도함
중학교 입학한 후 한 달쯤 지났을까. 짝이 집으로 초대를 했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꽤 멀었지만, 다행히 짝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 얼떨결에 그 뒤에 올라탔다. 남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 처음이라 약간의 흥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큰 대문에 마당이 넓었고 안채와 바깥채로 나뉘어 있는 집이었다. 뒤란엔 큰 감나무와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는 목련나무도 있었다. 그날의 친구 집 방문이 내 운명을 바꿀 줄을 그때는 몰랐다.
친구 방에 들어서자 별천지였다. 친구에겐 열네 살, 열 살, 세 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그중 열 살 터울의 형은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방안에는 둘째 형의 소장품인 소니 전축과 LP판, 한 벽을 가득 채운 책, 그리고 기타가 있었다. 책 중에는 삼중당에서 발간한 20권의 ‘이광수 전집’도 있었다. 생전 처음 본 풍경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날 이후, 친구의 방에 수없이 들락거렸다. 어느날 “너 이거 들어볼래?”. 친구가 많은 LP판에서 한 장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경아 오랬만에 누워보는군”으로 시작되는 ‘별들의 고향’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었다. “행복해요”라는 안인숙, 아니 고은정 성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은 이미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비틀스와 트윈폴리오, 한대수, 이장희의 노래를 그때 처음 들었고, 바흐의 ‘브란덴브루그 협주곡’은 듣는 순간 어둑 컴컴한 방안에 바야흐로 별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 같았다. 기쁜데 웬지 슬펐다.
김민기의 ‘친구’도 거기서 처음 들었다. 둘째 형이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이 반복해 들었던지 LP판은 잡음이 심했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났다. 지글지글 지글. 검푸른 바닷가에 정말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김민기는 감정 없이 읊조리는 것 같았지만, 내 귀엔 그가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아하 누가 그렇게’라는 노래가 좋았다. ‘아하 누가 푸른 하늘 보여주면 좋겠네. 아하 누가 은하수도 보여주면 좋겠네’ 누가 장막으로 하늘을 가려 암흑으로 변했으니 그것을 거둬 달라는 호소 같아서 마음이 울컥했다. 그때 배운 김민기의 노래 ‘종이연’을 중 3 때 설악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불렀다. ‘아저씨 말씀 못 믿어 워도~ 헬로 아저씨 따라갔다는데. 친구도 없네 무얼 하고 놀까. 철길 따라서 뛰어나 볼까’ 부르는 나도 듣는 친구들도 그 노래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훗날 이 노래가 혼혈아를 다룬 노래라는 걸 알았다.
김민기가 73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학전 소극장에서 1천 번이 넘는 콘서트를 했다는 김광석의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게 한이었는데 김민기의 죽음으로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었다. 나는 김민기 생전에 학전 소극장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뭐 하고 살았던 것일까. 최근 제작된 김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아주 오래전 방송에 나와 김동건 아나운서와 대담을 나누는 김민기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2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뛰어넘었는데도 그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눌한 말투, 카메라를 응시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해 하며 쓴웃음 짓는 얼굴. 그리고 떨리는 눈. 이제 우리는 그런 그를 다시는 볼 수가 없다.
이제 김민기의 노래를 듣거나 그가 떠오르면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초대받고 찾아간 '친구의 방'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가 내리는 검푸른 밤바다 앞에 서있는 김민기. 어두운 하늘에 마구 쏟아지는 별을 내 눈앞에 펼쳐 보여 준 바흐. 험한 세상에도 굳건한 다리처럼 흔들리지 말아야 함을 각인시켜 준 사이먼과 가펑클. 그리고 비틀즈. 철문처럼 굳건해서 도저히 열 수 없었던 문학의 문을 활짝 열어준 이광수 전집. 내 운명의 지침을 흔들어 버린 '친구의 방'이 떠오를 때마다 김민기가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