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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영 Jan 04. 2025

붕어빵 하나로 최대 가치 갱신

전단지 할머님께 받은 이야기

얼마 전 점심을 먹은 후의 일이다. 이 날의 기온은 영하 1~2도로 패딩까지 입은 나로서는 그다지 춥지 않았을 것이다. 체감 온도는 기온과는 별개라는 듯, 매서운 칼바람이 귀때기와 볼따구, 손발가락, 그리고 허벅지를 강타했다. 방금 식사하며 느꼈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얼른 실내로 복귀하자며 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다.


그날, 나는 오후 반차여서 자리에 돌아와 조금 있으면 퇴근이었다. 하지만, 오전에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어 동료에게 인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 해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겠지만 문의자와 의사소통은 물론,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어찌 보면 까다로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금요일 오후, 휴가라며 일을 동료에게 던지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함이 들었다. 점심 먹고 회사에 복귀하며 길을 걸으며 붕어빵을 봤는데, '이거다!' 싶었다. 내심 동료들에게 붕어빵도 일과 함께 인계하여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섞고 싶었다. 맞다. 죄책감을 조금 덜고 싶었을 수 있다. :)


붕어빵은 2천원에 3개로 묶어 팔고 있었고, 동료 인원수를 생각해서 9개를 샀다. 함께 식사한 동료와 손에 붕어빵을 하나씩 가지며 걸었고, 횡단보도에서 잠시 멈췄다.


횡단보도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바로, 전단지를 나눠주시는 분들이다. 한 분은 머리가 희끗하신 할머니신데, 경량 패딩에 머리에는 군밤 장수 모자를 쓰고 계셨다. 장갑과 바지, 신발도 챙겨 입은 듯 하지만, 어제와는 결이 다르게 추워진 오늘을 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젊은 나도 패딩을 입고 칼바람에 몸을 움츠리니 말이다. 평소 굉장히 적극적이셔서 전단지를 받지 않으면 내 몸에 전단지를 대기도 하고, "에이, 한 번 받아봐"라 말씀하시기도 한다. 이런 날씨라면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기 싫어하니 전달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쏟으시는 것을 보니 새삼 대단하다 느껴졌고, 어머니가 생각나며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평소처럼 별생각 없었다. 단지 내 손에는 동료들에게 나눠줘도 남는 붕어빵이 있었다. 나와 동료는 배불러 붕어빵을 더 먹진 못했고 말이다. 이에 할머니께 "붕어빵 하나 드세요"라고 하니, 순간 몸이 잠깐 멈추셨다. 내 눈을 올려다보셨는데, 군밤 장수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눈망울은 촉촉했고, 순간 사슴처럼 보였다. 1~2초가 지났을까? 장갑을 벗으려던 제스처를 멈추시고 무언가 단념한다는 듯 "젊은이가 먹어야죠" 하셨다. 이번엔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는 소녀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 무슨, 그냥 드세요" 하니 내게 주려던 전단지를 뭉탱이에 합쳐 정리하고, 한쪽 장갑을 벗으셨다. 봉지 속에서도 겉바속촉할 것 같은 녀석을 골라 건네니 "정말 고마워요" 하며 받으셨다. 보행 신호로 바뀐 신호등에 걷기 시작했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할머니께 왜인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추워서 이불속에 숨어있던 내 감정에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감정이 느껴졌을까? 붕어빵이 경제적으로 큰 가치를 가지지도 않고, 할머니가 붕어빵을 사 먹을 돈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이 붕어빵 하나 드시라는 말에 순간 사슴과 소녀가 될 수 있는 할머니라니.. 이는 나의 세상에서는 없던 이야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에서 주인공 덕선이 아버지 역할을 한 성동일 배우는, 극 중에서 길거리에 고사리를 파는 할머니를 왜 지나치지 못했을까. 또, 혼자 사내아이를 키우는 후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가정에 별 필요 없는 태교에 좋은 테이프를 사 왔을까.


이 이야기를 동료에게 전했다. 어머니와 연인에게도 전했다. 굳이 친구에게는 전화 걸어서까지 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만나면 술안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들은 주변인들은 내게 공감했고, 잘했다는 말을 하나같이 해주었다. 새삼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구나. 평소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와 할머니가 주연인 이 이야기를 붕어빵 하나로 얻었다니.. 붕어빵 하나로 이보다 더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싶다. 내 주변에만 알리긴 아까운 이야기라는 마음이 들어 글을 적어본다. 지금은 1월 초로 아직 더 추워질 날이 남아있는데, 이 이야기가 독자분들로 하여금 따뜻한 오뎅 국물 같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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