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되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 인천 개항장에서
가족과 ‘차이나타운’에 방문했다. 붉은색 기둥 사이로 3개 아치형 문, 황금색용, 황금색 현판, 주황색 지붕에 눈길이 머물렀다. 인천역 건널목에서 바라본 페루였다. 문을 통과하니 오르막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황금용’조형물이 있는곳에 도착하였다. ‘여기는 어떤 곳일까!’. 궁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팻말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차이나타운은 동사무소도 다르구나…’.
막다른 언덕 북성동원조짜장면 거리에 많은 사람이 활기찬 표정으로 거리를 누비고 있다.
“가위바위보”
“와~아 악”
“축하드립니다‘
이곳의 대표 길거리 음식 ’공깔빵‘을 두고 펼쳐지는 게임 소리다.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수지맞았다는 듯 괴성을 지르고 있다.
인천 안의 작은 중국 차이나타운에는 특색있는 곳이 많다. 바다를 지키는 마조신과 용왕 등을 모시고 있는 종교시설이자 마을회관 의선당, 자유공원 입구까지 펼쳐진 계단에 입체적인 그림이 그려진 황제의 계단, 한나라 말기 유비, 조조, 손권 세 영웅이 패권을 다투는 이야기가 70여 개 그림으로 구성된 삼국지 벽화 거리 등이다. 발길 닿는 곳으로 나들이 중 ’청일조계지경계 계단‘에 도착했다. 계단 옆 일본 목조건축물 거리에서 색다른 풍경을 배경 삼아 많은 사람이 사진촬영 중이다. 우리 가족도 그곳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 그 많은 사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랜만의 나들이에 배고픔도 잊고 다녔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점심 메뉴는 ’짜장면‘이다. 허기져서였는지, 맛이 있었던 것인지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이후로도 차이나타운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매번 코스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본 색다른 풍경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고, 지금 나에게 각인된 차이나타운의 이미지는 ’짜장면‘먹으러 가는 곳이다.
길을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고민이 해결돼서 좋다. 자연스레 걷기 위주의 여행이 취미가 되었다. 조금 더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 방문지 정보를 찾고 공부한다. 목적지 리스트를 정리하고 동선을 짜본다.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곳은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장소가 된다.
오랜만에 차이나타운에 가려 리플릿을 보니,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개항장’. 개항장은 자본주의라는 근대 경제체제를 도입하거나 조약 체결을 통해 개방된 항구다. 우리나라는 ‘조일수호조규’ 체결 후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며, 청국(중국), 일본, 각국 외국인 거주(조계지)가 생겼다. 청국조계지에 청나라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들어왔다. 민간인들이 정착하여 생활터전을 이룬 곳이 지금의 차이나타운이다. 또 하나 발견한 반가운 장소가 있다. ’일본풍 거리(예전에 보았던 일본 목조주택 거리)‘. 인천 중구청 주변은 일본거주지였는데, 이곳에 일본 목조건물이 있었던 이유였다. 도로변 건물은 대부분 현대식 건물에 일본 목조자재를 외부에 붙인 것이다. 그중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목조주택이 있는데, 개항장에서 해운업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되었던 대화조 사무실로 지금은 카페로 운영 중이다.
궁금한 마음에 며칠뒤 주말 ’일본풍 거리‘로 향하였다. 사전 조사한 내용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도로 주변 목조주택을 자세히 보니 외부 목조자재 안에 콘크리트며, 샷시 등이 보인다. 대화조사무실로 사용되던 카페도 방문하였다. 1층은 홀이고 2~3층은 단체손님을 받는 다다미방이다. 단체손님이 아니어도 구경이 가능하여 2층 계단 쪽으로 갔다. 벽면에 이곳의 예전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낡고 쓰러 저가는 건물 사진이다. 2층~3층 계단과 기둥은 건축 당시 나무형태로 보존되어 오래된 나무 향이 난다. 계단을 밟으니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 건물의 모습, 오래된 나무 향이 잔상에 남아서일까 ’끼이익‘하는 소리가, 온종일 힘든 하역노동을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노동자의 앓는 소리처럼 들린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자장면 먹는 곳’ 과 ‘역사 이야기가 있는 개항장’. 어떤 기억으로 추억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일본풍 거리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곳보다, 개항기 역사 이야기가 있는 일본 목조주택을 기억하고 싶다. 무엇을 배우고 알게 되면, 새로운 시야가 생긴다. 그 배움의 과정은 지루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조금은 지루하고 귀찮겠지만, 끊임없이 배워보려 한다. 그 배움의 시간으로 내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윤택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