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불가해(不可解)성
1979, 이마무라 쇼헤이 / 드라마, 스릴러 / 2시간 20분
기차역 부근에서 담배전매공사의 수금원 두 명이 살해되고 현금 사십 일만엔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담배 배달차 운전수인 떠돌이 카츠였다. 경찰에 쫓기는 그는 대학교수, 변호사 등으로 위장하여 살해, 절도 등을 저지르며 여자들과 놀아난다. 최대의 수상망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던 카츠는 다시 하마마츠(浜松)에 가서 전에 머무른 하숙집에 눌러 앉아 경영자인 아사노 하루의 정부가 되는데...(출처 : 왓챠피디아)
영화는 눈 오는 날 저녁 수많은 경찰차들이 숨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모든 일은 이미 끝난 후다. 악인에겐 이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다. 그런데 호송차 뒷좌석에 앉은 살인마는 어딘가 이상한 말들을 툭툭 내뱉는다. 그는 이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국의 사원에 가기를 염원한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악인은 시작부터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고 범행의 동기는 잘 설명되지 않으며 추적의 과정은 간헐적으로만 드러난다. 즉 이 영화에는 장르적 쾌감이 전무하다.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는 액션-리액션의 반복과 교차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여기서 액션(행위)은 범죄자의 것이고 리액션(반응)은 그를 추적하는 세상(경찰, 탐정 등)의 것이다. 그런데 <복수는 나의 것>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간다. 이 영화에는 일반적인 장르 영화의 리액션이 없다.
대신 액션에 대한 수용만이 있다. 오로지 가해와 피해 혹은 가학과 피학의 관계만이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과 가족, 혹은 선량한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악(惡)에 굴복(혹은 굴종)한다. 살인마는 거의 방해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스템은 무기력하거나 무의지하며, 세상은 그들을 방관하고, 감옥과도 같은 그들의 가옥 안에서는 단 한 치의 구원도 희망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기묘한 실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을 빌려오자면, “폭력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연쇄 살인마의 일생을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로 오가며 전기(傳記)영화로 엮는 듯한 이 영화의 구조와 형식은 분명 독창적이다. 그러나 당신은 착각하면 안 된다. 이 구조는 악을 이모저모 뜯어보며 악행의 동기와 원인을 규명하고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핵심은 그 불가해(不可解)성에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살인마 ‘에노키즈’에 관해 그 어떠한 뚜렷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확실한 정답을 회피하고, 살인마를 규정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배제한다. 대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가 가진 구조의 힘으로 영화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과정을 찾아가는 방식. 흡사 기록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착시. 이것들은 작품 전체에 어떤 필연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에노키즈라는 인간의 존재의 필연성이다.
즉 이마무라 쇼헤이는 악의 ‘탄생’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것이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는 과정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이 영화에는 여성을 향한 가혹한 억압이 있다. 오로지 상승을 지향하는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들의 타성적인 일상이 있다. 엘리트 계급을 향한 허망한 동경이 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정체성을 모조리 흡수한다. 들끓는 욕망은 축축한 증기를 연신 뿜어대는 온천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폐쇄적이고 윤리배반적인 역학 관계는 료칸의 좁은 문틈과 창 사이, 불길한 복도의 그림자와 습기를 머금은 목조 계단에서 숨죽이고 파국을 기다리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은 단 한 순간도 관성적인 화법이나 무성의한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리한 칼날과 부릅뜬 눈으로 하나하나 새겨낸 듯한 이 영화의 신경질적인 쇼트들은 일본 사회가 당면한 히스테리와 오염된 윤리의식을 가히 파격적인 ‘영화적’ 마술로 묘사한다. 악(惡)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과 사회가 짊어진 이 거대하고 무거운 숙명 앞에서 단 한 순간도 거만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는다.
위태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폐부를 통렬하게 관통하는 이 괴작에서 아마도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공중에 멈춘 살인마의 유골. 에노키즈는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아, 욕망 중에서 제일 으뜸인 욕망은 아마도 전락하기 싫은 욕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