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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타 Aug 10. 2024

여름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영화 세 편

바캉스가 여름의 전부는 아닙니다

여름. 휴가의 계절이자, 1년의 반환점을 도는 계절. 숨가빴던 지난 반년은 뒤로하고, 일상을 피해 저마다의 푸른색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 여름이라는 계절엔 왠지 모를 낭만과 열정,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여름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들도 참 많지 않은가. 하지만 여름이 누구에게나 휴가의 계절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고독할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게 여름은 간절한 어떤 기억일수도, 잊고 싶은 고통의 계절일 수도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두배 세배 맛보고 싶은 당신에게, 여름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영화 세 편을 추천한다.


1. 녹색 광선

1986, 에릭 로메르 / 드라마, 로맨스 / 1시간 39분

이야기는 간단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델핀느(마리 리비에르)'는 사랑을 찾아 홀로 휴가를 떠난다. 함께 갈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녹색이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는 점괘만이 그녀를 지탱해줄 뿐. 하지만 델핀느의 뜻대로 풀리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녀는 이상한 남자들을 만나는가 하면, 특유의 우울하고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도망치거나 실망하기만 한다. 그녀는 과연 여름 휴가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여름이 고독할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끔 원인도, 해결 방법도 알 수 없는 근원적 고독과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려 아등바등 애써보지만, 늘 난관에 부딪힌다. 왜냐면 우리는 모순과 약점투성이인,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에릭 로메르는 '델핀느'라는 캐릭터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여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때로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트리고, 텅 빈 거리를 배회하는 그녀를. 작열하는 태양과 아름다운 해변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여름에 유독 고독한 당신은 영화를 보는 동안 델핀느의 새로운 사랑을 어느새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2. 남매의 여름밤

2019, 윤단비 / 드라마, 가족 / 1시간 44분

여름방학. 부모님이 이혼한 후, 남매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부분의 경우에 여름은 설레는 계절이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남매는 여름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할아버지의 외로움, 아버지의 근심, 고모의 걱정이 알게 모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더운 방학이 지나고 나면, 남매는 한 뼘 더 성장해 있을까?


윤단비의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한국 영화에서 다소 보기 힘들었던 종류의 걸작이다. 윤단비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 생각등을 규정하거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고스란히 여백 상태로 내버려둔다. 하지만 우리는 인물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남매의 여름밤>은 인물의 미세한 표정과 동작 묘사, 공간과 햇빛을 세심하게 담아낸 촬영으로 그것을 해낸다. 영화를 다 본 뒤 남아있는 것은 우리 역시도 언젠가 떠나보낸 적이 있었던, 어떤 계절의 희미한 감각이다. 여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거나, 여름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추억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3. 에브리바디 원츠 썸!!

2016, 리처드 링클레이터 / 코미디 / 1시간 57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입학 직전의 여름. 혈기왕성한 졸업생들이 야구부 숙소에 모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아무리 여름이 휴가의 계절이라지만, 물불 가릴 것 없는 이들은 정말 '미친 듯이' 논다. 이 영화에는 별다른 사건이나 갈등도 없다. 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최대한 재밌는 방식으로 놀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청춘들의 에너지만 있을 뿐.  


<비포~> 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가볍게 만든 영화. '뇌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영화'란 정말로 이런 영화가 아닐까. 아무런 제약 없이 여름날을 만끽하는 캐릭터들. 우리는 그들을 그저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없이 관찰하고, 때론 같이 웃고, 부러워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두시간이 훌쩍 지나 있을 것이다. 


지금 숨가쁘고 정신없게 살아가는 이들도, 한때는 짧게나마 이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강박적인 목표나 구체적인 방향 없이, 삶의 생동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던 시절이. 그리고 여름은 그러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다. 삶의 즐거움을 잊어버린 당신에게, 머리를 비우고 싶은 당신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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