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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리 Nov 03. 2024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첫사랑 시집 리뷰

P. 86


첫사랑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 보고싶은 마음에 발가락에 피가 나는 지도 모르고,

새벽에 짐을 바리바리 싸서 몰래 집을 나갔다.

불을 잘 키지 않는 성격에 늦은 밤이라

신발장 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어딘가에 

부딪혀서 아팠지만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커서

발가락을 자세히 잘 안 봤다.


시속을 꽤나 밟았다.

아픈지도 모른채 달리다가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언제 집 밖을 나갔니?


바닥에 피가 있어서 무서워.


라는 말씀에 나는 그제서야


전화 좀 끊어봐요.


그러고 자동차 불을 키고 


오른발에 엑셀을 떼고 


보니.


양말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색깔을 또 초록색 양말을 신어서


중간에 휴게소에 내리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응급처치도구가 없다고 한다.

그냥 데일밴드로 붙여버렸다.


붙여도 피가 줄줄이 나는데

내가 배운건


피가 나면 지혈을 잘 해주면 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참 웃긴게

눈으로 보이니까 그제서야 아픈감각이 느껴진다.


근데 왼발이 아니라 오른발이라

운전을 안 할 수도 없다.


일단 간다.


그냥 갔다.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갔다.


그랬더니 더 좋은 대일밴드를 사다가

붙여줬다.


지금은 다 나아서 흉터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 나만 맨날 가니까 좀 놀러오라고 했는데 

이젠 놀러와도 만나지를 못한다. 끝났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 나는 하고싶은대로 하는 여자라면서

화를 내기도 뭐하고, 안 내자니 화도 나고, 나름에

간접적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지만


중요한건 왜 그 시점에 구 남자친구 어머님은

쓸때없이 연락을 해가지고 


눈치 좀 챙겨주세요.


이제 최대한의 어른으로서의 배려는 해드렸는데

내가 너무 또 착하게 답장을 해드려서 그랬나.?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가 착해야하고

어디까지 싸가지가 없어야 상대방들이 알아들을까?


이젠 질렸다.

몇 번을 말해도 못알아 듣거나

눈치 없는 사람들한테 굳이 매너나 배려는 해주지 않는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 나는 알아도 모른 척,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주변에선 어떻게들 우걱우걱 우절우절

평가들을 했는지는 몰라도  


내 알바아니다. 

나는 당신들의 우적우적 우걸우걸에

놀아날 시간이 없다.


왜냐면 죽음의 문턱에 살다 왔기에

근데 왜 그 문턱에 갔냐고 묻는 다면


너희들의 그 오지랖과 원치도 않는 

관심들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신경들 좀 꺼라.

어차피 내가 없어도 살아갈 사람들.

어차피 내가 있으면 뺏어갈 사람들.


기가막히게 안다.

이득이 될지 안 될지

좋은말 해두는 사람만 곁에 두려는 모지리들

싫은말 옳은말은 듣기 싫어하니까 

안 해주니 왜 말을 안하냐고 한다.


너한테, 당신한테 해줄말은 옳은 말 밖에 안 보이는데

그 옳은 말을 싫어하는 데 내가 왜 옆에서 서로 피곤하게


그래야 하는데요?


어차피 살아가는게 아니라 죽어가는 마당에

서로 질척거리지 맙시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 그리움을 누르다가 정리를 하다가 그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리움이 갑자기 튀어나올 땐,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을 했다.


웃긴 게,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고 가르쳐두고선

분노, 슬픔을 보이면 실컷 즐길 시간을 안 주는게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달라는 게

그렇게나 폭력적인 말인지 나 처음 느꼈다.


원래의 모습이라는 건 없다.

원래의 모습은 그저 당신이 바라는 모습이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데

뭘, 자꾸 원래의 모습, 예전의 너로 돌아와를

외쳐대는지 나 잘 모르겠다.


그런 모습도 있었더 나.

지금 내 모습도 나.


다시 말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게 있다면

그냥 하루의 시간은 24시간 누구나 공평하다는 거


이것 말곤 떠오르는 게 없는데

뭐가 또 있을까.)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 나는 지금 그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리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럼 지금이 나는 좋은 상태인건가?

그리운 건 없고

가고 싶은 곳은 많다.


가야하는 데 

돈을 또 아끼라고 들 한다.


주유비, 톨비 어쩌고, 저쩌고

아끼면 청춘이 아깝다 그러고

안 아끼면 왜 그러냐 그러고


참 재밌는 세상이다.)


거리를 갖고 그냥 봐라봐야 한다는 걸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다. 거리두기. 따뜻한 무관심.

아버지는 최고의 벌이 무관심이라고 종종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무관심이 왜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그 무관심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 줘서 그런가.


알아서 살아가는, 알아서 일하는, 알아서 잘 해보려는 사람한테

선수 처서 훈수 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훈수두는 사람에게도 누군가 훈수를 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떡볶이에 맥주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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