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탑을 쌓으며 살아간다. 지정다짐(전통건축에서 지반을 튼튼하게 하는 작업)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탑 쌓기의 첫 번째 단계와 같다. 건물이 지반이 얼마나 견고 하냐에 높이와 안전성이 결정되듯이 얼마나 정교하게 땅을 다지느냐가 그 인간이 앞으로 쌓을 탑의 잠재력을 보장한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인간적인 깊이를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지정다짐을 잘한다고 모든 게 잘 풀리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두 번째 단계, 성인으로 성숙해져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홀로 견고한 탑을 쌓을 순 없다. 누구나 탑의 어떤 부분에 행복한 가정, 다정한 연인 등의 의지 할 수 있는 존재를 끼워 넣어 탑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에 과하게 의존하면 만화 베르세르크의 그리피스와 가츠의 관계처럼 아무리 겉으로 견고해 보이는 탑이더라도 끼워 넣어진 존재가 이탈하는 상황에서 탑의 축이 무너져 빠르게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인간관계 외에도 금전적 안정성, 건강 상태 등의 변수는 존재하며 필자는 이 변수들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이 누구보다 높고 견고한 탑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어떠한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학창 시절의 필자를 둘러싼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의 인도와 격려 아래에서 삐뚤삐뚤 차곡차곡 탑을 쌓아 올려나갔다. 그러나 필자는 그동안 한심한 공상과 헛된 선민의식에 빠져 학창 시절 동안 한량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필자는 문득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두려워져 성급하게 지나치게 수많은 가치들을 괄시하며 마구잡이로 탑을 쌓아 올리려 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이것은 신이 내게 내린 벌. 과거 바벨탑을 쌓으려 든 인간들이 벌을 받은 이유와 필자가 실패한 이유는 같다.
본디 생명이 태어나는 데는 모두 의미가 있다. 우리는 신으로도 부를 수 있는 절대불변의 법칙에서 분리되어 나와 죽어서 다시 그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 현세에 자신의 ‘자취’를 남기려는 원초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번식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 그것이 제일 기초적인 ‘자취’를 남기는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동물들은 번식행위 등으로 ‘자취’ 남기기가 끝나지만,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번식 이외에도 현세에 자신의 자취를 남길 수 있는 수단이 많다.
부의 축적, 정치적 성공, 유명 예술가, 스포츠 스타, 학문의 성취 등의 사회적 성공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현세에 오래도록 남김으로써 인간은 죽어서 신의 곁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현세에 자신의 ’ 자취‘를 남겨 평범한 동물보다 고차원적인 단계에서 태어나는 이유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번식행위보다 고차원적인 ‘자취’ 남기기야말로 인간이 쌓는 탑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탑을 쌓는 행위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그 점이 무엇인지를 성경 창세기의 바벨탑의 신화에서 엿볼 수 있다. 바벨탑의 신화는 탑을 높게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탐욕스러운 인간에 분노한 신이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언어를 다르게 하여 흩어지게 하는 벌을 내리는 이야기다. 바벨탑의 신화에서 탑을 쌓는 궁극적인 목적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오만함이 극에 달해 그들이 신에 가까운 존재에 도달하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필자는 이 해석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 누구보다 높이 탑을 쌓는다 함을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였다는 ‘자취’를 남기는 행위로 해석하면 바벨탑의 이야기는 현세에 대한 강한 집착, 즉 정해진 순리인 신의 곁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거부하고 무리하게 부와 명예 등의 현세의 성공에 목메는 인간의 모습을 함유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려고 무리하게 높은 탑을 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신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 멀어지는 중이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피 튀기는 경쟁사회인 대한민국에서는 오늘도 사람들이 이와 같이 각자의 탑을 수많은 가치를 희생해 가며 쌓아 올리는 중이다. 필자는 지나치게 물질적 가치에 얽매인 채 남들을 짓밟고 위에 올라서서 아래에 있는 존재들을 하등 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신에 가까워지는 길에서 어느 순간 벗어나 있지 않나요?”
앞서 필자는 여러 가지 변수들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높고 견고한 탑을 쌓아 올릴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에서 안정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탑을 쌓는 행위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을 이른다. 필자는 이 변수들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높이 탑을 쌓는 데에 집착하는 요즈음 현대 사회의 세태 속엔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오만함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필자가 이미 그 오만함으로 인해 신의 벌을 받았고, 앞으로도 이대로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같이 신의 벌을 받는 전철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딱히 쌓은 게 없어 보이고 실제로도 그런 필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줄 기인들은 없겠지만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급한 건 필자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은 허술하든 오만하든 뭐라도 쌓은 거라도 있지, 필자는 아무것도 쌓아 올린 게 없다. 필자에게 남은 건 무너져버린 바벨탑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는 몇 채의 사상누각들 뿐이다. 이것들은 탑이라고 부를 것이 못된다. 나는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다가 무엇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이름 없이 잊히고 싶지 않다. 만약 그리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이란 말인가?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러닝 트랙의 중턱에서 무리하게 달리다가 심장에 피가 철철 나는 채로 쓰러졌고 겨우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 이대로 끝내버리면 나는 태어나지 않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나만의 탑을 쌓을 것이다. 그 탑은 남들의 탑보다 낮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흉보고 평가절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하지만 그 탑은 어떤 탑보다 철옹성 같아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 없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 더 이상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정으로 신에 가까워지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탑을 쌓아 올리리라. 나는 내가 쌓기 시작한, 그리고 언젠가 완성될 나의 탑을 그 누구의 탑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Because trading my yesterday
과거를 바꾼다는 것은
Is to wish my life away.
제 삶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https://youtu.be/ey-9qmEdiDQ?si=nahPbb2oyDvPaXt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