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7~241102)
나는 해외에서 제작되는 분석기계를 수입하는 회사에 다닌다.
수입한 장비를 판매하고 고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가끔은 고장 난 기계를 고쳐주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새로운 장비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렇게 14년째 일하고 있다.
해외 제작사도 다양하다.
독일, 미국, 핀란드, 태국 등 다양한 회사 장비를 취급하고 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취급하는 것이다.
난 그중 일부일 뿐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세일즈교육, 서비스교육, 전시 참가 등의 프로그램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했었다.
코로나 시기 온라인 미팅이 활성화되며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번 핀란드 출장은 코로나 이후 첫 해외 출장이다.
본사에 모여 장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외국에서는 판매된 사례를 함께 나누었다.
한국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출장을 다니며 보고 듣는 생각을 메모해보고자 한다.
내가 굳이 브런치에서까지 일 이야기를 적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방문한 북유럽의 공기는 상쾌했다.
우리나라보다 약 3.5배 큰 나라이다. 하지만 인구는 1/10 수준이다.
쾌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헬싱키 시내는 도시의 분주함이 가득하다.
이번에 내가 방문한 도시는 요엔수이다. 헬싱키에서 기차로 4시간 30분 떨어져 있다.
높게 뻗은 나무와 널찍하게 펼쳐진 호수를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내가 사는 도시 서울을 생각하게 된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과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과 사람들 늘 바쁘게 움직이는 전쟁 같은 삶이다.
일주일만 이곳에 머물러서였을 수 있지만, 여유가 넘치는 도시였다.
시내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호등이 없었다. 도시 크기에 비해 차량이 적어서인지 정체되는 일이 없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신호가 없었기에 멀리서 오는 차량을 보내고 건너려고 했다.
차량은 정확히 횡단보도에 앞에 멈춰 섰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시간도 다 기다려주었다.
이것이 삶의 여유 아닐까? 만약 나였다면 멀리서부터 건너오지 말라고 경적을 울렸을 것이다.
핀란드 사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여유가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식사시간은 참 길다.
국밥 한 그릇 먹고 나오는 우리 식사와 달랐다.
식당에 가면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그전에 마실 것부터 정해야 한다.
그리고 starter부터 main 요리를 정한다. 디저트까지 주문해야 모든 주문이 끝난다.
물론 세트 메뉴도 있지만 이것 역시 고기의 익힘 정도, 드레싱은 어떤 것으로 할지 무수히 많은 질문이 오고 간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스몰토크가 멈추질 않는다. 멀찍이 앉아있는 나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영어가 짧아서 일수도 있지만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서양에서 사색이 깊은 문학작품이 나오는 이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유가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단답형 질문을 한다.
'했어? 좋았어? 또 뭐 할 건데?'라며 닫힌 질문을 한다.
그러나 여긴 달랐다. '뉴스 봤어? 무슨 생각을 했어? 날씨 좋지. 오늘 기분은 어때?'라며 무엇인가를 계속 물어본다. 그 과정에서 자기와 공통점을 찾아내고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공톰점을 찾은 후에는 더 깊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배워야 할 점 중 하나이다.
아이들에게 좀 더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생각은 했는데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의식적으로 질문하고 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빠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희는 어떤 생각이야?'
70,80년대 출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라는 것, 해야 하는 것들 위주로 삶을 이끌어 갔다.
마흔이 넘은 요즘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이 된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왜 사는지도 몰랐던 지난 시기를 반성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 과제를 찾아 나서고 있다. 도대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찾고 있다.
우리 세 아이들에게만은 이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본인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갈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주고 싶다.
집요하게 닦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늘 옆에 기둥처럼 서 있어 줄 것이다. 힘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될 것이다.
새로운 공간은 색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생각들을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내 삶의 역사가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나의 유산이 될 것이다.
앞으로 국내, 해외 출장을 통한 기록을 통해 인생을 배워갈 것이다.
배운 내용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적어도 한 명은 마음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가한다.
함께 응원하며 성장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