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기
1. 새로운 날의 햇살이 수면을 비추고 조금 지난 다음 어디선가 한 방울의 이슬이 굴러왔습니다. 이 물방울은 잠들어 있는 작은 동그라미 군의 머리 앞쪽에 떨어져 작은 동심원을 만들어 냅니다. 그 파문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작은 동그라미 군에게 가서 닿습니다. 물결을 맞은 동그라미 군은 화들짝 놀란 듯 파르르 떱니다. 아마도 잠을 깬 것 같네요.
2. 물결이라는 자극에 동그라미 군이 파르르 떤 이유는 주변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자세를 낮춰 시선을 수면과 동일한 높이로 맞춰보기로 하죠. 그리고 좀 더 다가가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자세히 관찰해 봅니다. 동그라미 군은 수면에 반쯤 떠있는 상태로, 머리는 왼쪽을 향하고 꼬리는 오른쪽으로 뻗어있습니다. 꼬리 전체는 수면에 잠겨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3. 이 시점에서 동그라미 군이 잠에서 깬 순간을 다시 돌려보기로 하죠. 이슬이 수면에 떨어지며 물결이라는 파동이 생깁니다. 수면이 한 번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형태(사인파)를 만들어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 여러 개의 동심원을 만들어 내지만 동화의 세계니 동심원이 하나인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파문은 동그라미 군에게 다가가서 세포막에 부딪혔습니다. 외부의 자극이 경계면에 닿은 것이죠.1)
4. 그리고 그 자극은 경계면을 통과해서 동그라미 군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2) 그리고는 내부에서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 반응은 동그라미 군의 신체적(또는 물질적) 반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극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를 말합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는 상태입니다.
5. 그런데 수면 위에는 물방울이 떨어지기 전에도 바람 때문에 아주 자잘한 물결이 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그라미 군은 그때에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자극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자극을 감각하기 위해서는 물결의 파고(진폭)가 특정한 크기 이상으로 커져야 합니다. 감각을 할 수 있으려면 자극이 일정 정도의 크기3)를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치 보다 낮은 물결은 신호로써 자극이 아닌 단순한 노이즈에 불과합니다. 노이즈는 그저 없는 것과 같습니다.
6.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다시 동그라미 군의 내부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물결은 동그라미 군의 경계를 넘어 내부로 들어갑니다. 파문이 그 세포막에 닿을 때까지는 동그라미 군의 반응의 캔버스는 수면처럼 평평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극이 경계선을 통과해 주관에 완전히 들어오는 순간 하나의 온전한 파형이 그려집니다. 동그라미 군은 이때서야 지금 굴곡된 상태는 방금 전의 평평한 상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7. 즉 굴곡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평평한 상태의 존재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종이의 한 면을 바라보다 뒷면을 알아차리는 순간, 보던 것이 앞면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이 과정에서 동그라미 군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 주관적 상태의 변화, 즉 알아채는 것을 인식4)이라 부릅니다.
8. 다시 말해, 인식이란 외부의 객관적 세계가 내부의 주관적 자아에 투사되어 반영되는 것을 식별하는 과정이며, 원래의 상태와 다른 상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상태를 분할하는 경계선을 긋고 그 경계선을 기준으로 원래의 것과 대비되는 것을 각각의 ‘구’역으로 두어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인식이란 같은 상태가 아닌 상태를 각성한다는 것이며 다름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으로써의 인식이라 합니다.
9. 따라서 우리가 인식을 할 때에는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과 나란히 두고 견주어볼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때 대상이란 물질적인 사물이 될 수도 있고 관념적인 개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건 그 구획을 짓는 테두리, 즉 경계선을 그을 수 있다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10. 그것이 사물이건 관념이건 인식의 경계선을 통과하는 순간 관념적인 것으로 치환되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객관이 내부의 주관으로 유입되는 순간, 즉 인식의 순간에는 대상이 관념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5) 비록 모양이 같아 보인다 할지라도 자극과 반영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식의 과정은 관념적인 것이 됩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다는 것, 인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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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인지과학에서의 감각(Sensation), 즉 외부 자극이 감각 수용기에 의해 감지되는 과정에 대한 모식적 설명입니다.
2) 이것은 인지과학에서의 지각(Perception), 즉 감각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 대한 모식적 설명입니다.
3) 이것을 인지과학이나 신경생리학 등에서는 역치(threshold)라고 하며, 신경세포가 반응하기 시작하는 최소 자극 강도를 의미합니다.
4) 인식은 여러 학문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보통은 외부 자극이나 정보를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인식이란 일단 동그라미 군의 주관적 상태 변화의 과정을 가리키기 위한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뒤로 갈 수록 이 내용을 선명해질 것입니다.
5) 붓다가 모든 것이 허상이라 하신 것은 이것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