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수첩 1화 —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래요!

by 훈연

이 친구는 ‘공부를 안 하는 것’ 빼고는 모든 게 멀쩡했다. 학교도 잘 다니고, 예의도 바르고, 친구 관계도 원만했다. 발표를 시켜보면 말도 잘했고, 이해력도 뛰어났다. 단 하나, 공부만 하기 싫어했다.


“왜 공부 안 해?”
“하기 싫어요. 전 모든 건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성과도 나죠.”


그 말은 맞다.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잘 되는 일은 없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이유를 깨닫고, 내적 동기를 가질 때 비로소 배움이 시작된다.

그런데 문제는 —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비로소 ‘때’를 맞이할 수 있고, 원하지 않던 일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네 말은 다 맞아. 그런데 말이야,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있을 때, 너희 부모님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계실 거야.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서, 하고 싶은 걸 미루며 일하시겠지. 그걸 생각해 본 적 있니?”

“… 그건…”
“그래. 부모님은 너를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하시는데, 너는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한다면 — 그건 조금 이기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알고 있다. 이건 누가 들어도 꼰대 같은 말이다.

잔소리처럼 들릴 것이고, 다 아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말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세상은 네 마음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


“샘은 네 삶이 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어. 기쁨과 보람, 행복만 느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슬픔과 좌절, 고통도 느껴봤으면 좋겠어. 그 모든 감정이 네 삶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거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면, 너의 세상은 네가 아는 정해진 색으로만 채워질 거야.

그런데 원하지 않는 일, 낯선 경험 속에서도 새로운 색이 섞이며 예상치 못한 빛이 나올 수도 있어. 그게 진짜 ‘삶의 색깔’이야.”

“그런데 모든 걸 직접 겪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책이나 영상 같은 걸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 거야. 그런데 너는 지금 ‘원하는 것만 하겠다’고 하잖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게임과 운동이지?”
“네.”


“게임과 운동이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네 세상이 너무 좁아져. 너는 공부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사실 게임을 하면서도 너는 공부를 하고 있어. 어떤 때 무슨 아이템이 필요한지, 왜 지난 승급전에서 졌는지 돌아보고 문제를 찾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그게 사실은 다 공부거든.

운동도 마찬가지야. 운동 전 스트레칭이 왜 중요한지, 운동하면서 어떤 근육이 어떻게 쓰이는지 네가 술술 얘기하는 것도 사실은 네가 찾아보면서 공부한 거잖아. 맞지?“

“네..근데 그건 제가 좋아서 한 거에요.”

“맞아. 샘은 네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운동도 결국은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더 즐겁게, 잘 할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야. 패턴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근육의 움직임을 탐구하는 건 다 배움이지.

꼭 교과서로 공부하는 것만 공부가 아니야. 네가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모든 것이 공부지. 그런데 그 공부를 네가 선택한 것만, 원하는 때에, 하겠다는 것은- 음식에서 네가 원하는 한두 가지 반찬만 골라먹겠다는 편식이란 똑같은 거야. 골고루 다양한 음식을 먹어야 건강해지듯이, 골고루 다양한 분야에 지식과 정보를 접하며 공부해 보는 것이 너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그런 의미에서 샘은 네가 원하지 않는 다른 부분도 공부를 해보라는 것이야. 하다 보니 정말 재미없고 지칠 때 물론 있지. 하지만 어렵고 지쳐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그 안에서 네가 얻는 게 분명히 있어. 시험 점수가 아니라 네 안에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쌓이고, 어려운 것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너의 사고력이 올라가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너의 끈기,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지는 것이지. 그런 모든 게 공부야.

그러니까 공부란 교과서 속에만 있는 게 아니야. 그건 네가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야.”


“진짜 이유가 뭐야? 왜 공부하기 싫은데?”
“저는… 공부했는데 제가 못하는 게 싫어요.”
“못하는 게 싫어서?”
"네. 그냥 제가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요.”


그제야 보였다.
이 아이는 ‘공부하기 싫은 게’ 아니라 ‘공부를 못하는 자신이 싫은 것’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하기 싫어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게으름 때문에 손을 놓고, 어떤 아이는 자존감의 상처 때문에 멈춰 선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단순한 ‘꼰대의 말’이 아니라, 삶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첫 수업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때에 하는 삶.

하지만 인생은, 그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러나 결과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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