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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Jung Oct 06. 2024

중독자 정입니다

상담을 하며 알게 된 마약 중독자들과 송천 쉼터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서 상담 대학원을 다녔는데, 첫 학기에 우리 학과 학생들과 함께 한국 마약퇴치 운동본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약 중독자들이 재활하는 송천 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송천 쉼터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 않는 걸로 나온다). 처음 마약 중독자들과의 만남이라 긴장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송천 쉼터는 합정동에 위치해 있어, 집인 목동과도 가까웠고 내가 일하던 종로에서도 오가기 쉬웠다.



상담 대학원이기에 졸업하려면 상담을 받아야 하고, 상담도 해야 하므로, 나는 졸업을 위해 필요한 상담 시간을 채우겠다는 간단한 생각으로 이곳에서 집단 상담을 진행하기로 자원했다. 한국 마약퇴치 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어서, 직원들은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일하던 학원의 공강 시간에 자주 쉼터에 가서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식사하며 청소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저녁, 강의가 없는 날에 마약 중독자 자조 모임인 NA(Narcotics Anonymous)가 열린다고 해서 참석했는데, 그 경험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쉼터에 있던 중독자들뿐만 아니라, 단약을 하는 분들도 각지에서 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러한 자조 모임에서는 익명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참석자들은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자기소개를 할 때는 '중독자...입니다'라고 하며 성이나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성을 넣어 '중독자 정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평생 동안 잘난 척하고 문제없는 척하며 살았던 나에게, '중독자 정입니다'라는 자기소개는 내가 감추고 있던 문제를 직면하게 해 주었고, 마치 나를 옥죄어온 마스크를 벗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마약을 해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알 수 없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



그날 나는 단약 하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싸우고 있는지, 약물의 유혹에 넘어가 자기혐오를 느끼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단약해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들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문제를 감추기에 급급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송천 쉼터에 있던 입소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벗고 그들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당시 내 삶은 새벽에는 종로 근처에 있던 한 건설회사에서 새벽 회화를 가르치고 학원에 출근해서 강의를 했고 오후에는 신촌에 있던 영어 출판 회사에 가서 회화 강의를 녹음했고 어떤 날은 노량진에 가서 임용고사 준비하는 학생들 영어 시험 강의 녹화를 했다. 저녁에는 출강 회사와 계약해서 대학들에 가서 스피킹 시험 강의를 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뼈를 갈아서 일했고 그러면서 또 학원 출판사와 계약해서 토익 스피킹 시험 교재를 출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나도 스스로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고 느꼈다. 대학원에 다니지 않을 때는 한국어 교사 자격증 과정을 수강하기도 했다. 나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고, 성취와 성공에 집착하는 상태였다. 내 안에 보이고 싶지 않았던 자격지심들을 가리기 위해 나는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삶으로 나는 부족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문제가 있다, 중독자다라고 사람들 앞에서 말함으로써 중독자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고, 서로 판단하지 않는 자유를 얻었다. 내게 송천 쉼터는 말 그대로 쉼터, 숨터가 되었다. 



내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졸업할 때까지 3년 넘게 매주 송천 쉼터에 가서 '자존감 향상'이라는 집단 상담을 진행했다. 또한, 이곳에 있던 분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약물 중독에서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에 대해 졸업 논문도 작성했다.



지금도 때때로 내 힘에 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혼자 산책하며 ‘중독자 정입니다’를 읊조리곤 한다. 그 말을 통해 나는 여전히 내 연약함을 인정하게 되고, 이 싸움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잘 나가고,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과 비교하는 대신 나를 나로 인정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나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속상해할 때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그래도 나 참 열심히 살았다, 괜찮아. 잠시 숨을 고르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나 자신에게 휴식과 위로를 허락하는 말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장 9절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의 약함을 보는 게 싫다. 하지만 그때 '중독자 정입니다'라고 했던 순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완벽해지려는 강박 대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숨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힘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약하지만 나를 살게 하는 힘이, 존재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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