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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지식의 선별이 필요하다2

- 교사의 전문성

by 무상 Mar 08. 2025

'교과서는 2015년에 제작된 것이니 지금 현재의 우리 사회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 이슈에 관해서 스스로 주제를 발견하고, 탐색하여 토론한다는 학기 초 나의 수업 제안에 한 아이가 교과서 밖을 벗어나면 안 되냐는 질문을 합니다. 당연히 교과서 내용을 벗어난 탐구도 전제로 한 수업이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질문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한편으로는 반가웠던 답변이 돌아옵니다. 물론 모든 교과가 몇 년 전에 제작되었다 하여 무용지물의 죽은 지식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 아이들이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쓸모가 있을까요?하는 고민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여러 미래학자들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유엔 미래 보고서는 2030년까지 지금 일자리의 80%, 모두 20억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히는 앨빈 토플러(A. Toffler)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얻기 위해 하루 15시간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크다고 합니다. 현재의 교육내용이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지식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학에도 ‘죽은 지식(inert knowledge)', 또는 비활성화 지식을 가르치지 말라고 나옵니다. ‘죽은 지식’이라는 의미는 교과서의 지식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거나, 현실성이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그런 시험문제 관련 단편적인, 파편화된 지식들입니다.


옛날에 아주 감명 깊게 본 교사 영화가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사랑을(To Sir With Love)’ 이란 영화입니다. 기존의 권위, 통제 등에 일상적으로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슬럼가 아이들을 인격적인 어른으로 대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교사의 헌신적인 모습으로 가득 찬 영화입니다. 나에게 유의미한 장면들 중 하나는 주인공 역을 맡은 임시교사 마크가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의 학생들이 그들이 나갈 사회생활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 등 정작 필요한 것들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쓰레기통에 교과서들을 다 버리게 합니다. 오죽하면 나도 20여 년 전 교사로서 열정이 넘칠 때 한 학회에서 ‘교과서를 없애자’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교과서 지식의 무조건적 우상화는 교사의 교수학습 방법까지 한정합니다. 문제는 단지 교과서의 모든 지식 하나하나를 제대로 ‘전달’하는데 급급한 교사들입니다. 빽빽이 들어찬 지식들을 다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강의식 말고는 다른 효과적인 교수방법을 생각해 볼 틈이 없습니다. 지식들을 이해시키기에도 급급한데 탐구학습이니 토론학습, 협동 학습 등을 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류의 교사들은 전문적인 자질 향상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교육학에서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학습방법이라 일컫는 3R, 좀 더 보태 SQ3R, 즉 탐색하고(Survey), 의문을 갖고(Question), 읽고(Read), 되새기고(Recite), 검토(Review) 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수업에서는 아예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매번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첫머리에 항상 강조하는 ‘지식을 이용하여, 심층적 이해를 추구하며, 자기의 의견과 주장을 세우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 계발의 목표는 꿈같은 소리입니다. 


반면, 교사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오른 교사들은 가르치는 지식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이지 나름의 교육적, 철학적 근거를 가지고 가르침에 대해 계속적으로 연구하면서 더 나은 교수 방법을 찾아 심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즉, 지식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는 교사들일지라도 교과서의 지식에 집착하지만, 실용적 관점에서 교과서의 불필요한 지식들을 과감히 제외하고 아이들에게 현재, 그리고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먼저 선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유의미하게,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교수 방법으로 가르치려고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즉, 선별된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식견, 교훈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개념이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런 개념을 배워서 얻는 게 있을까?’

‘오히려 학습동기를 유발하기보다는 학습 포기를 유도하는 내용들, 수준들은 아닌가 ?’


‘과연 우리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는 지식들이 얼마나 우리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지식들인가?’ 반성해보자는 의미에서 던져보는 질문들입니다. 가짜 정보를 포함하여 엄청난 정보들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무엇들을 꼭 알아야 하는지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필요한 정보, 지식들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반성입니다. 내가 지도교사였던 고등학교 연구 프로젝트 팀에서 급우들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나 지식이 무엇이냐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의외로 성 교육의 부실함, 성에 관한 지식 등을 요구하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뜩이나 교내에서 손을 잡고 다니거나, 가끔 구석진 곳에서 껴안고 있는 아이들이 발견되던 학교 교정이었던 만큼, 교사들은 아예 모른척하고 넘어갔으면 했던 것들이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식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이후 섹스와 피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14세부터 16세까지의 중학생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제대로 가르치자는 의도일 것입니다. 


옛날에 ‘광수생각’이라는 1쪽짜리 만화 연재가 히트한 적이 있습니다. 단지 1쪽에 불과한 만화 내용에 그 시대의 모순과 허점을, 또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허점을 예리하게 치고 들어와 그려냈던 만화이었습니다. 거기서 한 편의 만화가 교사인 나에게 실소와 함께 엄청난 의미를 던져 주었습니다. 만화 내용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곤충을 세 등분하면 어떻게 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지에 가로 세 칸을 주었습니다. 교사가 생각했던 정답은 당연히 머리, 몸통, 다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정답은 ‘죽.는.다.’였습니다. 이론적인 지식과 현실적 통찰이 괴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통쾌한(?) 만화 컷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우리가 가르치는 지식들의 비현실성이라는 맹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으로도 보였습니다.


아이들도 먼나라 얘기같은 무의미한 지식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당연히 흥미를 잃고 수업을 멀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사들 입에서 교과서 집필진으로 교수들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지 고등학교 수준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마치 그 교과를 전공해야 하는 대학생들 전공서적을 만들 듯이 온갖 관련된, 그러나 현실성 없는 전문 지식들을 밀어 넣습니다. 그렇다고 은연중에 안목과 식견을 넓혀주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교과의 교과서 내용과 수준은 오히려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역기능을 발휘하는 자료일 뿐입니다. 


지식의 현실성과 실용성, 우리 교사가 교과서의 지식을 가르칠 때 필히 고려해야 할 중요 요인입니다. 교사는 교과서의 지식들을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실제 세계와 연관시켜주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교사의 창의적인 안목과 실제 세계에 대한 건설적 비판 인식으로 교과서 내용을 재해석하여 적용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자기 나름의 지적 안목을 형성하고, 세상을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성장시켜 주는 것입니다. 


교사의 수업은 이러한 교재 해석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교사가 갖추어야 할 전문능력 중의 하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배움을 이끌기 위한 교과서의 재구성 능력입니다. 우리의 경우 교과서를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교사들이 교과 내용들에서 현실적이고 유용한 내용들 위주로 선별하고, 재구성하여 가르치는 노력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교과서가 시대가 요구하는 내용에 부적절하거나, 너무 많은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교사의 능력으로 필요한 내용들만을 선별합니다. 그리고 교과서에 제시된 배열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선별한 내용들을 재배열하고, 결합하며,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현상 등과 연관하여 의미화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지식들이 현재 세상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고,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어떤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관조할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한 탐색과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관점, 능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습의 최적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교사의 재구성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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