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산다
‘교장이 미쳤나 봐’
‘교장 언제 떠나요?’
교문에서 복장과 지각 단속을 하고 있는 교장을 지나치며 아이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치마 속에 겨울 운동복을 입은 아이, 교복이 작아서 못 입는다는 아이들을 향해 생활부 교사들보다 더 지독하게 잔소리해 대는 교장의 행동에 아이들이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어느 학교든 복장이나 지각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단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느냐가 관건인 것이죠. 교장, 교감이 먼저 나서서 교문이나 현관에서 아이들을 질책하듯 단속하게 되면 아이들은 멀리서부터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방어본능이 먼저 작동됩니다. 아이들에게 교문을 지키는 교장, 교감은 일반 교사들보다도 더 먼 이방인이고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 허술한 학교 담을 찾아 타 넘어가는 오히려 위험한 모험을 감행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자주 보아온 풍경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했던 아이나, 아침부터 교문에서 결려 이미 잔소리를 듣고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나 모두 이미 불만이 쌓인 상태인지라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면서 지도해야 하는 담임들이 더욱 어려운 입장이 되어버립니다.
교장의 임무에는 단위 학교의 최종 책임자로서의 교육적 기능과 함께 관리적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교육적 기능이 본업이고, 관리적 기능은 본질적인 교육적 기능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자 부차적 기능에 불과합니다. 교장이나 교감이 관리적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교육적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순기능을 하는지를 항상 숙고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교육적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리적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보다 인간적이고, 교육적인 역량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관리적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교사들로부터 전문적 권위와 인간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사 양성 및 승진 과정은 인간적이고 교육적인 전문가로서의 능력 신장에 접근하지 못하다 보니, 학교 교육을 위한 관리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이 분리된 채 따로 놀게 되는 꼴입니다. 심지어 아이들과 교사들을 우선하는 합리적, 교육적 관점보다는 부차적인 행정적, 관리적 관점이 우세합니다. 그저 문제없는 학교 운영에 더욱 치중할 뿐 아이들과 교사들의 자발적, 교육적 활성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심조심 승진 과정을 밟아오는 동안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를 애초부터 만들지 않아야 된다는 관리적 관점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철저하게 내재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전에는 권위적, 관리적 자세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예전의 교사들도, 예전의 아이들도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단지 관리자들만 아직도 과거의 권위주의적 시절만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교사들과 아이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교장, 교감들이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활성화하기는커녕 역효과를 가져오는, 아주 부차적이고 미시적인 관리적 기능에만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승진 과정의 모순을 제외하고 교장이 되고 나서도 관리적 기능을 우선적으로 취해야 하는 관리자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자들의 개인적인 성향도 있지만, 제도적 원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단위 학교의 관리자들이 교육적 기능보다 관리적 기능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이유들 중 하나는 우리의 권위적 상의하달식 행정에 기인합니다. 교육부, 교육청, 그리고 학교 관리자, 교사들.. 이렇게 기관 간, 직급 간의 위계적 질서를 중시하며, 상급 기관의 하급 기관에 대한 지시와 감독, 명령, 확인하는 극히 사무적이며 관리적인 차원 위주로 교육 관련 기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학교들을, 그리고 교사들까지도 탈 개성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전근대적 관치(官治) 행정이 교육행정 시스템에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교장이 되면 우선적으로 관리적 관점으로 무장한 채 관리자 역할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단위학교의 재량권이나 자율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교장 중심의 교육적 학교 운영은 먼 나라, 남얘기일 뿐입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학교 관리자들은 관리자들이 교사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보다 상급기관, 윗사람 눈치 보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장들은 상급기관의 지시 사항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우선합니다. 당연히 관리자들은 이 지시 사항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피동적이고 형식주의에 치우친 학교 운영에 주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진이나 인사이동이 상급기관의 평가에 의해 좌우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를 바라보지 않고 위에만 바라보는 시스템이 가져오는 학교조직의 관료화와 비민주성은 오히려 관료주의적 교장을 길러내는, 그래서 더욱더 학교의 관리적 기능만 강화시키는 역기능만 가지고 올뿐입니다. 그래서 단위학교의 자치화, 자율화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교장의 관리적 기능을 강화하는 또 다른 복병은 안전사고입니다. 교사의 불찰이든 아니든 학생들에게서 사고가 생긴다면 무조건 교사 책임이고, 최종적으로는 관리자의 책임입니다. 언젠가 어느 학교가 소방훈련을 하다가 소방 사다리가 고장 나서 주저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와 교사가 다치고 사망까지 함으로 인하여 학교장이 문책을 당하고 해임되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학교장이 소방 사다리까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결과들이 학교 현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예를 들어, 담임할 때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 농촌 봉사활동을 자주 다녀왔습니다. 대부분의 교장들은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교육적으로는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지만 혹 아이들이 나가서 사고 날 경우 자신의 책임으로 문책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리자와 설득하고, 싸우기도 하고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내면 갔다 오는 것이고, 정 겁내해서 허락을 안 해주면 못 가는 것입니다. 큰 문제가 없도록 관리하는데 급급한 교장들이 점점 더 관리 기능 쪽으로만 치중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압박입니다.
관리자가 관리 위주의 학교 운영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은 한 학교에 재임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교장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4년 근무를 전제하지만, 보통 2년, 최악의 경우 매년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하여튼 교장의 인사이동은 교육청 마음입니다. 교육적 소신이 뚜렷한 관리자일지라도 4년 근무에 교육철학을 펼치기 어려운데 겨우 1, 2년 재임 기간으로는 움직이기 어려운 교사들을 설득해 가며 관리자들 스스로 자신들이 움직여서 더욱 교육적인 방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모습을 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저 문제를 안 일으키는데, 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관리적 역할에 주력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보아도, 아쉬울 것 없는 교장이 겨우 1, 2년 기간에 무엇을 해낸다고 무리해 가며 일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현행 교사 이동 제도하에서는 개인적으로 아무리 잘해보려고 해도 주어진 제도 안에서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교장들이 관리적 기능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반면 모범적인 학교 운영을 보이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정기 이동 없이 장기 근무가 가능한 사립학교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육적 소신이 뚜렷한 교장일지라도 학교를 둘러싼 제도적 요인들의 변화 없이는 교육적 기능에 전념할 수 없는 실정인 것입니다. 마치 미국의 사상가 라인홀트 니부어(R.Niebuhr)가 강조한 대로 아무리 개인이 도덕적일려고 해도 사회적 제도나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인의 도덕성은 발휘될 수 없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입니다.
앞서 학교 등교할 때 복장이 엉망인 아이들이 교사들의 통제 없이 전체 조회에서 활기차면서도 질서 있는 모습을 자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미국학교의 경이로운 모습을 언급했습니다. 우리처럼 외형적인 관리에 치중하는 겉만 번드르르한 학교교육이 아니라 보다 교육 지향적이고 내실 있는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학교의 교육적 기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일깨워 주었던, 의도적인 ‘관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하면 관리도 가능할 수 있음을 입증해 주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학교현장에서 보다 중요한 접근은 관리자들이 의도적인 관리적 기능만을 앞세우는 것보다는 전문적, 인격적 권위로 교육적 기능을 우선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관리적 기능이 자발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거꾸로 역행하는 꼴입니다.
오죽하면 최근 교권침해 현상의 심각화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주장하자는 소리도 나옵니다. 그동안 겨우 조금씩 발전시켜 온 학생 인권 신장이 교권침해의 원인이라는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학생인권 신장이 학교 관리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장단속이 더 심해지는가 봅니다. 실제로 관리 기능에만 매달리는 대부분 관리자들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교권신장과 학생인권 신장, 모두 학교 현장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후퇴되어서는 안 되는, 당연히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교육적 가치임에도 이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정략적인 발상인지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관리적 관점에 치중하는 관리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미처 교육적 관점을 형성하지 못한 저 경력의 교사들은 이러한 류의 관리적 교육관을 쌓아갑니다. 관리적인 교장 밑에서는 관료주의적 순응형 교사를 길러내는 역기능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보아온 것이 이런 관점밖에 없으니까요. 현관과 불과 5m 떨어진 매점과의 거리를 보도블록이 깔아진 상태임에도 아이들에게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가라고 교감이 지시합니다. 이에 매 휴식시간마다 이를 감시하고 있는 생활부장, 어쩔 수 없는 지시에 지키고 있으면서도 생활부장의 마인드에 이러한 관리적 관점이 각인되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교육적’인 교사보다는 ‘자기들에게 성실한’ 교사만을 선호하는 관리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교사 초반에 미심쩍게 가지고 있던 교육적 관점도 뭉개집니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는 의욕은 싹 사라지고 그저 지시하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의식으로 굳어져간다는데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감도 그렇게 배웠을 것이고, 그 교감 밑에서 지적당하며 투덜거린 교사들도 나중에 관리자가 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오직 관리적 관점만이 전부이고, 더 넓은 교육적 관점까지는 갖추지 못하게 되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역시 학교의 발전을 가로막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매 방학 때 의례적으로 행하는 1박 2일 연수 때나 기회 될 때마다 수시로 학교 운영이나 특정 분야에서의 모범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을 탐방합니다. 당연히 교장, 교감도 동반하여 방문합니다. 하지만 탐방으로 그칠 뿐 다녀온 후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도를 아예 해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대부분 모범학교들의 모습이 교육적 관점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반면, 관리적 기능에 집착하고 있는 관리자나 교사들의 관점으로 볼 때 자신들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거나,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관리적 관점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혹 보일지라도 굳이 따라 하지 않습니다. 모범학교 관리자들이나 교사들의 헌신적이고 민주적인 운영관은 ‘내가 어떻게 교장이 되었는데 저런 것을 하냐?’라는 권위적 관점과 ‘저렇게 해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감당하냐?’라는 관리적 관점에서 배제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학교는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오늘도 관리자들은 혁신학교를 배우러 1박 2일 연수를 갔다 온다 합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산 낭비입니다. 현재의 관리적 기능 위주로 학교 역할이 고착화되는 한, 당연히 ‘교육’이라는 큰 틀을 인지하지 못하는 교사들에게 ‘학교 개혁’이라는 변화는 기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