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의 전문성
‘샘, 저도 샘처럼 논술형 시험으로 보고 싶은데....’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마주친 한 중년 교사가 나의 시험 방식인 논술형 평가 방식에 대하여 묻습니다. 교사의 의도와 변화하고자 하는 방향은 짐작이 갔으나 나름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영역인지라 한마디로 설명해 주기가 쉽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일단 자리에 돌아와 나의 평가 방식에 대한 평가 기준을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주었습니다. 담당교사의 능력에 의해 접근 가능한 평가 방식이었기에 내 평가 기준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다시 물어보겠지 하는 의도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상 질문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논술형 시험을 보기에는 각 과목별 특성, 그리고 특히 교사의 능력에 따라 접근 가능성 여부가 달리 지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요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나마 객관식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독일의 교사들이 토론과 논술로 수업과 평가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우리 교사들도 수업개혁을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문제는 이런 고민을 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을진대 이러한 교사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양성 및 연수 시스템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고 실제로도 필요한 교사의 능력은 그저 교과서에 있는 지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수준이 아니라,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리고 지적 성장 과정에서 ‘깨우침을 줄 수 있는’ 그런 교사의 교수 역량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 양성 과정이나 임용 후 연수 과정에서 이러한 역량을 길러줄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맡은 아이가 괴물이든,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있든 이해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를 알아내고, 그 아이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런 교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범대학 과정에서, 교육대학원 과정에서, 그리고 교사가 된 후 연수 과정에서 이런 역량들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표어만 반복될 뿐, 내 경험으로는 우리 교사 양성 제도가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무엇을 얼마나 고민하고 구체화시켜 왔는지 아리송할 뿐입니다. 아마 교사 지원 인력들이 우리나라처럼 우수한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각 대학에서 상위권에 속하고 있는 사범대학이나 교대 출신의 엘리트들입니다. 또 이러한 엘리트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사가 됩니다. 공부라면 다들 한가락한다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 수준의 고급 인력들입니다. 그런데, 왜 의욕이 넘치던 엘리트 새내기 교사들이 임용 후 몇 년만 지나면 대부분 현실에 안주하게 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된 성장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들 중 교사 양성 시스템 부실도 한몫합니다. 즉,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대학에 교사가 되겠다고 입문하지만 이들을 교육하는 교사 양성 과정도 부실하고, 교사로 임용된 후에도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교사의 질을 퇴행시키는 여건과 제도 속에서 고전분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엘리트들을 제대로 이끌고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췄더라면 아마 핀란드 교사들에 못지않은 교사들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학부터 더듬어보니 우리 교사 양성 실태는 너무 빈약하고 체계적이지 못했습니다. 사범대학을 거쳐 교사 임용에 이르지만 대학 기간 동안 예비 교사들이 학교 실전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이나 교육 활동과 관련된 어떠한 교육 기회도 경험하거나 지도받지 못합니다. 예비교사들에게는 교과에 대한 전문 지식보다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 능력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상담학에서 상담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 즉 상담, 치료, 교육 등을 충족시켜 주는 동인(動因)으로서의 라포(rapport)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항상 아이들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지도해야 하는 교사일진대 정작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아이들과 호흡, 공감하지 못하고 갈등 상황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성인사회의 병폐들이 우리 아이들의 사회에까지 번지고 있어 아이들을 지도하기에 상당한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만 원만하게 학급 운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문제로 찾아와도 제대로 된 상담을 못해주는 안타까운 상황을 많이 봅니다. 아이들에 대한 이해, 지도 방법 등 실제적인 사례 위주의 교육을 사범대학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교직에 나와야 되는데 그런 준비를 제대로 시켜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교과서 한번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학교 현장에 나가면 교과서가 있고, 그 안에 든 내용만 잘 전달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여 교육과정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당연히 사용할 교과서를 가지고 어떠한 내용들을 선별하고, 구체화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조차 없습니다.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하든, 동영상 등 다른 자료들을 이용하여 수업을 하든 자신이 맡은 교과 시간에 필요한 지식들을 선별하여 전달을 제대로 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훈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다 효과적인 수업을 펼쳐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준비, 연습이 대학에서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전혀, 그러면서 학교 현장의 실태, 그리고 변화와 동떨어진 내용 위주의 이론적 수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는 이론을 배우는 교재는 대부분 미국 원서들이었습니다. 사범대생들이 우리 학교 현실에 맞는, 그리고 바로 적용 가능한 접근들을 배우지 못하고, 왜 굳이 이론들만, 그것도 굳이 외국 원서를 통해서만 배워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됩니다. 미국 원서만 해석해 나가는 이론 수업에 오죽 답답했으면 교수님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학교 현장을 경험해 본 교수는 거의 없고, 외국, 그것도 대부분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이론가들로부터 이론적인 것만을 암기하도록 강요받는 시간만 보낸 셈입니다. 물론 교육학과였기에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학생들을 대비한 교육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 덕분에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교육에 관한 이론들, 그리고 교육적 식견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고 대학 지리교육과를 나온 친구도 교수방법은 아예 접해보지 못했고 그저 내용만 배웠던, 대부분의 사범대학에 속한 과들이 같은 사정이었다 합니다. 하여튼 교사를 길러내고자 하는 사범대학의 특성상 적실성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그 당시는 극심한 정치적 변동기에 있어서 제대로 된 대학 교육을 받기도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부족해 보이고 아쉽습니다. 나만의 대학 경험이었다면 다행입니다.
결과적으로 예비 교사를 양성한다는 사범대학이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질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이 변해야 합니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내용만 강조하는 교수의 강의보다는 예비 교사들의 현장 교육에 대한 진지하고 심도 있는 연구 및 토론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문적인 내용은 교사가 된 후에 스스로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장의 문제들을 강의실로 가져와 교수와 함께 풀어감으로써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자기학습자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내가 대학원을 마치고 계약직 교사로 처음 학교 현장에 발을 디뎠을 때 전교조 교사 해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교육학을 공부했다는 놈이 왜 학교에서 교사들이 해직되어야 하는지, 좋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야 했는지,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건지 감을 못 잡고 갈팡질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교육학 이론과 현실과의 괴리였습니다. 따라서 예비 교사들로 하여금 학교 현장의 현실과 괴리되지 않으면서, 현재의 여건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세와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보편적인, 또는 뛰어난 이론일지라도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문제의식을 근간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언젠가 한 교수님이 자기 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와 수업을 참관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다. 그나마 학교 현장을 접하고자 노력하는 교수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그나마 대학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학교 현장을 접해볼 수 있는 교생 실습 4주 기간도 지극히 짧습니다. 그나마 교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 훈련된 교사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2년간 파견 연수할 때 아프리카의 잠비아(?)에서 온 교사를 만났습니다. 같은 교사이기에 그들의 교사 훈련은 어떠한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로 치면 교생실습을 1년이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후진국에 불과한 나라에서 교생실습을 1년씩이나? 그만큼 후진국조차도 교사 양성만큼은 공을 들이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 교생실습은 4주간 잠깐 스쳐 지나가며 학교 현장을 경험하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핀란드에서는 교생들을 받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학교들이 따로 있을 정도로 교생훈련이 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교생들을 교육할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갖춘 학교를 지정해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교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하고, 고등 수업능력까지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아이들 모두 도움이 필요하며, 보통 아이들이 안고 있는 작고 알아채기 어려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확실하게 보완, 대처할 수 있는 기법을 교육실습을 통해 확실히 몸에 익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실습생이 각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매시간 수업실습이 끝날 때마다 담당교사와 대화하면서 점검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맡고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리고 동시에 단 한 사람의 낙오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핀란드 교사 양성 교육의 장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스템입니다. 우리처럼 학생들이 교생 나갈 학교를 어렵게 구해 제대로 된 지도도 받지 못하면서 그저 교생실습 기간을 때우는 것에 급급한 것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결국 교원 양성기관과 학교 현장과의 연계성, 즉 적실성(適實性)을 얼마나 강화하느냐에 교사 양성 교육의 내실화가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위스 국제 경영개발원(IMD)의 평가에서는 우리 대학교육의 사회 요구 부합도가 항상 조사 대상국 중에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데, 아마 예비 교사들을 위한 사범대학 교육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사 양성 과정은 핀란드 교사들이 석사 이상을 갖춰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대학원까지를 기본 양성과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범대학 교육과정에서는 철저히 교육학과 상담학, 그리고 교육 관련 인문 영역을 섭렵할 수 있도록 하여 교사로서의 의식과 소양, 즉 교사다움을 갖출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다음 교육대학원 과정에서 전공 영역인 각 전문 교과 분야를 심화시킬 수 있는 교수방법 연구,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대학 과정에서 최소한 몇 달이나 1학기 정도의 기간을 설정하여 교생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교생전문학교를 지정하고, 교생들을 철저히 지도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사들을 배치하여 제대로 된 실습이 될 수 있도록 체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