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는 辯
호텔리어로 30년. 사원에서 총지배인까지. 열정을 다해 살았다. 그리고 별별 일을 겪었다. 아니다. 그렇게 겪으며 성장했다는 말이 맞을 터이다. 그 일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내와 만났고 우주에서 제일 예쁜 두 딸을 만났다. 어찌 보면 그것만큼 행복한 결과가 또 있을까?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다. 특히 주말과 연휴에 바쁘게 살아왔다. 왜냐하면 남들 놀 때가 제일 바쁜 직업인 탓이다.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다.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일 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때다 싶어 30년간의 일들을 정리하고 누군가 ‘호텔리어’라는 직업을 갖는다면 작은 길잡이 역할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작은 딸이 같은 길을 걷겠다고 나서면서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을 썼다.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랑과 응원을 받았다.
대학 문학동아리에서 시를 썼고 단편소설의 습작도 했다. 그래서 소설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꼭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던 탓일 거다. 브런치 스토리를 가입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시작하기로 마음을 굳건히 먹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꾸준하게 연재 형식을 빌려 도전하기로 했다. 아니 도전이라는 표현보다는 살아내기로 했다. 검색을 해보니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플랫폼에 심사도 필요하고 떨어진 경험담이 많았다. 또한 글을 쓰다가 포기하고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았다. 내심 자신감이 떨어지고 잘할 수 있을까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데 덜컥 한 번에 환영한다고 하니 또 한 번 두려움이 밀려왔다.
노인을, 나이 먹음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나이 먹고 있으며 곧 노인이 될 거다. 누구나 반드시. 그런데 간혹은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생각했다. 적어도 기다리지 말고 맞이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사실 부산한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당신은 하고 싶은 게 많아 좋겠다.”라고 말했을 때, ‘그래 맞아.’라고 인정했다. 맞다. 나는 참 하고 싶은 거,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사람이다. 그냥 남들처럼 조용히 편히 살며 즐기면 될 것을 왜 그리 용을 쓰냐며 아내는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하고 싶을 일을 하면서 사는 인생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후회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왕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시간이 한계가 있으니, 그중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맞이해 보자는 심사다. 그래야 후회가 조금이라도 작아지지 않을까?
계급장 떼고, 어깨에 힘 빼고, 내가 갖고 있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시작해 보자. 몸이 가벼워야 하늘을 날 수 있듯이. 그저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일. 그것도 한편으로 재미있을 것 같다. 살아보니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정답을 찾아 나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과 무게감에 살짝 위축되기는 하지만 그냥 쓰자. 그것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면 족하지 않을까. 그래, 열심히 써 보자. 사실 나는 그거면 족하다. 다른 거는 다 필요 없다. 그냥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을 쓰면 행복할 것 같다. 혹여 라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재미있다고 해주면 좋겠다. 그럼 정말 기쁠 것 같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어도 괜찮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있고 그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놀이터에 깔린 모래 위에서 작대기 하나로 수많은 글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었다. 바로 그런 놀이터가 나에게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놀이터가 글 감옥이든, 나를 떠밀어 넣는 계기가 되던, 제2의 인생이 되었든, 적어도 살면서 해보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살아낸, 행복한 이야기꾼이면 나는 그것 하나면 족하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브런치 스토리라는 문을 열어 내게 펼쳐진 놀이터가 보이지 않는가? 생각만 해도 뛰는 가슴과 설렘이 느껴진다. 나의 내면에 가득 담긴 실타래를 거미줄처럼 투명하고 들어내고 싶다. 정말 신난다. 앞으로가 재미있을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다. 꼭 소풍 가는 전날 같은 날이다. 아, 행복하다.
2024년 10월 22일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