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려버린 일상
배드모닝. 요란스러운 빗소리가 귀에 따갑게 내려꽂힌다. 이렇게 고약한 모닝콜이라니.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겠구나.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뜨고 맞이한 현실. 우산도 소용없을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져내린다. 쏴아아아아. 망했네. 으으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가다가 정신이 반짝 든다. 아 맞다! 나 이제 지하철 안 타지. 케케. 걸어서 10분 거리니까 젖어봐야 뭐 얼마나 젖겠어.
이제 막 대리님 소리가 익숙해질 무렵 균형있는 국토 발전이라는 거룩한 명분 하에 공공기관들의 지방이전이 본격화되었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전국 구석구석 흩뿌려진 회사들. 신의 직장이라 불리며 취준생들의 워너비였던 그들이 한 순간에 지방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거지. 나도 마찬가지. 이사 or 퇴사.
“에이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 그리도 어차피 이렇게 평생 엄마아빠랑 같이 살 수도 없는 거잖아. 안 그래?”
부모님 잘 만난 덕에 평생 수도권 토박이로 살아온 나는 호탕하게 이삿짐을 꾸렸다. 걱정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인들에게 오히려 잘 됐다며 너스레도 떨었지. 매일 반복되는 지옥철 출퇴근도 지긋지긋하다고. 독립하면 집은 어떻게 꾸밀지. 얼마나 자유롭게 살 것인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주문을 외우듯 술술 읊어댔어.
하지만 사실 이건 비밀인데. 회사 게시판에 이전 확정 소식이 올라온 이후 6개월동안 난 한번도 마음 편히 잠든 적이 없었어.
하루에도 몇번씩 멍하니 굳어버리던 손. 사무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바위에 짓눌린듯 속이 답답했다. 이 경력으로 이직이나 할 수 있을까. 두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었던 취업정보 사이트들을 뒤적거리다 이내 손을 내려놓는다.
나에게는 케케묵은 악몽이 있다. 면접실을 가득채운 질문과 답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것 하나 나를 향하지 않는다. 차라리 손이라도 들어볼까. 결국 이리저리 방황하던 눈을 가장 자비로워보였던 면접관 중 하나에 고정하지만 그는 끝까지 나를 보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손한 마무리 인사 뿐.
이럴거면 왜 부른거야?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다. 나에게는 질문의 자격이 없으니까.
다시 그 시간을 반복할 수 있겠어? 이제는 나이까지 먹어버린 날 받아줄 다른 회사가 있을 것 같니? 그래. 조금만 버티면 과장이잖아.
주저앉자. 앉아. 여기 앉으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졸이다 태워버렸는데. 지방이 뭐 대수니. 너 그렇게 무책임한 애 아니잖아.
베프에게조차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인생을 건 시험을 몇번이나 치뤄내고 있는 친구에게. 겨우 비집고 들어간 회사의 희망퇴직 소식에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난다는 동기에게 이런 건 투정에 불과하니까.
남들 앞에서 주절대던 말들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였다. 괜찮을거야. 괜찮겠지. 그래.
투다다다다다. 우산을 뚫을듯이 때려대는 빗소리. 지하철 타는 사람들 고생 좀 하겠네. 하아. 비오는 날 지하철 진짜 싫었는데. 하지만 다 지난 일이야. 내가 사는 산골짜기 혁신도시는 버스도 잘 안 다니거든. 오죽하면 페가수스라고 부를까. 있다고 말은 들었는데 다니는 꼴을 못 봤으니 전설의 동물 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 집 베란다로 보이는 회사 사옥. 요즘 나의 출근길은 횡단보도 2개가 전부다. 사무실까지 넉넉잡아 15분 컷. 좋겠다고? 그래 좋다. 이거 딱 하나만 좋은 게 문제지. 처음하는 독립이라 그랬을까. 별 생각없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 터를 잡았다. 그랬더니 세상에. 현관문을 벗어나면 온 세상이 회사사람이였다.
수면바지를 입고 내려간 쓰레기장에서 마주친 부장님. 세상에! 너무 싫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공손히 인사를 드렸더니 날 못 알아보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사도 드렸으니 떠나려는데 뒤늦게 번뜩이던 그의 얼굴이 뜨악하고 벌어진다.
“어얽! 최… 최대리였어?!”
뭐 그렇게까지 놀라시는 거야. 너무하시네. 그 중 최악은 우리집 창문 어디서든 보이는 저 직장뷰. 도무지 한시도 날 가만두지 않는구나.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그런 건 반년만에 익숙해지더라. 다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의 주말은 몇 년이 지나도 울적하다. 친구 만나러 오가는 서울 나들이도 친한 동료랑 노는 것도 한두 번이지. 혼자놀기 고수라고 자신했던 내가 주말마다 현타에 휩싸인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불시착을 위해 높으신 분들이 점찍어준 일명 혁신도시들. 말이 혁신도시지. 그 지역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딴 곳에 논밭을 밀어버리고 지어놓은 탓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숨이 턱 막혔다. 근사한 사옥도 올리고 새 아파트도 지었는데 조금만 벗어나면 허허벌판이야.
어느 날은 밤에 자려는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오어어얽!”
“오어어어얽!!”
뭐지? 그런데 점점 더 커지는 비명. 저러다 그것이 알고싶다 나오는 거 아니야?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덜덜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누르다 혹시나 싶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회사동료에게 카톡을 했는데.
“ㅋㅋㅋㅋ 이거 고라니 소리잖아요. 아 웃겨 ㅋㅋ”
응? 고라니? 유튜브에 찾아보니까 그 소리가 맞았다. 고라니가 저렇게 괴상망측하게 울었다니. 팀장님은 야근하고 사택 가는 길에 아기 멧돼지도 만났단다. 우와. 귀엽다. 사진을 보며 좋아하는 우리 모습에 기겁하는 주임님. 아기 멧돼지가 보이면 옆에 엄마가 있다는 뜻이니까 가까이 가면 큰일 난단다. 엥? 멧돼지가 사람을 들이받는다고? 진짜? 와 역시 본토 출신은 다르구나. 지역인재 전형으로 입사한 주임님은 여기서 나고 자랐거든.
이렇게 장대비가 오는 날에는 바닥을 잘 봐야해. 지렁이? 여긴 뱀이 나와서 까꿍을 하거든. 도시하천의 뱀을 생각하면 안 돼. 사이즈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저번 장마에 만난 그 구렁이는 영물이 틀림없다니까? 아스팔트에서 걸음마를 뗀 도시인에게 이 곳은 정글이었다. 그래도 이런 건 나름 재미라도 있지.
몇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곳은 여전히 유령도시라 불린다. 지방상권의 부활이 어쩌고 난리였는데. 회사 앞 상가에는 여전히 공실이 더 많아. 그 이유는 유동인구가 없으니까. 몇만명이 내려왔는데 왜 사람이 없냐고? 출퇴근 시간 혁신도시를 가득 채운 통근버스가 마치 참치잡이 배의 그물처럼 직원들을 싹쓸이로 쓸어 나른다. 그러니 저녁장사를 할 수가 없지. 주말에는 문을 닫는 가게도 많다.
너무 그렇게 보지마. 우리만 이러는 거 아니야. 공무원들의 도시 세종시도 다른 혁신도시들도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매년 언론에는 이런 우리를 욕하는 기사들이 올라오고 지역 상인들은 반복해서 통근버스를 금지해 달라는 민원을 넣지만. 죄송합니다. 그들도 그들의 사정이 있어요.
평생 해온 일로 계속 먹고살고 싶어? 그럼 시키는 대로 가! 낯선 지방으로 쫓겨나듯 떠나야 하는 신세에 많은 사람들이 사표를 냈다. 언론에 기사도 났지. 물론 베플들은 다 비난뿐. 누가 거기 다니라고 칼 들고 협박함?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 싫으면 중이 떠나라. 예예. 예상했습니다요. 저희는 동네북이니까요.
“어우 그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 난 못해 못해. 요즘 비혼이 대세라던데 너도 그거 해. 깔깔깔. 어차피 거기 가면 결혼은 글렀잖아. 깔깔깔”
결혼식장에서 만난 반갑지 않은 동문이 나를 놀리는데 할 말이 없었다. 우리 회사에 지원했다 떨어졌다고는 들었는데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쌓인건가. 하지만 사실이야. 잊을만하면 간간히 찾아오던 소개팅 의뢰가 지방에 오니 뚝 끊겨버렸거든. 어쩌다 한번씩 썸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피어날 뻔 하다가도 내가 사는 곳이 어딘지 알면 하나같이 어이쿠하는 표정으로 굳어버린다. 그래 그냥 나랑 인연이 아닌거지 뭐. 그치만 그 지뢰라도 밟은 듯한 반응을 보고나면 술 한잔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 때는 저 장벽같이 늘어선 통근버스들이 아니꼬웠다. 아니 분명 저 버스 금방 없앤다더니. 그 말만 덥석 믿고 내려온 내가 바보지. 근데 요새는 몇년간 이어진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장거리 생활에 골병이 들어가는 직원들이 그저 안쓰러워.
지방이전으로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었다. 맞벌이 부부가 함께 오려면 배우자 한쪽이 퇴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지. 지방에는 이직할만한 일자리도 없고. 결국 각자의 이유로 이 먼 거리를 매일 오가는 직원들을 위해 버스는 살아남았다. 그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새벽부터 나서야 하는 고된 출근길. 그로 인해 남의 손에 맡겨놓았을 아이. 하루종일 자신을 기다렸을 그 아이에게 잠들기 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속삭여주고 싶은 마음.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린 부모들은 지친 몸을 달랠 새도 없이 매일 저녁 퇴근버스를 향해 달린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을 가방에 쑤셔 넣고 자신의 배고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결코 녹록지 않을 생활. 그래서인지 주말부부도 정말 많아졌다. 가족들로부터 뜯겨져 나온 가장의 얼굴에는 온기가 없다. 서울에서는 멀끔하게 잘만 다니더니 퇴근시간이 되면 텅 빈 눈의 좀비들이 끼기덕 끼기덕 편의점을 향한다. 그렇게 삭막한 회사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사택에 들어가 마주하는 건 또 다른 회사사람.
영혼 빠진 목각인형으로 변해버린 그의 얼굴에 생기가 피어오르는 순간은 누군가가 보내준 아이 소식 뿐. 영상통화 속 아이는 점점 자라나고 얼굴에 귀찮음이 늘어간다. 주말에 들어간 내 집은 왜 이렇게 어색한지. 내가 없는 게 익숙해져가는 가족의 모습에 불안함과 외로움이 스멀스멀 찾아오는데 티를 낼 곳이 없다. 그런데 선배들은 그 놈의 술 한잔을 핑계로 이웃 후배들을 본인의 사택으로 불러대기까지. 제발 눈치 좀 챙겨.
평일동안 홀로 독박육아를 떠맡은 직원은 어떻고. 그들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하루종일 종종거린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사색이 되던 과장님. 예전에는 항상 당당하던 선배가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아이가 열이 난다고 해서 지금 바로 가봐야겠단다. 자기 말고 다른 보호자가 없다고.
“…하아…근데 얼마 전에도 감기 아니었어요?”
걱정인지 뭔지 모를 팀장님의 말에 떨어지는 고개.
“그땐 수족구…”
“…그래요. 가봐요.”
“죄송합니다. 미안.”
반복되는 상황에 그의 부재를 채워야 할 동료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처음엔 우리도 같이 걱정했지. 힘드시겠다 위로도 해드리고. 어서 가보시라고 괜찮다고 그랬어. 이해해. 아니 이해해주고 싶었어. 나도 좋은 사람하고 싶었다고. 근데 그렇게 하나둘 땡겨받던 민원이 쌓여가니 말랑했던 감정이 퍼렇게 시들어간다.
다음날. 남편이 연차를 내기로 하고 밤늦게 와준 덕분에 무사히 출근했다는 과장님은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팀원들의 눈치를 살핀다. 커피를 사준다는 말에도 시큰둥한 반응들. 하지만 거기 굴하지 않고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는 슈퍼맘.
대충 두드린 쿠션에 립스틱도 못 바른 그 얼굴에 미안한 미소가 가득하다. 너까지 그러지말아달라는 듯한 눈빛. 후우. 결국 찌뿌둥했던 마음이 안쓰러움으로 바뀌고 조용히 그의 팔꿈치에 붙어있던 밥풀을 떼주었다.
“하하. 그게 여기 왜 붙어있지?”
고군분투하는 그들 앞에서 혼자인 게 부럽다는 망발을 지껄이는 진상들이 있지. 그런 소리 하는 양반들은 어찌 된 게 다 비슷해. 일 없으면서 집에 안 가고 야근하는 동료한테 저녁 먹으러 안 가냐고 치근덕거리거나 일하는 내내 큰 소리로 배우자나 시댁 흉보는 지지 있잖아. 가만 보면 일도 딱 그렇게 한다니까. 아 저는 그쪽이랑 술 먹으려고 야근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기 가족 이야기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요. 아오 진짜 왜 저러는지 몰라.
“죄송합니다!”
비가 많이 온다 싶었는데 서울에서 오던 통근버스 중 일부가 연착을 했다. 달랑거리는 목배게를 목에 건 채 헐레벌떡 들어오는 직원들. 여전한 배게자국에 피로가 가득하다. 새벽부터 서울의 대중교통에 시달렸을 그들.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프리한 복장에 축 가라앉은 파마머리. 오우. 저기에는 폭탄머리도 있네. 크록스도 신고 완전무장을 하셨구만.
그 중 유난스럽게 상태가 안 좋은 과장님의 한풀이가 시작된다.
“아니 내가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오는 길에 바람에 망가진거야. 다시 집으로 가거나 편의점에 들리자니 늦을 것 같고..”
하긴 그 버스를 놓치면 바로 오전반가 행이지.
양말도 갈아신었는데 걸어오냐고 젖은 다리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으슬으슬 온 몸이 시려온다. 이럴때는 라면이 딱인데. 이 시린 속에 그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을 쏟아붓는다면. 캬아. 친척들이랑 계곡이나 바다에 놀러 가면 항상 물놀이 후에 모여 앉아 수박이랑 컵라면을 먹었다. 정크푸드에 엄했던 엄마도 그런 날에는 나와 동생을 말리지 않았어. 오히려 컵라면 뚜껑을 요리조리 접어 만든 그릇까지 쥐어주셨지.
“뜨거우니까 천천히 호호 불어먹어. ”
지금의 나보다 한참 어렸을 엄마의 나긋한 목소리. 그 따스한 미소에 나도 마음 편히 웃어보였다.
“혹시 저랑 점심으로 컵라면 드실 분”
꼴깍. 주변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껴줘!”
잔뜩 흥분한 과장님. 웰컴웰컴. 탕비실에서 얼마 전에 가득 채워놓은 컵라면을 꺼낸다. 주섬주섬. 종류도 다양하네. 전통의 육개장과 근본의 신라면 그 옆으로는 화끈한 오징어 짬뽕, 마지막으로 이름처럼 꼬수운 참깨라면까지. 흐음 뭘 먹으면 좋을까. 오늘의 컵라면은 뭘까요? 오징어 짬뽕으로 결정! 비록 작은 사이즈 밖에 없지만 먹고 배고프면 이따 과자라도 먹으면 되니까. 각자 취향에 맞는 컵라면에 물을 담아 회의실로 향한다. 잘 먹겠습니다! 호로로로록! 라면 먹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진다.
캬아! 이 맛이지! 하하. 사람들을 기다리냐고 조금 불긴 했지만 그래도 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 여기에 본능적으로 이어지는 국물 한 입. 후루룩 꾸울꺽. 크아아! 시원하다. 해산물 향이 그럴듯한 것이 짬뽕 흉내가 아주 제법이야. 면 사이로 살짝 씹히는 오징어 후레이크도 쫄깃하니 씹는 재미가 좋다. 어우. 녹는다 녹아. 역시 고단할 때는 아는 맛이 최고지! 똑같은 이름이어도 컵라면과 봉지라면은 느낌이 좀 다르다. 난 꼬돌꼬돌한 컵라면 버전을 더 좋아해. 국물 맛도 왠지 더 자극적이잖아.
꼬마컵라면이라 그런지 젓가락질 몇 번에 식사가 금세 끝나버렸다. 아쉽네. 분명 몸에 안 좋을 테지만 어쩔 수 없지. 아직 따땃한 국물을 바닥에 가라앉은 스프까지 호로록 마셔버렸다. 우움음음. 역시 몸에 안 좋은 게 맛있어. 자잘한 라면과 후레이크. 거기에 가라앉은 스프로 고농축된 얼큰한 국물까지. 한컵 더 먹기는 많고 애매한 양이지만 완벽한 선택이었어. 굿굿.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애들이랑 저번 주에 물놀이 하던 거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인 비주얼도 물놀이 패션이라며 껄껄 웃으시는 과장님. 역시 사람은 비슷한 추억을 품고 사는구나. 물놀이 맞죠! 잠이 번쩍 깨는 물보라도 맞아주고 언덕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을 계곡 삼아 헤쳐나가고. 하하. 크크. 오늘도 이렇게 웃음에 잊혀가는 서늘함. 이제 좀 살겠다는 과장님의 말이 딱 맞다. 개운하네. 하지만 문득 지긋지긋했던 지하철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