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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란 Aug 12. 2024

신입이 추어탕 좀 못 먹는 게 어때서

MZ 타령은 이제 그만

보글보글 끓고 있는 추어탕을 보고 있으니 벌써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새로 오신 실장과 함께하는 부서 회식. 미꾸라지 관리가 어려워서 그런가. 점점 간판에서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지만 은근한 마니아층이 있다. 우리 새 실장도 그중 하나. 나의 예전 부장이었던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많은 공공기관들이 부정부패 방지를 이유로 순환보직제를 운영하고 있다. 보통 3년 주기로 돌아가는 발령 덕분에 이리저리 사람들이 돌고 도는거지. 

“네. 실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네네. 허허.”

저야 덕분에 잘 못 지내죠. 하나도 안 반가워요. 꼭 저렇게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만 재회하게 된다니까. 어우 지겨워.


실장과 같은 부서였던 시절 회식으로 질리도록 먹은 추어탕집. 오랜만에 온 이곳은 겉모습부터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맛집이다. 오! 대반전. 실내에 들어오니 이 곳도 제법 변했구나. 제일 큰 변신은 식탁. 예전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바닥에 앉아 먹었는데.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모두 의자로 바뀌었다. 기특한 로봇 종업원이 여기도 들어왔구나. 그래도 맛은 그대로겠지? 살짝 불안해지네.  

말끝마다 ‘요즘 MZ들’이 붙어있는 실장은 우리에 대해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너네 이런 거 안 좋아하지?'를 외친다. 그러면 오질 말던가. 언론과 인터넷에서 항상 골칫덩이 취급을 받고 있는 MZ 세대. 그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밀레니얼 세대’라는 나도 거기에 끼어있었다.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거의 30살 차이를 하나로 묶어놓는 게 어딨어. 그래서 난 MZ세대를 ‘요즘 것들’의 있어 보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남들이 MZ에 대해 뭐라 하든 보통 막내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수습 떡만 해도 그래. 안 그래도 박한 공공기관의 신입 월급. 수습기간 중에는 100%도 안 나도는데 수습해제가 발표될 때쯤 같은 부서 동기들과 토론이 시작된다. 

“우리 수습 떡 뭐 돌리지?”

이름만 보고 순진하게 진짜 떡을 돌렸다가는 이게 뭐냐는 핀잔이 쏟아진다. 신입 때는 그런 말 하나하나에 얼마나 사람 피가 말리는데. 이전 선배들과 겹치지 않으면서 다른 동기들에게 뒤쳐지지 않을 간지나면서도 호불호 없는 신박템이 필요해. 야근 후 스르륵 감겨가는 눈을 억지로 비벼가며 리뷰를 뒤져대고 내 피 같은 월급을 녹여 만든 답례품이 도착했다. 추가금액을 내고 주문제작 스티커도 요청했지. 

“늦게 돌렸다가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수습해제 다음날 돌리자.”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문구가 붙은 답례품을 들고 부서 선배들을 하나하나 찾아뵈었다. 두근두근. 부디 좋아해 주셔야 할 텐데. 우리만 보면 눈을 흘겨대던 옆팀 선배도 가르침 없이 막말만 퍼붓던 동기의 사수에게도 다 돌렸어. 굽신굽신. 부디 어여삐 봐주시옵소서.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부서에 동기가 있던 나는 독박을 쓰지는 않았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어. 작년에 우리 부서의 유일한 신입직원이었던 옆팀 주임님은 혼자서 부서 전체에 수제사탕을 돌렸다니까. 주임 1호봉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나. 그 선물을 건네받는 손이 어찌나 민망하던지. 

요즘에도 그런 문화가 있냐고? 당연히 뒤에서는 적폐다 뭐다 말이 많지. 하지만 문제는 퍼스트 펭귄이다. 바다사자가 득실거리는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들 용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뭐 없어?”

그 한마디가 별 거 아닐 것 같지? 그런데 말이야. 부서사람들이 자기 주변 사람들한테 한 번씩만 씹어댄다고 생각해 봐. 그럼 그게 또 퍼지고 퍼져서 메신저에 박힌 내 이름이 너덜 해질 때까지 여기저기서 물어뜯기겠지? 그래서 암만 더럽고 치사해도 갓 입사한 직원은 그 장단에 맞춰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후배가 오면 나도 모르게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는 거지. 관행이라는 게 별 거 아니야. 나는 했는데 너는? 그 마음이 대대손손 굳건하게 대물림된 것뿐.


이것 봐. 내가 아차 하는 사이 막내들이 바삐 움직인다. 괜찮다는 나의 말에 그저 미소로 답하며 앞치마를 나르고 컵에 물을 채우고 그들의 눈이 여기저기 부지런히 상을 챙긴다. 

“흐흥. 여기 직원들은 MZ 안 같네?”

멘트 실화냐? 후배들의 융숭한 대접 앞에 지금 저걸 칭찬이라고 하는 건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은 직원들. 지켜보는 나는 안타까운데 실장놈은 자신의 놀림이 먹혀든 게 흡족한지 능구렁이처럼 비죽거린다. 그냥 고맙다고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 이전에 당해왔던 과거 때문일까. 귓가가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지금 회사에서 한자리들 꿰차고 계신 베이비 부머와 X세대들. 거기도 분명 선배들 혀를 끌끌 차게 하는 금쪽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 세대차이 없는 시대가 어딨어. 본인들도 신입 때 또라이 동기들 때문에 억울하게 눈치 보고 혹여나 동급으로 엮일까 봐 전전긍긍했을 텐데. 그 기억이야 진작 다 잊어버렸겠지. 다 그런 올챙이 시절을 겪고 이 우물에서 이름난 왕개구리가 되셨으면서 왜 맨날 저 MZ 타령은 성실하게 사는 이들의 몫인 건지.

MZMZ거리는 사람들이 불편한 이유는 그 대상이 언제나 만만한 직원들을 향한다는데 있다. 이렇게 어떻게든 적응 한번 해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은 그놈의 MZ 세대로 대놓고 낙인을 찍고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조리돌림을 하잖아. 근데 그러다 그 진짜 MZ가 자기 눈 앞에 나타나잖아? 정작 걔들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해. 뒤에서야 욕을 하든 말든 앞에서는 제대로 반박 한 번을 안 한다니까? 심지어 그 비위를 거스를까 봐 상사들이 눈치를 봐. 괜히 건드렸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라고 당할까 봐 무서운 거지. 걔들은 그러고도 남을 애잖아. 그렇게 진짜 MZ들은 제멋대로 굴게 나 두면서 그 불똥은 또 주변의 멀쩡한 또래 직원한테 튀지. 치사하다 치사해.


마음 같아서는 지금 그걸 칭찬이라고 하신 말씀이냐고 따져 묻고 싶지만 그거야말로 막내들이 차린 상에 재를 뿌리는 일이겠지. 하는 수 없이 냉수 한잔으로 속을 식히고 후배들을 바라본다. 

“제 밑에는 항상 좋은 애들만 들어오더라고요.”

일부러 들으라는 듯 그가 했어야 할 말을 대신 전한다. 귀염둥이들이 내 말에 해사하게 웃는다. 어쩜 저리 예쁘게 웃는지. 회사 곰팡이가 되어버린 나는 잃어버린 얼굴.

“하긴 네가 무서우니까 그렇지.  너 보통 아니잖아”

씨이이... 이 인간 좀 봐라. 기껏 살려놓은 분위기가 저 한마디에 팍 식어버렸다. 말 그대로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 완전 싸해짐. 내 앞에 있는 이 실장 놈이 직속 부장이었던 그 시절은 후우. 정말 혹독한 회사 노잼시기였지.


수호천사였던 사수는 승진으로 떠나고 부장은 보시다시피 노답. 거기에 팀장님은 다른 팀장들한테 치여서 주인 없는 일을 끝도 없이 받아오지. 그런데 이번에 새로 온 과장까지 아주 대단한 지뢰를 만나버린거야. 요즘 어디 마가 꼈나. 옆팀 선배 말대로 어디 가서 씻김굿이라도 받아야 하는건가싶을 정도의 진상. 근무 첫날부터 후배들을 '야'라고 불러대던 지뢰과장은 신분증을 한번 까보고 싶을 정도의 젊은 꼰대였다. 일명 젊꼰. 아무리 봐도 동년배의 얼굴 하지만 그 꼰대력은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최강.

“야. 내가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 예전에는 너처럼 굴면 결재판으로 처맞았어. 알아?”

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그런데 얼레? 갈수록 멍멍이소리가 더 심해졌다. 넌 저 복합기 소리가 안 들리냐? 선배가 문서를 출력하면 알아서 가져와야지. 감히 네가 먼저 퇴근을 해? 그러더니 하다 하다 앞으로 커피가 먹고 싶으면 자기 것도 사 오란다. 너만 입이냐면서. 

아직 업무파악이 안 됐다는 핑계로 민원 대표번호도 메인 업무도 회의도 다 나한테 떠넘겨놓은 주제에 뭐? 이 무능이가 보자 보자 하니까. 월급은 더 적게 내가 일은 훨씬 더 많이 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계속되는 호출에 나는 폭발해 버렸다. 너 왜 자꾸 나 건드려 왜!

물음표 살인마에 빙의하여 무한 질문 공격을 개시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다는 듯한 말투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따박따박 되받아쳤지. 

“그럼 종이 나올 때마다 누구 거냐고 여쭤봐요? 팀장님이 왜 안 가냐 그러시면 뭐라 그래요? 커피비는 미리 주시는 건가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참 겁도 없었다. 내가 바로 MZ세대 망나니였네. 그러자 버벅거리던 과장이 한마디를 뱉었다. 

“너 또라이구나?”

하! 그러는 너는? 나도 한국에서 초중고대학교 다 나왔어 임마. 너 같은 선배들 한두 번인 줄 알아? 그리고 어차피 이 부서 일은 내가 훨씬 더 잘 알아. 네 눈치 따위 볼 필요가 없다고. 이런 인간들은 어차피 잘 보이려고 해봐야 더 만만히 보고 점점 더 심하게 괴롭힌다. 호구보다 또라이가 나아. 미움받을 용기가 마구마구 샘솟았고 그 뒤로는 불러내도 안 나갔다. 

‘메신저로 말씀하세요. 저도 바빠서요.’

그러고 알았다. 이 인간은 증거가 남는 곳에서는 조용했다. 찌질이. 그 뒤로 한동안 인사도 안 받고 날 투명인간 취급하더니 그래도 내가 대꾸가 없자 대뜸 먼저 말을 건다. 본인도 여기 업무는 처음이라 내 도움이 필요하거든. 으으. 어디 학원에서 따로 배우나? 하는 짓이 다 비슷하네.


꼰대과장이 날 건드리지 않으니 내가 이긴 줄 알았는데. 얼마 뒤 팀장님이 날 부르더니 행동 조심하란다. 치사하게 그 무능이가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다 일러바친 거야. 물론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은 쏙 빼고. 내가 선배 취급을 안 해준다고 소문이라도 내려나 보지? 괜찮아. 어느 정도 각오했어. 그래서 나도 그 자식이 한 진상짓을 팀장님한테 하나하나 읊어드리면서 여쭤봤다. 

“이래도 제가 참아야 해요?” 

“후우.” 

내 한마디에 큰 한숨을 내쉰 팀장님. 

“여기는 학교가 아니야. 그런 인간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봐야 네 속만 더 터져. 그런 놈 때문에 평판 깎이는 거 아깝지도 않아? 그러니까 그놈 수에 놀아나지 말고 적당히 흘려들어.”

흥. 그래. 내 편은 하나도 없다 이거지. 하지만 그 말씀은 진리였다. 졸업이 없으니 한번 생긴 적이 퇴사 이후에도 평생을 간다. 지뢰과장과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쭉 껄끄러운 사이지만 난 그 인간에게 먼저 목례를 건넨다. 쟤야 지금도 안 무섭지. 그런데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있잖아. 

겉으로는 수평적 관계와 열린 소통을 내세운 조직. 그리고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외치는 구성원들. 그런데 이 지엄하신 연공서열의 위계질서에서 작은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 되잖아? 그럼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해. 직장 내 괴롭힘 법이다 뭐 다해서 대놓고 하는 사람이 줄어들었을 뿐 모든 세대가 다 똑같았어. 근데 과연 우리 MZ들은 그 법칙을 깰 수 있을까.

내 사번 맨 앞자리에는 입사한 연도가 찍혀있다. 일명 직번. 걔 직번이 몇 번인데? 이걸로 서로의 급을 재보는 거지. 그런 조직에서는 후배가 아무리 먼저 승진을 하더라도 한번 선배는 영원한 상사다. 직번이 곧 권력. 전에 어떤 부장님한테 무려 과장이 반말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여어 오랜만. 그 무례한 인사에 바로 90도로 꺾이던 부장님의 허리. 아이고 선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속으로 놀랐다. 저걸 왜 참아주지?

그런데 곧 주변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걸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훌륭한 조직원으로서 본인의 됨됨이를 몸소 증명하는 거지. 저게 어른의 반격이구나. 부장님은 웃는 얼굴로 상대를 가루가 되도록 까이게 만들었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은 채.  정면승부만이 답은 아니야. 앞뒤 꽉 막힌 공직사회에서 선배를 대놓고 들이받았다가는 벌집통을 건든 미련곰탱이 꼴이 난다. 아무리 정당한 사유로 그랬다 한들 하극상은 하극상이라잖아. 그래도 아랫사람이 참았어야지 소리를 해대는 곳이 이 회사야.


어두었던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데 추어탕이 후루룩 끓어오른다. 드시죠. 어색한 분위기를 정리하고 한국자씩 추어탕을 덜어내는데 동실동실 귀여운 들깨들이 가득 담겨 올라온다. 와! 맛있겠다! 그 와중에 실장 놈은 이 집은 통추어탕이 제대로인데 너네 MZ들 때문에 못 먹는 게 아쉽다며 투덜거린다. 아오. 옆에 놓인 산초를 입 안 가득 부어줄까 보다. 그릇 가득 덜어낸 추어탕에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시래기만 보일 뿐 미꾸라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없어. 뜨끈한 그 국물을 입안 가득 머금으면 그 안에는 깊은 액기스가 가득하거든. 캬아. 진국이네.  고춧가루와 함께 뜨끈하게 속을 뎁혀주는 칼칼한 장맛. 간간히 씹히는 된장콩까지 다행히 맛은 그대로구나.

너무 뜨거운 음식은 몸에 안 좋다지만 이런 탕 종류는 또 목이 살짝 얼얼할 때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맛이 좋단 말이지. 얼큰한 국물을 뜰 때마다 수저에는 인심 좋은 들깨가루들이 가득 올라온다. 참깨가 도시의 세련된 고소함이라면 들깨는 할머니가 떠오르는 정많은 구수함이지. 이 들깨도 호불호가 심하다고 하는데 나는 완전 호호호호다! 

그렇게 추어탕 삼매경에 빠져 수저를 바삐 움직이다보면 간간히 혀끝에 남는 까실한 녀석들이 있다. 음. 네가 미꾸라지구나. 뱉어낼 필요없이 다음 국물과 함께 후루룩 삼켜버리면 그만. 괜찮아. 어른들이 다 뼈가 되고 살이 된다고들 하잖아.

밥 한술을 가득 떠서 넣고 입안에서 밥맛이 다 녹아 사라지기 전에 얼른 추어탕 속 시래기를 숟가락 가득 담아 한입에 먹는다. 와앙. 아직 살짝 뜨겁지만 괜찮아. 푹 끓여서 흐물흐물해진 결마다 눅진한 국물이 뿜어져 나온다.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깊은 맛. 그리고 곧 흐늘흐늘 입 속에서 다 녹아 사라져 버리지. 힐링. 반찬으로 나온 나물도 한입 먹는다. 예전에는 쳐다도 안 봤는데 귀한 나물님이 반갑네. 몸에 기분 좋은 열기가 돈다.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 호록 호록.


모두가 추어탕을 즐기는 사이 실장이 어딘가를 살모사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홀로 돈가스를 먹고 있는 막내 주임님.  

"아니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여길 왜 와? 사람 참 민망하게 만드네."

실장이 마뜩잖다는 표정을 짓자 주임님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하. 메뉴판에 없는 걸 시킨 것도 아니고 본인한테 맞춰줬으면 땡큐 베리 마치나 할 것이지. 자기는 먹지도 못하는 추어탕 집에 끌려와 부지런히 선배들의 상을 차려대던 막내. 저걸 어떻게 두고 봐.

“우와! 여기 돈가스도 직접 만드시나 봐. 맛있겠다!”

“이런 곳에서 파는 돈가스가 은근히 맛있잖아요. 키키.”

나의 멘트에 직원들이 응원군으로 합류한다. 주변 반응에 실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예예. 우리 MZ님. 혼자 맛~있게 드세요.”

으이그 밉상. 먹다가 목에 뼈나 걸려라. 그 뒤로도 실장은 자신만의 MZ 철학을 계속 읊어대며 우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그래 저 사람 이겨먹어서 뭐 해.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쪽으로 눈길도 안 주고 추어탕 속 시래기나 호록 호록 맛있게 즐겨주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실장이 저 앞으로 멀어지자 맨 뒤에 쳐져있던 주임님이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온다. 

“이거 드세요.” 

한 손 가득 담긴 폴로 박하사탕. 계산대에 있길래 좋아하실까 싶어 챙겨 왔단다. 오 땡큐땡큐! 그러더니 아까는 감사했다며 우리를 향해 꾸벅 감사인사까지. 세상에. 이거 봐. 이런 애들 때문에 내가 오지랖을 못 잃는다니까. 에이. 추어탕 좀 못 먹어도 괜찮아. 여기는 회사지. 눈치게임장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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