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을 다녀왔다. 상주와 나는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어제의 상주는 회사의 임직원이였고, 오늘의 상주는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그렇게 영정 앞에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임원 ‧ 누군가에게는 아들 ‧ 누군가에게는 또 달랐을 상주의 여러 역할이 모이는 교차점에 서 있었고. 불현듯 상주에게 '한 회사의 임원'이 아닌 '세상에 단 한 명을 위한 역할'일지라도 그 역할이 온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수 있기를 절로 기도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다양한 역할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기지 않는 뿌리 깊은 하루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비용이 새삼 크게 느껴진 날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지금 회사보다 매우 높은 처우를 제안했을 때 어떤 관점으로 봐야할지 생각해보곤 한다. 한명 한명의 미래가 다 기대되는 반짝이는 동료들, 그들과의 팀워크 그리고 거칠지만 가파른 성장커브의 무게는 어떻게 달아야 할까. 연봉으로 달았을 때 보다 시간으로 달았을 때 더 무거운 쪽을 선택해야한다. 재무제표의 대변과 차변에는 시간이 위치할 곳이 없지만, 역사와 세월의 가장 큰 자산과 부채는 늘 시간이었다. 시간흐름표를 잘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
진짜 세련된 처우협의의 핵심은 연봉의 숫자를 설명하는게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설명하는 데에 있다. 회사에 타 회사 오퍼로 연봉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돈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연봉은 자연스럽게 따라올테니까. 내 몸 값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면, 내 시간을 얼마나 무겁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