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데스노트>: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Justice)에 대한 수많은 정의(Definition)

by 김서연

*본 글에는 뮤지컬 <데스노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2015년 초연과 2017년 재연을 씨제스 스튜디오가 올리고, 2022년 삼연과 2023년 삼연 앵콜을 OD컴퍼니에서 올린 작품이다. 내가 본 공연은 삼연과 삼연 앵콜로, 해당 공연의 캐스팅은 다음과 같다. (괄호가 없는 배우들은 삼연과 삼연 앵콜 모두 출연한 배우이다.)


야가미 라이토: 홍광호, 고은성

엘: 김준수, 김성철

류크: 서경수, 강홍석(삼연), 장지후(앵콜)

렘: 장은아, 김선영(삼연), 이영미(앵콜)

아마네 미사: 장민제, 케이(삼연), 류인아(앵콜)

야가미 소이치로: 서범석, 김용수(앵콜)

야가미 사유: 류인아(삼연), 박현선(앵콜)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인공은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다. 법과 정의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정의(Justice)'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던 라이토는 (#01. 정의는 어디에) 우연히 길에 떨어진 데스노트를 줍게 된다. 데스노트에는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인간은 40초 후에 죽는다.'라고 적혀있었고, 라이토는 시험 삼아 뉴스에 나온 범죄자의 이름을 적어본다. (#03. 가능하다면) 40초 후 범죄자가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이를 본 라이토는 자신의 손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며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 다짐한다. (#04. 데스노트) 또한 사람들은 범죄자를 처단하는 존재를 '키라'라고 부르며 신처럼 받들기 시작한다. (#05. 키라)


그러나 범죄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죽어가는 상황에 경찰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경찰들은 가명으로 활동하는 탐정 엘과 손을 잡고, 키라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온 탐정 엘은 추리를 통해 수사망을 좁혀간다. (#08. 게임의 시작) 라이토는 경찰들에게 잡히기 전에 엘의 본명을 밝혀내 죽이려 하고, 엘은 죽기 전에 키라를 검거하려 하는 대결이 펼쳐진다. 그사이 새로운 데스노트의 주인인 미사가 등장해 (#13. 정의는 어디에 Reprise) 둘의 대결은 점점 예측할 수 없어지며 극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온다. 엘은 여러 증거들과 추측을 통해 함께 수사하고 있던 경찰, 야가미 소이치로의 아들인 라이토가 키라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라이토도 이미 엘을 죽일 계획을 세워둔 상황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엘은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채 사망하게 된다. (#26. 마지막 순간) 라이토는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으나, 사신 류크(데스노트의 원 주인)에 의해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히며 결국 엘의 옆에서 사망하게 된다. (#27. 데스노트 Reprise)


2년간 총 10회차 (삼연 6회차, 삼연 앵콜 4회차)의 <데스노트>를 관람했다. 그중 9회차는 홍광호-김준수 페어였기에 이어질 리뷰는 두 배우들의 해석과 표현을 바탕으로 하지만, 가능한 한 배우 개개인의 해석 차이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내용만을 다루고자 한다.


공연이 시작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면은 법과 정의에 대해 배우는 교실의 모습이다. 법을 지키면 정의가 지켜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라이토에게 교사는 법이 없다면 정의를 지킬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라이토는 "정의는 쓸데없는 이론일 뿐"이며, "눈 먼 권력 가진 놈이 정해 놓은 기준"이라고 한다. 다른 학생들은 제대로 된 정의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라이토는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얘기"라고 하는데, 이 가사에서 이후 신이 되어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할 라이토의 모습에 대한 복선을 찾아볼 수 있다.


오직 나만 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


데스노트를 주운 후 부르는 넘버인 '데스노트'의 가사에서 라이토만의 정의에 대한 모습을 더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다. 라이토의 정의와 신념을 엿볼수 있는 가사로는 "그렇지만 결국 썩은 인간들은 언젠가는 제거해야 해", "각오했어 나의 희생 / 난 정의로운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 거야 끝까지", "이젠 나의 손에 맡겨진 이 정의의 심판 / 세상을 내 뜻대로 세워볼까", "오직 나만 할 수 있어 /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 등이 있다. 데스노트를 처음 주웠을 때는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놀라며 노트를 태워버리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고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리라 마음먹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 넘버를 들을 때마다 두 가지 충돌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실제로 법의 처벌이 미약한 사건들이 너무 많기에 범죄자를 처단하려는 라이토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쨌든 살인은 살인이라는 경찰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1막 중반에는 라이토와 소이치로가 부르는 '선을 넘지마'라는 넘버가 나온다. 라이토는 경찰인 아버지 소이치로에게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면 용납 되지 않나요?"라며 자신의 본심을 슬쩍 드러내지만, 소이치로는 "절대 넘으면 안될 선이 있는 법"이라며 "선을 넘어버리면 나를 잃어버리지"라는 경고를 남긴다. 이후 "지켜내야 해 네 마음 속에 흔들림 없는 굳건한 정의"라며 마음이 흔들리는 듯한 라이토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이미 라이토는 자신만의 어긋난 정의를 실현중이었다. 이 장면 이후, 라이토는 아버지의 의도와는 다른 정의를 마음속에 품은채 범죄자들을 죽여나간다.


신이 되리라



와중에 경찰과 탐정 사이에도 갈등이 발생한다. 키라가 사형수들을 죽이게 유도하며 수사를 하자, 소이치로는 "결국 키라와 뭐가 다르지"라며 엘의 수사방식, 엘의 정의에도 의문을 표한다.


다음 장면에서는 FBI가 키라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도쿄에 입국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라이토는 잡히지 않기 위해 처음으로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게 된다. 앞서 '데스노트' 넘버를 들으며 라이토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했는데, 이 장면 이후부터는 경찰쪽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처음에 시작한 의도야 좋다고 쳐도, 이를 유지하려고 하다보면 본 목적을 잃고 도구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의 입장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기울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아주 조금이지만 라이토 역시 이해됐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키라가 범죄자를 처단하도록 두었다면 라이토가 일반인을 죽일 일도 결국에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1막 후반에는 경찰들 개개인의 상황과 입장도 잠깐이지만 등장한다. 넘버 '가능하다면'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키라 수사를 이어가기로 결심하는 형사들과, 똑같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키라 수사를 그만두는 형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수사를 계속하기로 결심한 형사들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 순간은 그것만을 목숨 걸고 해내겠다"고 말하며, 이를 통해 형사들만의 정의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정의(Justice)'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내린, 서로 다른 '정의(Definition)'라고 생각한다. 라이토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범죄자들을 죽이고, 시민들은 범죄자가 죽어나가자 약한 자들을 위한 정의가 등장했다며 라이토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은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것이 아니며, 본인이 직접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라이토와는 다르게 정의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엘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검거를 최우선으로 삼는 정의를 보여준다. 소이치로는 키라와 엘 모두 옳지 않은 행위를 하고있다고 생각했기에 둘과는 또 다른 정의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며, 소이치로 밑에서 일하는 형사들도 가족을 위해 키라를 검거하겠다는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음은 '정의는 어디에 Reprise' 넘버의 마지막 가사이다. 짧은 가사지만, 이 가사와 이 넘버가 위에서 설명한 것들을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 키라다운 정의

엘: 내가 바로 정의

라이토: 내가 바로 정의

모두: 정의는 여기에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는 '데스노트'이고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넘버는 '놈의 마음 속으로'이다. 두 넘버 모두 작품의 진행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위에서 설명한 이유들로 인해 1막 처음에 등장하는 '정의는 어디에'와 1막 마지막 및 2막 처음에 등장하는 '정의는 어디에 Reprise'가 주제를 세워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막의 처음과 끝, 2막의 처음을 장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2막 마지막에도 들어갔으면 완벽한 수미상관이겠지만, 굳이 이 넘버를 부르지 않더라도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라이토와 엘이 모두 죽은 세상에서 과연 정의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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