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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팀장 Oct 05. 2024

수사관의 1.2m 책상 무게 - 1

책상의 무게는 수사관마다 다르다


#. 수사관의 책상은 1.2m이다


녹색 부직포 위에 유리를 덮은 책상의 크기는 1.2m다. 그 위엔 전화기, 모니터, 달력, 파란색 골무, 포스트잇, 볼펜, 철끈에 묶여있는 온갖 서류들, 그리고 커피잔이 놓여 있고. 검은색 의자에는 온갖 고민을 짊어지고 있는 수사관이 앉아있다.


수사관은 몇 시간째 모니터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썼다, 지웠다, 고쳤다를 반복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혼자서 뇌까린다. '뭔가 이상하다...',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 '상황에 몰려서 그렇게 된 건가' 이런저런 고민으로 밤 12시를 넘기고 있다. 낮에 온 피의자의 간절한 듯한 변명을 되새기며 그날의 사실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들은 대게 새벽쯤 되어서야 하나둘씩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왜 새벽까지 가야 희미하게나마 진실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을까. ‘새벽, 수사관들에겐 새벽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건기록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얘기를 되새기다 보면 금방 다가오는 낯설지 않은 감각의 시간이다. 고요하지만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성취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쯤 되면 초집중을 하던 수사관은 긴 기지개를 켜고 눈을 돌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음 자리에서 일어난다. 눈꺼풀은 무겁고 머리는 스멀스멀 아파오고 입안은 텁텁하다.


피곤한 새벽 3시, 뇌는 이미 지쳤다며 휴식을 요구하지만 수사관의 의지는 눈꺼풀을 따뜻한 커피로 밀어 올리며 다시 한번 밀어붙인다. 수사의 방향을 가름할 가장 중요한 보고서의 작성을 시작했고, 이 사건이 재판까지 이어진다면 이 보고서는 분명 대법원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증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서 피곤한 새벽을 견뎌낸다.


수사관의 책상은 피곤이 녹아있지만 진실을 찾고 사실을 확정하는 의미의 공간이다. 1.2미터의 책상만이 누군가의 아픈 시간을 합법적으로 재구성하고 단죄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가 부여되었고, 그 본질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 1.2m 책상 위에 올려진 사명


세상의 모든 책상은 그 나름의 본원적 목적과 사명을 가진다. 길거리에서, 병원, 법원, 대기업 사무실, 구청, 경찰서, 건설현장에서... 그 어디든 나름의 목적을 치열하게 수행하 듯 수사관에게 제공되는 책상도 국가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성스러운 공간이다.



  - 수사관의 책상엔 국가의 사명이 부여된다

수사관이 진실을 확인하는 것, 그건 치우침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가려진 진실을 알아야 가능하다.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 제일 무섭듯이 전체를 관통하지 못한 수사관의 의지와 기록은 필연적으로 편견이 동반되어 그 어디에도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는 책상 위에 단 하나의 명령을 심었다. 편견 없이 오직 진실을 구현하고 알게 된 모든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특별한 단 하나의 명령만을 심은 것이다. 그렇게 심어진 사명이라는 씨앗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유일한 자양분은 건강하고 밀도 있는 시간을 촘촘하게 녹여내는 ‘성실한 노력’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매 순간 나의 이익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마음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수사관의 역사이다.



  -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가짜 주인

cctv, 복사기, 서류함, 개인 옷장들이 사무실의 사각에 놓이고 빈약한 칸막이로 구분해 놓은 수사관들의 책상은 늘 열악하다. 한치의 게으름과 위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이기도 하다.


그런 의지가 베인 책상에 어떤 때는 가짜 주인이 나타나기도 한다. 당연히 놓여 있어야 할 정리된 진심은 사라지고 온갖 개인용품과 생활쓰레기들,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과자 부스러기, 겹겹이 쌓인 먼지, 검토하다만 온갖 서류들이 무질서하게 방치되어 있다. 마치 쓰레기통을 연상시킨다. 이런 책상에서 수사관은 어떤 의지를 낼 수 있을까. 행여나 잠시나마 의지가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과연 지속력이 있기는 할까.



  - 수사는 타자만 잘 치면 된다는 가짜 선배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한 수사관 몇 명이 커피 한잔씩 들고 사기사건에 대해 논의를 한다.


A : "50만 원씩 소액으로 빌리면서 금방 갚겠다고 했는데, 안 갚으면 그게 갚을 의사가 없었다고 봐야 되나?"

B : "50만 원 정도면 빌릴 때 갚을 의사가 없었다고 할 수 있겠냐, 사정이 있었겠지"

A : "빌린 돈 사용처도 애들 학원비로 썼고, 매달 아르바이트로 월급도 받았던데... 갚겠다고 하다가 계속 안 갚으니 결국 사기죄로 고소를 했다니까"

B : "잘 모르겠다... 관련 판례 있는지 확인해 봐"


이런 대화가 오가자, 묵묵히 지켜보던 중고참 선배 수사관이 나선다.

C : "야, 남의 돈 안 갚으면 다 나쁜 놈이니까 그냥 기소해 버려. 수사는 무조건 건수를 줄이는 게 잘하는 거야. 사건 빨리빨리 빼려면 그냥 피의자 불러놓고 말하는 대로 무조건 많이 타자 쳐놓으면 뭐라도 얻어걸리겠지. 타자를 빨리 치는 게 수사를 잘하는 거다. 명심해라!" 그러고선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일하면서 까먹을 과자를 사러 간다.


타자를 잘 치는 사람이 수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선배의 말에 수사관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이 정도만 고민해도 사건을 뺄 수 있는가 보다, 50만 원짜리 사기사건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건가라고 생각한다. 선배가 차지하고 있는 책상은 이미 타자연습장으로 변해 의미 없는 타자질과 생각 없이 해대는 반복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는 과자 부스러기로 오염되어 있다.



  - 가짜 주인의 책상은 왜 쓰레기통일까

마음의 준비가 된 수사관은 배당된 사건을 꼼꼼하게 살펴 사건의 요지와 공소시효를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관련자들의 소환과 증거는 순순히 불러서 할 것인지 아니면 영장을 받아 그 어딘가를 뒤져 강제로 할 것인지를 세심하게 정리를 한다. 이런 과정이 있고서야 비로소 중요도에 따라 선행해야 할 사건들의 질서가 생기고, 그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내 주변을 정리하여 생각을 가볍게 비울 수 있다.


그러나 가짜들은 그 과정을 대안 없이 생략한 채 오직 헛심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온갖 허세와 위선을 빼지 못한 채 준비 없이 주인이 된 부작용이고, 타인의 기회를 대신하여 차지하고 있는 책상의 진정한 숙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사관이 책상을 정리한다는 것은 사명을 수행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우선순위가 없고, 지향하는 업무의 중심이 사라져 그들의 일상은 사무실의 분위기를 독점이라도 한 듯 톤 높은 웃음과 얕은 농담들, 질투가 잔뜩 묻어나는 험담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주변의 가벼운 자극에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다 해대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다 결국 뒤처진 업무로 궁지에 몰리면 그들은 여지없이 변명을 만들어 낸다.  “내 자리가 더 어둡다”, “너무 좁다”, “나만 어려운 사건이 많다”, “자리 좀 바꿔주세요”.... 늘 이런 식으로 위선의 쓰레기를 쏟아내 마치 조직이 균형을 잡지 못해 피해를 보고 있는 양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균형을 무너뜨리고 주변을 오염시켜 버린다.




그런 가짜들이 차지한 책상은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해 보니 당연히 주어진 그저 그런 뻔한 물건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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