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날씨가 갠 날”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클래식음악 이야기 01

by 심건우


20160714_193031.jpg


요 며칠, 장대비가 퍼붓는 나날이었다. 우산을 써도 발가락 사이로 빗물이 파고들고, 곳곳에

첨벙첨벙 물웅덩이가 생기고, 천둥번개에 비바람이 부는 나날,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말끔해져 있다. 매미소리가 들리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창밖을 보니 어제의 비가 훑고 간 물웅덩이는 그대로인데 그 사이로 아침햇살이 쨍하게 비친다.


자, 여기서 퀴즈.

방금 읽은 문단을 음악으로 표현해본다면?

오늘 아침 창밖 풍경을 바라본 나의 기분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플레이리스트는 무엇인가?


약 220년 전,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은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전원 교향곡>의 4악장과 5악장을 내놨다.

베토벤이란 이름에 어려운 음악일 거란 편견은 버리고, 일단 음악을 한 번 들어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DHJsjZFu89U&list=RDDHJsjZFu89U&start_radio=1

32분 34초부터 폭풍우 장면이 시작된다.

갑자기 쾅 하고 소리가 터질 수 있으니 오디오 주의.


누구든 이 음악만 들으면, 폭풍우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진 않더라도 심각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이 음악이 그저 그런 클래식음악 중 하나라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도파민에 절여진 2020년대 리스너라서 그렇다. 클래식 음악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매일 듣고, 꼭 이런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아니더라도, 전자 음악이나 컴퓨터의 도움을 받은 다양한 음향을 매일매일 접해서 귀가 익숙해진 거다.


<전원 교향곡>이 초연된 건 1808년이다. 저녁 음악회장에서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청중들은 그날 오전까지 무슨 노래를 들었을까? 모차르트의 아들 Franz Xaver Mozart가 1808년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예시로 가져와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U6FQ1GJenS4&list=RDU6FQ1GJenS4&start_radio=1

다 들을 필요는 없고, 초반 20초만 들어 보시라.


당시의 대중들은 우리처럼 출퇴근길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지도 않았을 거고, 음악회장에 가지 않는 이상 서민들에게 이런 대형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더더욱 접하기 힘들었을 거다. 한마디로, 이런 음향이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음악적 도파민의 끝”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까 들었던 <전원 교향곡>과 이 곡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전원 교향곡은 폭풍우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온갖 악기를 다 동원한다. 다시 아까의 첫 링크로 돌아가서 32분 34초를 눌러 보라. 음악이 폭발하기 직전, 모든 악기는 최대한 잠잠하게, 그러나 긴장감 넘치는 화음을 연주한다. 그러다가 음악이 폭발하면서 현악기가 격렬하게 울부짖는다. 현악기의 반주 위로 트럼펫은 강렬한 불협화음을 내뿜는데 이게 마치 번개가 내리칠 때의 날카로움을 묘사한 것 같다. 그리고 이 화음이 단시간 안에 끝나는 게 아니라, 화음을 유지하면서 팀파니를 두두둥 하면서 두드리는 파트를 꼭 넣었다는 게 중요하다. 이건 천둥이 칠 때의 사운드를 묘사한 거다. 영화 연출로 치자면 천둥 치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반면, Xaver Mozart의 피아노 협주곡은 어딘가 얌전하다. 똑같이 단조로 작곡된 곡이고, 작곡 연도도 1808년으로 똑같지만, 이 음악은 “음악의 멜로디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화음도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반주 부분의 음형도 단순하다. 멜로디는 귀에 잘 들리긴 하는데, 들으면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고 장면이 떠오른다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 자체만 받을 뿐이다. 그리고 이 당시의 대부분의 작곡가는 이런 식으로 음악을 작곡했다. 물론 모차르트처럼 귀에 쏙쏙 때려박는 멜로디를 만들면서도 감정적인 여운을 주는 작곡가도 있었지만, 음악의 목적 자체가 “장면 묘사”보다는 “아름다운 화음과 멜로디의 전달”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비가 무진장 많이 내린 뒤에 날씨가 맑아진 아침”을 음악으료 표현한다면? 아마 베토벤과 Xaver Mozart는 서로 다른 답을 내놨을 거다. Xaver Mozart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우울한 단조 화음에 맞춰서 곡 하나를 쓰고, 밝고 생기발랄한 곡 하나를 써서, 두 개의 파트로 이뤄진 노래를 만들었을 거다. 하나의 노래에는 하나의 감정을 담고, 그 감정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기승전결로 표현되는 게 그 당시의 (소나타 형식이라는) 관습이었으니까. 비 온 장면, 맑아진 장면, 두 개의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선 2개의 완전무결한 곡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1808년의 청중에게는 이런 방식이 그들이 접한 음악세계의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들에게 “꼭 그래야 돼?” 라는 질문을 던진 셈이다. 폭풍우 치는 장면에서 멜로디고 뭐고 그런게 뭐가 중요해? 장면을 묘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현악기는 격렬하게 움직이고, 트럼펫은 불협화음을 불고, 팀파니는 찢어지도록 난타를 한다. 음악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한다기보단, 몇 개의 음표 단위로 자잘하게 쪼개져서 (이걸 “동기”라고 부른다) 동기를 치밀하게 반복하는 걸로 하나의 장면을 구성한다.


자, 여기서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았다. 비가 온 뒤에 날씨가 맑아진 “변화”를 묘사해야 한다. 당신이 작곡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Xaver Mozart를 비롯한, 당대의 작곡가들은 그냥 변화의 전후 각각에 해당하는 곡 2개를 썼다. 흐린 날 하루, 맑은 날 하루, 하나의 곡에는 하나의 장면만 담기고, 그 곡이 완전히 끝나고 잠깐 쉰 뒤에 완전히 새로운 장면의 곡이 시작된다. 두 개의 정지화면으로 이뤄진 사진인 셈이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 사진을 영화로 바꾼다. 사진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서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한다.


다시 첫 번째 링크의 35분 10초로 돌아가 보자. 여기까지는 아직 폭풍우의 감성이 남아 있다. 긴장감 넘치는 단조, 현악기의 격렬한 움직임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진다. 그런데, 폭풍우가 잦아들고 35분 40초부터는 클라리넷이 하강 음형을 연주한다. 무언가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나? 싶은 순간, 약 10초 뒤, (35분 10초부터) 하강 음형이 절묘하게 상승 음형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악장이 시작된다. 클라리넷에서 시작된 춤곡의 멜로디가 호른으로, 바이올린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커진다. 클라이멕스에 이르면 아까의 불안한 화음이 사라지고 기쁨과 환희가 가득하다. 가만히 들어보면, 그 사이 10초 동안의 음악 구성이 절묘하다. 단 3개의 음만 사용했을 뿐인데, 그걸로 분위기가 매우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당신이 1808년의 청중이라면 여기서 충격을 받았을 거다. 곡이 끝나야 하는데 안 끝나고 다음 곡으로 이어진다고? 서로 대조되는 장면의 연결이 이렇게 자연스럽다고? 멜로디와 화음을 단지 아름답게 구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선 음악적 틀을 깨버리기도 한다고? 베토벤이 위대하다고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왜 유명한지 몰랐던 당신을 위해, 지금껏 이 긴 설명을 거쳤다. 걸그룹 에스파가 새로운 엘범을 냈는데, 각각의 수록곡이 댄스+발라드처럼 대조적이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생각해 보라. 혁신이지 않을까?


다음 편은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한다. 역시, 작곡가 이름부터 무턱대고 들이밀면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베토벤이 사망하고 약 50년 뒤에 활동한 바그너의 생각은 베토벤에서 더 나아간다. “비가 온 뒤에 날씨가 갠 날”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것을 모자라서, 이 작곡가는 극한의 논리성을 추구했다.


바그너는 모든 걸 쪼개서 생각했다. “비” “아침” “날씨” “밤” “우울” “주인공” “발걸음” “물웅덩이”처럼 각각의 소재,사물에 해당하는 주제를 만들자. 그래서 “비”의 주제가 흐르다가, “주인공”의 주제가 나타나고, 그가 “물웅덩이”를 만나서 “우울”해하며 “밤”을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지고 “아침”의 주제 속에서 “주인공”의 주제가 당당하게 울려퍼지는 음악을 만들자. 그리고 “아침”과 “밤”은 서로 대조적인 멜로디로, “주인공”과 “발걸음”은 서로 비슷한 모티브를 공유하도록 디자인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자. 이런 게 바그너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영화음악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의 음악 설명이 흥미로웠다면, 당신은 클래식음악의 세계에 관심 가질 준비가 된 셈이다. 사실 방금의 설명은 "표제음악"과 "절대음악", 그리고 "유도 동기"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친절하게 풀어서 쓴 것이다. 그러나 용어를 좀 몰라도 어떠랴, 그 개념만 이해하면 됐지. 어쨌든 다음 글을 기대해 주기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1(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