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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May 11. 2023

매일의 기록 418


가장 나다울 때의 모습을 아마 나는 보지 못할 것이다. 어제는 좋아하는 책에 대해 묻길래 내가 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사랑하는지 열심히 설명했고 청자는 책 내용 그 자체보다도 내가 [야간비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에너지가 놀랍다고 했다. 퇴근길 지친 두 사람의 대화치고는 꽤나 열정 넘치는 대화였다. 마침 우리가 건너던 다리 위로 항공기가 비행운을 그리고 있었다. [야간비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초월적인 것들, 무자비하고 거대하고 고요하고 광폭한 자연, 그 속에서 한낱 점에 불과한 인간, 그리고 그 점들 사이의 빛나는 연결과 유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스스로 운명을 초월했다. 생애 마지막 비행임을 알고 편도 비행만큼의 연료만을 싣고 날아오른 그의 정찰기에는 연료뿐만 아니라 가장 자신다운 마지막과 그 너머의 영원한 시간까지 실려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는 아직 그 군용기가 그린 비행운이 분필자국처럼 한 줄 남아있다. 지도에도 없는 어떤 사막 위를 걷다가 모래 위에 한 줄 그림자가 보여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 바로 그 궤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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