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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이 Oct 03. 2024

자신감으로 사치부린 자의 최후

송양공(宋襄公)의 인덕이 아닌, 건방짐의 대가

  한창 채용 업무를 할 때, 경력직만 연간 400명 가까이 입사시켜본 적이 있다.


  생산직, 판매직이 없는 우리 조직 규모에서는 적잖은 인원수였다. 그리고 채용이 완전히 성사된 인원이 400명이었으니, 채용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되었던 후보군들까지 더하면 채용파트에서 한 해에만 약 500명 이상의 처우협의를 진행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경력직이 이직할 때는 조금이라도 연봉 인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좋은 인재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후보자가 충분히 납득하고 구미에 당길만한 인상률을 제시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가끔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겸손한 분들도 있지만, 반대로 충분히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후보자가 먼저 높은 인상률을 제시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권리이다.




  보통 '인상액'이 아닌 '인상률'을 기준으로 봤을 때, 기존 연봉이 낮은 구간에 위치한 후보자들의 인상률이 높았다. 즉, 최저 임금 수준이었던 경력자의 경우 인상액 자체는 그리 높지 않더라도 인상률은 높게 산정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임원 채용시에 업계 스타급으로 평가받는 분들은 이미 연봉이 높은 수준임에도 인상액과 인상률 모두 높게 제시해야 했다. 

  그렇게 내가 다뤘던 처우 중에서, 가장 높은 연봉 인상률이 35% 정도였던 것 같다. 최종 성사된 것이 그렇고, 애초 후보자가 제시했던 수준은 40%를 훌쩍 넘겼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른 회사에 재직 중인 분으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 회사로 이직해온지 1년 정도 지난 어떤 직원이 갑자기 연봉을 40% 인상해달라고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분명히 1년 전 이직할 때 연봉을 높여서 왔을텐데(이 것은 얼마나 올렸는지 듣지 못했다) 불과 1년 만에 다시 40%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니, 우선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냈어요?'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현재 조직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인지'도 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점포개설을 담당하는 과장 초년차 담당자였다.

  회사가 마침 여기저기 점포를 확대하는 과정이었는데, 나름 성과가 있긴 했단다. 그리고 당장 이 친구가 이탈하면 조직이 곤란을 겪을 수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40%를 당당히 요구할 정도의 이익을 회사에 안겨줬다거나 '정말 대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회사 차원에서는 당장 점포를 개설한 것만으로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다. 개설된 점포에서 매출이 발생하고 이익이 남아야 비로소 성과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개설된 점포가 제대로 돌아가기도 전에 성급하게 성과를 운운하며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 

  심지어 연봉 협상 시즌도 아니었고, 개설 업무를 온전히 혼자한 것도 아니었다. 


  회사로서는 이 사람 한 명의 연봉을 40%나 올려줄 명분이 없었다. 절차상의 공정성은 물론이고, 기존 직원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마땅하다. 

  결국 조직장의 일대일 면담까지 진행해 직원의 최종 의사를 직접 확인하고, 쿨하게 내보냈단다. 그 대신 그 밑에 있던 대리급 직원의 처우를 20% 인상해주고, 조직장이 일부 업무를 지원해주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 대리로서는 사수가 사라져 업무가 다소 버겁긴 했겠지만, 가만히 앉아있다 연봉이 큰 폭으로 오르고 실무를 온전히 맡게 됐으니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직장에서 사수의 이탈은 후배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그대는 모르셨구나


  처음 40% 연봉 인상을 요구했던 과장은, 다른 회사에서 그보다 더 좋은 처우를 받긴 어려울 것이다.

  애초 천재급 인재가 아니고서야, 조직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거의 없다. 그리고 조직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에, 한 두 사람이 빠졌다고 망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천재 혹은 스타급 인재로 과대평가했거나, 조직 시스템의 힘을 과소평가한 듯 하다. 


※ 바쁜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무방합니다.




  가끔은 메타인지의 결핍이 개인이 아닌, 국가 단위의 조직에도 크나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춘추시대 '송나라의 양공(송양공, 宋襄公)'이 그랬다. 

  그 시절 송나라는, 상나라의 후예라는 정통성은 있었지만 국력이 절대 강성하다고 볼 수는 없는 중진국이었다. 지리적으로 중원의 가운데 자리잡아 인근 제나라·진나라(晋)·진나라(秦)·초나라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는 온전히 국력을 키워낼 틈이 없다. 냉정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강대국들의 중간지대로서 중립을 지키거나 현란한 외교술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나 송양공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같은 시기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였던 '제환공(齊桓公)'이 죽은 뒤에, 자신이 패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침 제환공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들이 권력다툼을 벌이는 동안(이 전 글 중, <추하게 남느냐, 위대하게 사라질 것이냐>에서 다룬 바 있음) 유력한 아들 한 명이 송나라로 망명해온 일이 양공을 더욱 부추겼다. 양공은 그 아들을 도와 제환공의 뒤를 이어 제나라의 군주로 세웠다(제효공). 


  이후에는 제효공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본래 제환공이 하던대로 회맹을 소집했다. 회맹이란, 춘추시대 패자가 각 제후들을 불러모아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그걸 송양공이 소집했다는 것은 스스로를 패자로 인식했다는 의미이다.


  2류 국가 군주의 부름에 모두가 응할리가 없었다. 적당히 따르는 시늉만 하거나, 초나라처럼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에 송양공은 분개하며 제후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노라 다짐했다.




  송나라의 재상 목이(송양공의 이복형이자 유능한 신하)가 송나라의 허약함과 초나라의 강성함을 들어 만류했으나, 양공은 기어코 초나라의 동맹국(정나라)를 치며 전쟁을 시작했다.


  홍수라는 강 앞에 먼저 진을 치고 있던 양공은, 뒤늦게 도착한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너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송나라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양공은 공격을 권하는 목이의 청을 또 무시하며 말했다.


  "내가 명색이 상나라의 후예이자 맹주(패자)요. 비록 초나라 오랑캐를 맞아 싸우고 있지만 어찌 적이 불리할 때를 노린단 말이오.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하오."


  양공의 배려 덕에 무사히 도강을 마친 초나라 군사들은 그대로 짓쳐 들어와 송나라 진영을 박살냈다. 양공 자신도 크게 부상을 입어 후퇴했으나, 도망치는 와중에도 '부상당한 적은 공격하지 말라'거나 '험준한 지형에 기대 숨지말라'는 등 일관성있게 자신의 인덕을 과시했다. 

  그렇게 간신히 귀국한 뒤 몇 년이 지나, 부상 부위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이른바 '송양지인(宋襄之仁, 송양공의 인덕)'의 이야기이다.

양공보다 훨씬 강력한 군주였던 제환공이나 진문공, 소양왕도 적국 군주를 삶아죽이진 않았다. 이런 양공더러 인의의 군주라뇨?




  송양공 사후, 인덕을 중요하게 여겼던 몇몇 유학자들은 그를 제환공과 더불어 춘추오패(春秋五覇, 춘추시대 다섯 명의 패자)로 꼽아주거나 지옥같은 전쟁터에서도 인간의 도리를 잃지 않았던 훌륭한 군주로 칭송한 모양이다. 

  그러나 양공이 인덕의 군주라기엔, 그는 패자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대단했고 약소국이 복종하지 않자 군주를 직접 불러 삶아 죽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일설에는 인신공양을 했다고도 한다. 어느 쪽으로 봐도 자애로운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의식 과잉이 지나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송나라의 태생적 한계와 군주인 자신의 기량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제환공이라는 황새를 좇았던 뱁새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가 내세웠던 인덕이니 인의니 하는 것들은 메타인지 되지 않은 자신을 포장하기에 유용한 도구였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건방짐의 대가가 죄없는 송나라 군사들을 몰살시켰고 나라 자체를 더이상 중진국 수준에도 머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인덕이나 배려는 숭고한 가치가 맞지만, 생사를 다투는 상황 속에서 더군다나 수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짊어진 군주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생존'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인덕조차도, 그럴만한 실력과 여유가 있을 때 베푸는 것이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자신이 과시해야할 때인지 과시할만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부터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그럴 자격없는 사람이 부리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만용이고, 사치다. 지를 때 기세 좋게 지를 필요도 있겠지만 실력과 상황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르는 것은 무모하다. 


  자연스럽게 상황이 무르익고, 나의 내실이 밖으로 터져나올 때까지 삼가자. 송양공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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