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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gsungg labnote Dec 18. 2024

홍성아, 앞으로 연구 말고 뭐가 하고 싶은데?

난 절대 결단코 수백날이 지나도 연구밖에 모르는 바보는 안 될거야 (2)

제약/바이오 회사에 취직하기


자연과학 연구자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다. 내 연구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보람찰 것 같다.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인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일이 없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자연과학 연구는 자연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 비밀이 어떻게 인류에게 도움이 될 지는 별 관심이 없다. 반면, 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일반 사람들에게 수요가 있는 일. 나의 생명과학 전공을 살려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 시킬 만한 일은 사람이라는 생명이 삶을 지속시키도록 약을 만드는 등의 일이다.


제약/바이오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실제로 하는 일은 제약과는 멀리 떨어진 일일 가능성이 크다. 상관없다. 회사의 목표는 회사의 이득을 위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많이 파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일을 하면 과학적 발견이라는 목적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목적으로 일을 한다. 원래 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 나는 제약/바이오 회사를 설립하지는 못할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바이오 회사 창업은 소비자에게 판매할 만한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아이템은 코로나 진단키트. 백신. 치료제. 완화제. 실험 기구가 될 수 있다. 이런 아이템들은 많은 경우에 대학원에서 연구하던 중에 발견한다. 그런데 나는 임상 또는 약학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지 않다. 다른 대학원에 입학해야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고. 현재로서는 아이템을 발견할 방도가 없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이끌어 나갈만한 배짱이 없다. 바이오 회사는 당장 결과도 나오지 않아 10년 후를 내다보고. 초기 투자금도 공격적으로 엄청 많이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임상실험에서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수포로 돌아간다. 굉장히 리스크가 큰 분야고. 성공만 한다면 리턴 또한 굉장히 크다. 하지만 나는 하이 리스크를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어우 못하겠다. 유비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제갈량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제약/바이오 산업 관련된 세미나를 들으면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Car-T, exosome, PROTAC 등등등 어느 분야던지 신기했다. 그리고 바이오텍 관련 세미나에서 들었던 얘기 중 하나인데. “아이템보다는 대표가 중요하다.” 대학원 연구실 진학과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어느 분야던지 전부 흥미로워 할테니까. 좋은 대표를 만나야지. 제약 필드에 들어가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항상 새로운 일은 재밌었다. 대학교 연구실을 벗어나면 다른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의 신약 개발에 관심이 있다. 이 분야는 학계, 산업계,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까지도 굉장히 핫한 분야이다. 알파폴드2의 출시 이후, 단백질 구조 예측은 구조생물학 학계를 뒤집어 놓았다. 단백질 구조는 한 명의 대학원생이 일생을 바쳐서 실험해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데, 알파폴드2는 그 구조를 몇 시간 내로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한다. 알파폴드2는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제작했으며, 최근 딥마인드는 알파폴드3의 오픈소스를 공개했다. 이에 질세라 엔비디아는 자체 개발한 신약개발 인공지능, 바이오니모를 공개했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AI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 깊숙히 일상생활에 자리잡았다. 요즈음 정부 사업이나 스타트업 대부분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라는 문구를 앞에다가 붙이고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단백질 구조예측 및 디자인 분야가 수상한 2024년 노벨화학상 이 분야가 얼마나 대세인지 보여준다.


그 관심을 가지고 업무 후에 단백질-리간드 결합력을 예측하는 프로젝트를 3개월간 진행했다. 전반적인 프로젝트의 흐름은 내가 생각했던대로 진행됐다. 과발현시에 질병을 발생시키는 단백질을 선정한다. 그 단백질의 구조 파일에서 리간드가 결합할만한 자리를 찾아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백만의 리간드를 단백질의 결합 자리에 이리저리 넣어보고,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로 위치하는 리간드 형태를 찾아낸다. 그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결합하는 리간드를 선택하면, 그 리간드가 단백질 저해제의 후보물질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수백만의 리간드를 이리저리 넣어보고" 라는 단계에서 계산시간이 어마무시하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십만개의 리간드로만 계산한 뒤에, 단백질-리간드 사이의 에너지에 관한 규칙성을 인공지능으로 알아낸다. 두번째는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로" 라는 단계에서 그 결합 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기존에 실험적으로 에너지를 계산한 데이터에서 규칙성을 인공지능으로 알아내어, 최대한 에너지 계산의 정확성을 높인다. 이런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단백질 저해제 후보물질을 찾아보는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과학 저널 에디터.


자연과학 연구자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저번에 언급한 바이오 기업에 취업하기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이고. 에디터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에디터는 대학원생이 되고나서부터 솔깃한 직업이다.


저널 에디터는 과학자들에게서 논문을 받아서 이 논문이 저널에 어울리는지. 괜찮은 수준인지 등등 논문을 판단하는 일을 메인으로 한다. 그렇다면 우선 다양한 과학자들에게서 받은 논문들을 다 읽어본다. 괜찮은 논문이라고 결정이 나면 그 분야의 과학자들(리뷰어)에게 이 논문을 평가하라고 보낸다. 리뷰어들은 거절 /보완 후 통과 / 통과 등으로 논문을 평가한다. 처음 논문을 제출한 과학자는 이런 저런 보완을 해서 결국에 리뷰어에게 통과를 받기도 하고. 아니면 이 저널은 포기하고 아예 다른 저널에 제출해서 통과를 받기도 한다. 에디터는 과학자와 리뷰어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


에디터는 저널의 편집을 담당한다. 이번 달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에 대한 특집 기사를 하자고 정해보자. 특집 호를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에 관한 전반적인 리뷰글이 필요하다. 가장 최근의 변이에 대해 연구한 논문도 많이 필요하다. 유전체 변이를 연구하기 위해 유전체를 읽는 실험 기법 논문도 저널에 넣을 만하다. 에디터는 현재 과학의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여러 학회에 참석해서 어떤 연구가 유망한지 또는 유망할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한다.


과학 저널은 과학 연구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잡지이다. 하지만 과학 연구도 근본적으로는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일이다. 에디터는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기사/분석을 작성한다.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 일본 정부의 자연과학 투자 재정자금이 감소했다던지. 신진 과학자를 매년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등등 과학자 사회의 전반적인 기사 또한 다룬다. 과학자들은 위와 같은 기사들을 읽으면서 현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정보와 트렌드를 얻는다.


Cell, Nature, Science 같은 탑저널들은 전문 에디터가 있다. 하지만 PNAS, JACS, eLife 같은 저널들은

대부분 교수가 에디터 역할도 겸하고 있다. 저널의 위상이 높고, 모두가 인정하는 CNS 같은 탑 저널들은

많은 과학자들이 논문을 게재하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탑 저널에는 다른 저널들보다 투고받는 논문이 더욱 많다. 탑 저널의 전문 에디터는 교수 일을 겸임하면서 에디터 일을 할 수 없을만큼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저널에 논문을 제출할 때에는 과학자들이 출판사에 논문 게재료를 낸다. 저널이 작가에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작가가 출판해달라고 저널에 돈을 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요즘은 논문을 모두 온라인으로 작업하니까 인쇄하는 데에 드는 돈도 거의 없고, 저널이하는 일이라고는 1) 리뷰어에게 논문이 제대로 적혀있는지 요청하는 일과 2) 논문을 읽기 적당한 포맷으로 편집하는 일 정도같다. 저널이논문 게재료를 가지고 리뷰어에게 논문 리뷰를 요청하면서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리뷰어는 무료로 논문을 리뷰한다. 그리고 출판사 사이트를 유지하고, 논문을 보기 좋게 편집하는 건 정해진 포맷대로만 하면 된다.  1)과 2) 업무를 하는데 그 게재료가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많은 논문 게재료는 저널 에디터들의 월급으로 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CNS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21년 5월 쯤에 Nature metabolism 에디터가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위의 내용은 에디터가 와서 말씀해준 내용 중 일부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시고. 질의응답 마지막 질문 시간에 내가 질문을 하나 했다. "어떻게 하면 네이처 에디터가 될 수 있나요?" 에디터가 되려면 현실적으로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고. 저널에서 인턴이나 짧은 기간으로도 에디터 경험이 있으면 에디터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여러 분야의 많은 논문을 읽는 행위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대학원 생활하면서 나의 주장 중 하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연구는 남이 하는 연구"이다. 내 연구는 실험하고 논리 전개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이 사실을 지구상 최초로 발견했다는 희열이 모두 있다. 그래서 내 연구는 애증이 있다. 하지만 남의 연구는 애도 없고 증도 없다. 내가 고생을 안 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게재한 논문은 다 너무 재미있다. 와 그런데 에디터를 하면 실험은 안 하고. 평생 남의 연구만 읽고 평가하는 일을 한다. 너무 짜릿하다. 에디터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듯이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논문 읽으면 된다. 논문 읽을 때 빠르고 정확하고 많이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자라면 많은 논문을 읽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많은 논문을 읽었다는 증거나 흔적을 기록해야 한다. 실험노트처럼 논문노트도 만들어서 기록을 해야겠다. 이렇게 다짐을 2년 전이지만,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같다.


다만 내가 에디터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영어다. CNS 저널같이 글로벌 기업에서 자유롭게 내 의견을 피력하고 회의하고 보고서 쓰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 한다. 조만간 직장인 영어나 영어회화 같은 수업을 들어야겠다. 이 다짐을 하고서, 스픽 영어 회화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서 일년 간 영어 공부를 했다. 결론적으로는 그닥 추천하지는 않았다. 영어 실력을 늘리려면 일상 생활의 모든 의사소통과 머리 속의 생각 자체가 영어로 이뤄져야 하는데, 스픽을 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만 영어를 하게 됐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에서의 포닥생활으로 영어 실력을 확 늘려야 할 것 같다.




과학커뮤니케이터.


자연과학 연구자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저번에 언급한 에디터는 대학원생이 되면서 하고 싶은 일이라면. 과학커뮤니케이터는 대학생 때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일반 대중들에게 과학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안될과학 궤도. 김상욱 교수님. 정재승 교수님. 미디어에서 과학 얘기 할 때 자주 나타나시는 분들이 과학커뮤니케이터다. 그들은 책, 유튜브, 강연, SNS 등 일반 미디어를 통해서 대중과 소통한다. 교수님들은 논문을 내기도 하지만. 논문이라는 매체는 과학자들끼리 소통하기 위함이지. 과학커뮤티케이터의 영역은 아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일반 대중에게 과학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회적인 위치를 갖는다. 과학 정보는 1) 그 자체로 흥미로운 정보가 되기도 하고. 2) 국가 정책 및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되기도 하다.


제임스웹 망원경이 과학계에서는 큰 화두다. 제임스웹 망원경이 찍은 사진을 보면 휘황찬란하다. 30년 전 우주로 쏘아올린 허블 망원경은 비교하지 못할만큼 해상도가 좋다. 대중들이 제임스웹 망원경이 왜 중요한지. 어떤 기술이 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해도. 망원경이 찍은 사진을 보면 그냥 그 자체로 우주의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이 아름다움에 대해 약간의 과학적 지식을 더하면. 그 아름다움이 배로 불어난다. 그 과학적 경이로움을 위한 설명을 덧붙이는 사람이 과학커뮤니케이터이다.


생명과학을 공부하니까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련해 가족들이 많이 물어봤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만큼은 말해줬지만. 나도 바이러스학 또는 면역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많이는 알려주지 못했다. 보건당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맞고나서 나타나는 증상과 그 증상을 완하하기 위해서 타이레놀을 먹으라고 공지했다. 백신은 무슨 일을 하길래 몸이 아픈지. 근육통은 왜 생기는 것인지. 왜 다른 약은 안 되고 타이레놀을 먹었을 때 증상이 완화되는지.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정부를 비롯해서 과학커뮤니케이터가 전달한다. 설명을 통해 논리적, 과학적으로 증상과 약에 대해서 이해하면 본인의 건강에 대해 더 안심할 수 있다.


고등학생 3학년 19살 때.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지도 선생님께서 말씀했다. 그 때 그리던 미래의 내 이미지는 세바시 같은 무대에서 과학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눈이 빛을 받아들여서 물체를 구분하는 메커니즘이 재밌었다. 이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보통 사람들한테도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있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진학한 대학교에서 조별과제 발표자는 대부분 내가 맡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피티하고. 발표하고. 포스터 보여주고. 그런 일들이 재미있었고 잘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후 4년 뒤 23살 때. 우연한 기회로 페임랩 대회에 참가했다. 페임랩은 3분동안 PPT 없이 도구와 말로만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대회다. 수상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본선 10인에는 들어가서 대중들과 카메라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감사하게도 가졌다. 나는 나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대회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덧붙여야겠다. 지금도 가끔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거나,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이 생기면, 내가 하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나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기 위해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첫번째 이유는 대학원에서 더 많이 공부해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박사라는 직함이 있으면 대중들에게 더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대학원에 왜 갔는가? 주제에서 작성한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원에서 랩미팅 준비부터 발표까지의 과정은 즐거웠다. 연구실에서 실험하느라. 시험공부하느라. 랩미팅 준비하느라. 밤을 몇 번 새봤다. 실험과 시험공부는 너무 하기 싫어서 얼른 끝나기를 기도하며 밤을 보냈지만 랩미팅 준비는 재미있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었"던 일이 되었는가. 대학원생이 되면서 사회성과 말주변이 확 줄어버렸다. 하루종일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라고는 "으아아악"이었던 날도 많다. 아직도 발표하는 건 재미있는데 재밌는 만큼 내 발표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혼잣말만 하면서 실험을 하는 날도 많고. 일반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어졌다. 연구실 속 히키코모리가 되어서 과학은 좀 나아졌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죽어버렸다. 게다가 지금은 내 연구 주제도 일반 생명과학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도 굉장히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생명과학자들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내용은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건 더욱 더 어려울 것이다. 과학자들한테 전달하는 것부터 잘하자라는 생각이 견고해졌다.


하지만 대학원생 시절이 끝나고 나면 죽었던 사회성도 다시 살아날 것이고. 일반 과학자들에게 내 연구 설명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한 분야의 전문가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재기할 날을 꿈꾸며 홍성랩노트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에 조예가 깊다고 예술영화만 제작하는 건 너무 진로가 제한적이다. 예술영화만 영화가 아니고, 상업영화 또한 충분히 작품성있는 영화도 많다. 또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모두 영화 창작을 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 비평, 영화 배급, 조명 감독, 영화사 직원, 영화 기자, 등등, 영화에 관련된 수많은 일들이 있다. 영화를 좋아하며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이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사랑하는 방식도 여럿이다. 모두가 과학지식을 생산해내는 연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과학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생산할 수도 있고, 그 과학지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내가 이 글에 언급하지 않은, 과학에 관련된 수많은 업이 있다. 난 절대 결단코 수백 날이 지나도 순수 과학 연구밖에 모르는 바보는 안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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