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매니저인데 정작 나 자신을 브랜딩 하지 못했다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개팅 첫날, 나는 꽤 치밀한 계산 끝에 옷을 골랐다.
"검정 원피스에 큼직한 흰색 카라,
검정 스타킹엔 반짝이는 큐빅도 박혀 있고,
센스 좀 있어 보이겠지?"
여기에 핑크색 롱패딩까지 입으면 저 멀리서도 나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한눈에 띌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룩 덕분에 소개팅 상대는 지금 내 남편이 되어 있다. 적어도 그런 줄 알았다.
어느 날, 옷을 입고 늘 하던 대로 남편에게 물었다.
“나 오늘 어때?”
잠시 스캔하듯 위아래를 훑더니 한마디.
“응, 예뻐.”
무성의한 대답에 성이 안 찼던 나는, 코멘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그러자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다.
“내가… 한번 진짜로 말해줘?”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내 옷장을 열기 시작했다.
“이건 색감이 애매하고, 저건 디테일이 과하고, 이건 핏이 전혀 안 맞고...”
하나둘, 내 옷들이 옷장에서 처절히 내팽개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쯤 비워진 옷장 앞에서, 남편은 결정타를 날렸다.
“최악은… 소개팅 첫날 그 검정 원피스에 핑크 패딩이야.”
뭐라고? 그날 남편의 표정은 마치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나온 이발사처럼 시원해 보였다. 그가 꾹 참고 있었던 말들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점점 말문이 막혀갔다.
나는 그동안 패션테러리스트였던 것인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장 믿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결과는 더 충격이었다.
“네가 상처받을까 봐 말을 못 했는데, 가끔은 너랑 만날 때 민망했어…”
친구는 남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고, 나의 패션 스타일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왜 이제까지 아무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옷 못 입는다”는 말을 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일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 해도, 그 사람의 옷차림을 평가하는 일은 자칫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진심 어린 조언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남는 건 기분 상하는 일뿐이다. 옷차림에 대한 평가는 때로는 침묵이 가장 조용한 배려가 된다.
그래서일까. 내 가족과 지인들 모두가 이제까지 불편한 진실 앞에서 하나같이 같은 선택을 했다. 나의 현란한 옷을 보고도 살며시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며, 못 본 척 넘겨버린 것.
아래 사진처럼 휘황찬란한 꽃무늬 원피스에, 어울리지 않는 모자와 가방까지 휘감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올 때면,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인들과 회사 동료들은 속으로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고 고백했다.
평소 옷을 잘 입는다고 착각 속에 살아왔기에, 이 사건은 내게 꽤 큰 충격이었다.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며 업무 특성상 미적 감각이 늘 요구되었다. 지난 십 년간 브랜드 매니저로서 광고 속 톱스타 모델들의 스타일을 선택했고, 브랜드의 색감과 디자인까지 총괄했다. 코카콜라를 담당하던 시절에는 직접 홍보물을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그 덕에 ‘디자이너 킴’이라는 별명까지 얻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작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브랜딩 하지 못한 걸까? 단순히 옷차림에 대한 평가를 넘어, 브랜드 매니저로서의 자격까지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옷을 잘 입는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패션쇼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거대한 꽃무늬 패턴,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상, 어디서도 보지 못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다. 그것이 곧 ‘옷 잘 입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저 이런 시도를 따라 해 봤을 뿐인데, 왜 내게는 냉정한 평가가 돌아왔을까. 혼란스러웠고, 자존심도 상했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면, 지금까지 고집해 온 습관을 버리고 하루빨리 ‘옷을 잘 입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옷을 잘 입는 법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 수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옷 입는 법에 대해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노하우로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하는 듯했다. 내겐 그것이 마치, 소수만이 향유하는 비밀스러운 파티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