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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Sep 03. 2024

캐릭터 치유 스토리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때

내 인생의 총합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은 정체성의 변화다.

정체성의 변화는 복잡했던 삶에서 단순해지고 평안해진 방향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의 서사에선 확장되고 홀로 서는 운명적인 변이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나 상대가 나에게 하는 부정적인 말과 평가로부터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열등감이나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을 말한다.

나를 이루는 정체성은 나 스스로 신중하게 선택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내 영혼은 이 생에 안전하고 평안한 행복 대신 강도 높은 진화를 선택했다.

나는 고요한 바다와 동시에 파도치는 강인하고 모험적인 역동의 삶을 선택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스스로 삶의 창공을 향해 쉼 없이 날갯짓하며

열망과 성숙함의 단계적인 고도를 날아오를 수 있도록

영혼의 친구로서 내가 원한 신성한 상처의 역할을 기꺼이 해주셨다.

우리 가족 안의 사랑과 공감은 거칠고 미성숙한 상태에서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여섯 살 초겨울부터 아빠로부터

내 이름 쓰는 것을 시작으로 한글을 배웠고 이듬해 봄에 학교에 입학했다

농부였던 아빠는 농한기 틈틈 이름 쓰기를 가르쳐 주셨는데

성격은 불같고 인내심은 약하셨다.

나는 그런 아빠가 무서워 앞에 앉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얘져

글씨를 쓰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이 긴장되고 불안에 압도되어 쪼그라들었다

그것은 아빠의 인내심을 폭발시키는 시간이었 고

그럴수록 나의 학습능력은 더 떨어졌다.


엄마는 무딘 감정을 지니셨고 나는 열리고 예민한 감정으로 태어났다.

그런 아이의 강도 높은 불안과 두려움을 보호하지도 알아채지도 못하실 만큼

챙기고 거둘 것이 많은 빈곤하고 복잡한 집안의 뜨거운 삶에 매몰되어 살고 계셨다.


겨울 동안 난 내 이름 석자를 완료하지 못하고 입학했다.

반 배정을 받고 운동장에 둥그렇게 모여 바닥에 이름을 쓰는 시간에

난 내 이름을 쓰지 못했다.

다른 부모님들과 아빠가 보고 계셨고

어린 나는 부끄럼과 수치심으로 몸과 마음이 수축되었다.








엠패스(에너지 초민감자) 아이였던 나의 세계에선

감정선의 에너지가 큰 어른들이 하는 말과 에너지, 눈빛 모두가 크게 해석되고

확장되어 들려왔다.

그러한 성장기의 에피소드들이 누적되며 자신감 부족, 소극적인 아이, 늘 아픈 아이로

세상과 스스로의 정체성에 각인되었다.


그 세계의 작은 아이는 늘 혼자였고,

몸이 허약해 학교를 자주 쉬었고, 밤과 죽음이 주는 공포의 환영에서

안전한 곳을 항상 찾았지만

누구도 그 불안함을 보호하거나 이해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의 새하얀 도화지 같은 세상에선

자신보다 크고 강한 부모와 어른과, 상대방에 의해

하나둘씩 판단되고 정의된 언어가 내면화되어 개인 무의식의 축을 만들어갔고,

그에 맞는 특정 감정과 기억의 복합체가 중심 파동이 되어 삶을 끌어당겨

솟아날 돌파구가 없는 한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인생이 그러하셨듯

나 역시 마더쇼크의 고락이 예정된 삶을 미래를 만들고 있었다.


[마더쇼크 :모성의 대물림으로 딸의 심리가 엄마를 보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선택을 하지만 엄마의 정서와 비슷한 인생의 결을 발견하고 고통받는 형태.

남성은 파더쇼크로 불림 : 아들에게 대물림되는 아버지의 그림자 패턴]

참고자료:EBS 다큐프라임 :모성의 대물림 ]


그러면서 동시에 내 안에서 건강하게 분화되지 못한 남성성의 미숙함은

심연의 무의식층에 남성을 혐오하고 미워하며 동시에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양면의 정서적 불안과 결핍의 상처를 반복해서 경험하도록 촉구했다.



남이 인정해 주는 사랑과 성공은 바닷물 같아서 먹을수록 갈증이 났다.

나의 삶은 이후 오래도록

사막에서 물 한 방울 없이 끓고 있는 난로 위의 달궈진 주전자 같은 삶이 펼쳐졌다.


그러할수록 무의식의 심연에 더 많은 결핍의 환상을 만들어냈고

자기 불신, 자기혐오, 자기 미움의 씨앗들로 무성히 자라나서

서른 중반 이 넘었을 때 혼돈과 고통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것은 홀로 갇힌 삶에서 핏빛으로 퍼덕이다 백 척 간두에 섰을 때

돌파구가 없는 지난한 대물림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한 선택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의 그 마음은 텅 빔 이었다.

다시 살아있어야 했고 살아가야 했다.


그 후 정장과 구두를 벗어던졌다.

치열하고 뜨겁지만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단순하게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밤이 되면 피곤해져서 큰 대자로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싶다는 욕망이 살아났다


몸으로 힘을 쓰며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땀 흘리고 노래하고 춤추며 어우러져

살고 싶었다. 살아있으면 되었다.

정신과 물질의 자립을 위해 직업의 귀천을 내려놓게 되었다

모든 직업은 하늘 아래 신성하다는 것을 인생 속에서 경험해 봄으로서

인생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며, 몸통이며, 현장에서 생생하게 부딪히고

마주하며 삶으로, 오감으로 경험하고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파란만장 덕분에 풍부하고 다양한 삶의 재료들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뜨거운 발바닥과 뜨거운 심장으로 정신없이 뜨겁게 살다 보면

어떤 순간 경계가 사라진다.

지나고 보니 살아가는 일상 모든 것이 명상이다.

나는 단지 오늘들이 이어진 오늘만을 살뿐이다.

음식을 하는 것도 , 산책도, 책을 읽는 것도,

누군가와 만나 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명상이다.


이생에 나의 첫 시작이 되어준 부모와 형제의 환경과 세상에서 만나고 스쳐간

무수한 고마운 인연들 덕분에

나의 안전지대와 두려움을 수 없이 박차고 날아올라야 했으며

그러한 까닭에 이 삶의 시작은 고락이었지만

그 시간의 층을 통과해 온 지금은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고 믿어주고 있다.

나는 과거의 나라고 정의된 탈을 벗어내고 나의 고유함을 하나씩 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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