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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K Moon Nov 21. 2024

지난겨울에 있었던 일

남편은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2024년 11월 시드니는 이제 한여름을 코 앞에 두고 있다. 한국이 겨울이라니 지난겨울을 떠올려본다.

지난 7월은 시드의 겨울이었다. 한겨울. 그때의 일기를 꺼내본다.



겨울이다. 한겨울. 시드니의 겨울은 비도 잘 안 오고 습도도 낮고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이 계절처럼 겨울이다. 크게 불편할 것도 불행한 인생도 아니지만 내 마음은 겨울이다.

80대 후반의 엄마는 십여 년 전에 혼잣말처럼 뇌되이셨다.

"내가 배움만 길었어도 이렇게 살지 않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내 인생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이렇게 살다가 눈 감는 건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렇게 말했던 엄마는 이제 자신이 그런 말을 했었는지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대신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싶어 하고 집 밖에 나가 거리를 돌아다닌다. 언제나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사라졌고 소변이 마려우면 길에서 무작정 바지를 내리는 등 본능에 충실한 해맑은 아이가 되었다. 엄마가 알치하이머에 걸리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처럼 심각한 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아직 엄마보다 젊고 많지 않은 돈이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있고 집도 있고 남편도 자식도 있고 무려 신앙도 있는데 얼마 전에 생긴 일로 인해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을 내뱉고 있다.


"내 인생 이렇게 끝나는 건가? 소소한 돈을 벌고 변변치 않은 요리실력으로 밥상을 차리고 저축해서 해외여행도 일 년에 두어 번 다녀오고, 그렇게 살다가 사고나 질병이나 노환으로 어느 날 이 땅을 떠나게 되는 건가..."


어릴 적 나는 게을렀고 몽상가였다. 어느 날 실은 네가 잃어버린 자기 자식이라면 나타날 재벌부모를 상상했고 심하게는 내가 지구인이 아니기도 바랬다.

거울에 비치는 내 육신은 실제의 나와 간극이 있어 보였다. 게을렀지만 나는 되고 싶은 것은 많았다. 기자, 피디, 영화감독, 드라마작가, 영어 잘하는 사람, 부자... 하지만 현실은 전문직종으로도 부자의 길로도 발을 내디뎌 보지 못했다. 물론 그건 모두 내 탓이다.


집 안이 쫄딱 망해서 도시빈민으로 살아야 했던 학창 시절 때문도 아니고, 서로를 원수처럼 미워했던 부모님의 불화 때문도 아니다. 재수를 하는 대신 원치 않은 전공을 택한 것도 나고 만 26살에 결혼을 택한 것도 나다. 30살이라는 나이, 시나리오 작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대신 이민을 선택한 것도 나다.

가족 친구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틈틈이 커리어를 가질 기회를 찾긴 했다. 간호사, 한의사, 골프강사 등등. 그때마다 남편은 내 선택을 지지해주지 않았다. 남편이 흔쾌히 지지해 준 내 커리어는 일 년 과정 유치원 교사 자격증이었다. 물론 남편 탓이 아니다. 남편이 반대하던 찬성하던 내가 원하면 했어야 했다.



과거를 후회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인데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해프닝이 생겼다.

남편의 회사 동료인 40대 중반의 여성이 있다. 아니, 있었다 고 과거형으로 말해야 한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었으니까.  지난 시간 동안 남편에게 종종 들어온 내용을 종합해 본바로 그녀는 '미모는 평균 이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졌고, 영어 못하는 중국 직원들을  나서서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잘하고, 최고급 차를 몰고, 자주 해외로 럭셔리한 휴가를 가고, 집에 있기 심심해서 파트타임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한마디로 돈 많은 남편을 둔 여자'였다.

첫 결혼에서 낳은 자식은 전남편이 키우고 나이가 많은 부자 남자를 만나 재혼한 거였다. 재혼한 남편은 나이가 꽤 많고 건강도 안 좋다고 했다. 심장이 안 좋아서 수술도 앞두고 있고 아픈 지 오래된 거 같았다. 그런 그녀가 남편에게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기뻐했다. 현재의 뻔한 월급쟁이 신세에서 벗어나 커미션과 셰어와 컨펜세이션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로 발돋움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 플랜에 덩달아 마음이 들뜨며 적극 찬성했다.


그녀와 남편은 둘이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원래는 투자를 할 돈의 실세인 그녀의 남편이 나의 남편을 만나야 할 텐데 그녀의 남편이 몸이 안 좋은 관계로 그녀와 나의 남편만 만나기로 했다고 들었다.

두 사람은 회사 근처도 아니고 그녀의 집 근처도 아닌 꽤 먼 거리의 바닷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남편은 회사에 따로 옷을 챙겨가서 회사에서 옷을 갈아입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녀도 자신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가서 차는 약속장소와 떨어진 제3의 장소(?)에 세워두고 자신이 세워둔 주차장에서 우버를 불러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이런 사실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남편이 12시가 다 돼도 안 돌아왔다. 내가 건 두 번의 전화가 불통이 되고 세 번째에야 남편은 전화를 받았다. 그 통화에서 나는 왜 남편이 전화를 못 받았는지도 그녀가 우버를 타고 약속장소에 나타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이 그녀를 옆에 태우고 그녀를 데려다 주기 위해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차를 어느 동네 주차장에 세워놓았기 때문에) 어느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그녀에 대한 칭찬이 나는 듣기 거북했다. 남편은 그녀가 사업을 제안할 정도의 부자인 것이 마치 그녀의 성취인 것처럼 말했고 나는 그것이 매우 부당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돈 많은 할아버지를 잡아서 재혼한 사실과 그녀가 남에게 선물을 자주 할 수 있는 관대함과 그녀의 가꾸어진 외모 또한 그녀의 부자 남편이 제공해 준 것임을 지적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비난했다.


"왜 함부로 남을 판단해? 사랑했는데 마침 돈도 있고 나이도 많은 걸 수도 있지. 그리고 그 여자가 돈을 보고 할아버지랑 재혼을 했다 한들 그게 뭐가 문제야? 돈보고 결혼하는 게 나쁜다고 누가 그래? 각자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 뿐이야. 그걸 비난할 권리가 남한테는 없는 거야.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젊은 여자가 돈 때문에 할아버지랑 결혼하는 거 도덕적으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거지?”

“당연하지."


남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돌연 기운이 빠져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50세가 넘어서 얻은 나의 새로운 직업은 장애인보조사(disability support worker)다. 4개월 무료 자격증 과정이라 진입장벽이 낮고 취업도 잘되는 분야였다.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일이니 힘을 쓰게 돼서 몸이 가벼운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게 내가 아침 출근준비를 하면서 기운이 빠져버린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냥 출근하기 싫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만 26살, 남편이 만 27세에 결혼할 때 남편은 변변한 직장이 없었다. 직업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한동안 시부모님이 주시는 50만 원이 우리의 주소득이었다. 나는 라면만 먹고살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우린 젊었고 돈은 벌기로 작정하면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운이 빠져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나이 많은 의사와 중매결혼을 한 동창이 생각났다. 그 당시 난 그 친구의 선택이 꽤 충격적이었다. 그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나는 그 동창이 생각났고 내 귀에는 남편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네가 그 여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거야? 다 똑같아. 다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사는 거야.‘


나는 인생의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배부른 투정이네. 남편 있고 건강하고 빚없고 배고프지 않으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줄을 모르지. 엄청난 고난이 닦쳐봐야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 건지,  자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법이지 ‘


배불러서 투정하는 건 아니다. 감사를 모르는 것도, 지금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조금 억울하기도 아깝기도 하다. 뭔지 모르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뭔지 모르겠지만 인생이 이게 다가 아닌 것 같다.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방법이 있는 게 아닐까... 지금부터 나는 애를 써 볼 거다. 사람들이 인생 별거 없다고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라고 말해도 노력해 볼 거다.

욕심일지라도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다가 엔딩을 맞는 건 뭔가 좀 억울하다. 아깝다.


일기를 그렇게 끝났지만 나는 남편과 그 일로 부부싸움을 대판 했다. 둘의 만남에서 새롭게 진전된 앞으로의 사업계획이 나온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것도 없었다. 막연하게 그 여자는 건강식품 관련 사업을 자신의 남편의 돈으로 하고 싶어 했고 앞으로 중국 출장도 가야 하고 아마 공장도 보러 다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앞으로 당신은 그럼 그 여자가 나오라고 하면 나가고 중국 출장도 같이 다니고 그럴 수 있다는 거지?"

"아마 그렇겠지."

"그건 좀 문제가 있는데... 둘이 출장 가서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하고 그럴 수도 있을 텐데. 난 아내로서 좀 그런데."

"아! 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자기는 그럼 반대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 봐. 내가 일 때문에 어떤 남자랑 둘이 해외 출장도 다니고 밥도 먹으러 다니고 남자가 공장일 때문에 전화로 저녁 7 시건 밤 10 시건 나오라고 해서 내가 나가도 괜찮다는 거야?"

"당연하지. 일 때문이라면 나는 이해해."


거짓말. 남편은 반대 입장이었다면 이해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내가 남자한테 전화만 와도 싫어하고 남자 유튜버 채널을 팔로우만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일 때문이라도 외갓남자와 해외출장을 둘이 떠나는 걸 이해할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니 자신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몇 달 동안 남편이 이상하긴 했다. 새삼스레 외모에 신경을 썼다. 50 넘어 포기했던 대머리인데 갑자기 이제라도 모발약을 먹어볼까 그런 소리도 했었다. 내가 그녀와 자신의 사이를 의심하냐고 발끈한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런 여자..."

나는 그의 뒷말이 "그런 여자... 그런 여자를 도대체 내가 왜 좋아하겠어?" 일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의 뒷말은 이거였다.

"그런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나같이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를 만나겠냐?"


내가 꼭지가 돈 것은 남편의 그 말이었다. 그 여자의 가치를 낮게 보는 대신에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 그 세속적이고 한심한 기준. 그게 나를 화나게 했고 실망시켰고 급기야 내 결혼생활 전부를 돌아보게 했으며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결국 남편은 그 여자와 사업을 같이 하지 않기로 했고 그녀는 취미로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남편과 그 문제로 싸우면서 내가 가장 괴로웠던 건 남편이 내 기분을 전혀 공감을 못한다는 거였다. 내가 속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남편은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 남편은 내게 눈을 흘겼고 고개를 절래 절래 내저었고 한숨처럼 '아무튼 특이해'라고 되뇌었다.

남편이 역지사지 능력이 떨어지고 내 감정에 공감을 못한다는 것이 언제나 날 힘들게 했었는데 남편과 다툴 때 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구나.'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상한 남자와 결혼한 것처럼 그도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구나.

눈이 한 개 달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눈이 두 개 인 게 비정상이다. 남편의 세상에서는 남편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다. 반대로 내 세상에서는 남편이 비정상이다.

그런 두 세상이 만난 게 결혼이다. 두 개의 세상이 만났으니 당연히 충돌도 생기고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깎아낸다. 그러면서 각자의  모난 곳들이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서로가 합해지는 교집합도 생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자면 이혼밖에 답이 없지만 과연 내가 항상 옳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남편의 장점은 꿀 빨듯 잘 이용해 먹으면서 남편의 단점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그를 탓하고 있지는 않은지...    


평생 속 편하게 살려면 결혼하지 말고 나 혼자 살아야 하지만 평생 성장하면서 살고 싶으면 결혼만큼 인간을 성숙시키기는 관계도 없다. 결혼은 그래서 냉정하게 말해서 잘 한 선택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보면 나는 여전히 그가 불쌍하다. 자신의 세상에서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잘 나가는 일부 남편들을 제외한 세상의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 돈 못 버는 죄로 밖에서나 안에서나 공격을 받고 산다. 그러니 우리 집 가장인 남편에게 나라도 공격을 멈춰야 하는데....

그가 사이코패스 살인마 약쟁이 도박쟁이도 아닌데 왜 그의 성격 어쩌고 하면서 트집을 잡고 사는지...

나는 왜 성공한 사업가가 되지 못해서 남편을 조기 은퇴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노동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지... .

이런 생각이 많이 드는 걸 보면 확실히 나는 과거보다 나은 인간이 된 거 같다. 김주환 교수님 말씀이 정확하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남을 행복하게 하면 된다. 내 인생 눈 감을 때 억울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행복하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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