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듬어가는 시간
저는 메모의 유익을 제법 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언제부터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되짚어 보아도 그 시작이 묘연하지만, 생각이나 계획이 떠오를 때면 잠시 멈추어 어딘가에 써 놓는 일에 익숙한 걸 보면 메모는 책 앞의 목차처럼 제 일상에 꼭 붙어있습니다. 바쁜 일을 끝내고, 아까 써 놨던 흔적들을 읽어보면서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그 상황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고,잊지 말고 해야 할 일들을 한 번 더 기억하게 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챙겨야 할 것을 머리와 마음에 넣고, 버려야 할 것을 비워내다 보면 하루가 보기 좋게 정리되는 기분이 듭니다.
저의 ‘쓰기 사랑’은 아버지께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지금은 IT 교육, 예체능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이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만, 제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80년대에는 ‘쓰고 그리는 활동’이 교육 과정 중 대부분이었습니다. 삼일절, 식목일, 현충일 등 국가행사가 다가오면 학교에서는 어김없이 쓰기와 그리기 대회를 했습니다. 그리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저는 주로 쓰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출품작 대부분이 저와 아빠의 합작품이었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께서는 밤늦게 퇴근하셔서 피곤하셨을 텐데 제가 낮에 써 놓은 글을 읽어보시고 어색한 부분을 고쳐주시거나 새로운 단락을 추가해서 새 글을 완성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빠의 글을 원고지에 옮겨적어 학교에 제출했지요. 아빠의 조력 덕분에 저는 조회 시간이면 늘 구령대 앞에서 상을 받는 우수 학생이 되었습니다. 글감을 뒤죽박죽 뭉쳐놓아 앞뒤가 맞지 않는 제 글이 아빠의 세련된 필력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입니다.
상을 타서 좋아하는 저에게 아빠께서는 수상(受賞)한 글을 여러 번 읽어보게 하셨습니다. 이미 다 끝난 글을 읽게 하시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아빠 덕분에 상을 받았으니 아빠가 시키시는 ‘의미 없는 일’을 따르는 것에 조금의 불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쓰고 고치고 읽는’ 일련의 과정을 몇 년에 걸쳐 반복하는 동안 저의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아빠의 도움 없이도 제 생각을 풀어놓아 명료하게 서술하는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쓰는 일 자체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해 아이를 기르면서는 글 쓰는 일에 소원했지만, 요사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저는 한발 물러서서 제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과거의 나, 오늘의 나, 미래의 나… 그리운 시간과 살아가는 시간, 소망하는 시간 안에 녹아있는 저의 생각들이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이런 상념들을 눈에 보이는 글자로 끌어낼 때면, 저는 저의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뤄가는 것을 느낍니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 과장의 추(錘)가 내려가는 찰나에 절제의 추를 더해 올려놓고, 논리나 이치의 추가 내려가는 찰나에는 유연한 감성의 추를 더해 놓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만이라도 얕은 논리로 저의 과실을 감추어 주변에 상처 주는 일이 없기를, 감정에 치우쳐 상황을 바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기를, 저를 깎고 다듬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제게 주신 삶이지만 저만을 위해 즐거워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