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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발톱 깎기 변천사: 1 밀리미터 원칙 지키기

by 이종현

어렸을 때에 우리 형제의 손톱 발톱은 주로 아버지가 깎아 주셨다. 발톱을 깎을 때는 늘 손톱과 함께 깎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손톱만 깎는 경우도 많았다. 손톱이 더 빨리 자라서 그랬던 것 같다.


손톱을 깎을 때는 꼭 1 밀리미터 정도의 길이를 남겨 놓고 깎아 주셨다. 이렇게 하려면 손톱깎이의 날을 손톱 속까지 깊게 밀어 넣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손톱깎이의 둥근 날 부분을 손가락 끝에 댄 후 손톱 쪽으로 약간만 밀어서 깎아야 한다. 그래야 1 밀리미터 정도가 남는다. 깎은 후에 남은 하얀 손톱의 길이는 매번 거의 일정했다. 손톱을 깎고 나면 열개 손가락 끝에 늘 가느다란 초승달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귀찮아서 왜 더 짧게 깎지 않느냐고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매일 손끝을 쓰는데 너무 짧게 깎으면 손톱 아래 살이 밀려서 생인손을 앓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주로 목욕을 한 후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신 것도 그런 이유와 관련이 있었다. “목욕을 하면 손톱과 발톱이 부드러워져서 손가락과 발가락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깎기도 좋지만 연해진 손톱과 발톱이 사방으로 튀지 않는 것도 좋은 점인 것 같았다.

발톱은 상대적으로 손톱만큼 엄격하게 원칙이 준수된 것 같지는 않았다. 발톱도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깎아 주셨지만 손톱만큼 정교하지는 않았다. 손가락만큼 발가락이 다양한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 다른 일로 발톱을 다친 적은 있어도 너무 짧아서 아팠던 기억은 거의 없다. 발가락이 밀리도록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과 발가락의 쓰임새가 다르니 그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부터는 스스로 손톱 발톱을 깎게 됐던 것 같다. “오늘부터는 네가 깎아라.”라는 선언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시간에 대한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어느 시기부터 아버지가 깎아 주시기도 하고 내가 깎기도 하다가 서서히 나의 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게 이양된 나의 일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성가셔한 적은 없었다. 손톱 발톱 깎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특히 목욕 후에 개운함을 극대화시켜 주는 절차였다. 다만 그 1 밀리미터의 원칙이 숙달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소홀하게 생각하고 손톱을 바티 깎았다가 생인손까지는 아니어도 며칠 동안 손가락이 아리고 불편했던 기억이 적지 않다. 그럴 때면 손톱 안쪽으로 둥글게 붉은 선이 그어지며 손가락 끝이 쿡쿡 쑤셨다. 한번 이렇게 되면 통증이 하루 이틀은 갔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주의를 주셨던 일이 생각났다. 자상하고 세심했던 아버지의 말씀이 틀리는 법은 없었다.

손톱 안에 둥글게 잡힌 붉은 선이 연해지면서 다른 살색과 같아질 때쯤 통증도 사라졌다. 그렇게 아프기를 여러 차례, 통증의 기억이 쌓이면서 점차 1 밀리미터의 원칙이 마음 깊게 자리를 잡게 됐다. 그것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따르고 있는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손톱깎이는 손자의 손톱 발톱으로 옮겨갔다. 아버지는 손자의 손톱과 발톱에도 똑같은 원칙을 적용하셨다. 그리고 조금 더 자상하고 다심할 정도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하루는 아버지가 손자의 발톱을 깎아주시는데 손자 녀석은 앉아서 몸을 반쯤 뒤로 젖힌 채 엉덩이 뒤로 양손을 집고 할아버지에게 함부로 발을 쭉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놈아 무슨 버릇이냐.’고 나무르려다 보니 할아버지와 손자가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손자의 발끝에서 작은 발가락을 하나씩 잡아가며 정성스럽게 발톱을 깎아 주셨다. 그 사이에도 손자 녀석은 쉴 새 없이 할아버지에게 조잘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귀담아듣는 것인지 아닌지 손자에게 적당하게 추임새를 넣어 주며 정성껏 ‘맡은 바’를 완수하고 계셨다.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제 손톱과 발톱을 모두 맡기고 재잘대며 앉아 있던 손자 녀석도 지금은 혼자 손톱과 발톱을 깎는다. 아마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그에게도 똑같이 내려갔을 것이다.


최근 들어 자연스럽던 나의 일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노안이 오고 시력이 떨어지면서 손톱과 발톱을 깎으려면 전과 다르게 갖춰야 할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고 불을 환하게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톱깎이의 위치를 정확하게 잡기가 어렵게 됐다. 손톱깎이가 자리를 잘 못 잡으면 내가 힘을 준 순간 가차 없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더러 벌어지기도 했다.

손톱은 손가락을 눈 가까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어서 덜 위험한 편이다. 그래도 전과 같지는 않아서 조심스럽게 손톱깎이를 조작해야 한다. 1 밀리미터의 원칙을 지키려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발톱이다. 발톱은 발가락을 일정한 거리 이상 당길 수가 없어 자세하게 보기가 어렵다. 다리를 접고 발을 잔뜩 잡아당겨야 한다. 특히 새끼발톱을 깎을 때 자세는 고난도의 비틀기를 요구한다.


예전이라고 달리 편한 자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과 다를 바 없는 자세가 힘들어지는 것은 떨어지는 몸의 유연성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서 허리를 접으면 손바닥 전체가 땅에 닿았는데 이제는 언감생심이다. 연습을 해야 손바닥의 절반 정도가 억지로 땅을 짚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발톱을 깎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진행된 것은 아직 아니다. 그러나 허리를 기울여도 눈과 발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테니 그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면서 적응해야 할 일이 은근히 많아진다. 서서히 진행돼서 스스로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일상의 작은 변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어느 순간’ 튀어나올 것이다. 누구도 이런 세세한 얘기는 해 준 적이 없다. 모두들 알아서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구차해 보일까 봐 애써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알려 주신 1 밀리미터의 원칙이 얼마나 더 엄격하게 준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몸의 유연성을 어떻게든 잃지 않아야 하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슬슬 아내에게 부탁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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