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진 Jun 27. 2023

걸어서 밀양 끝까지

걷기 좋은 도시를 찾아서


밀양에서 편안하게 지루하지 않은 채 걸었던 거리를 재어보니 1.2km 정도 된다. 같은 거리를 서울의 남가좌동에서 찍어보니 700m 정도 된다. 주로 아내와 함께 산책한다고 했을 때 걸었던 거리다. 편도거리이니까 왕복으로 치면 밀양에서는 2.4km 거리가 서울의 1.4km 정도를 걸을 때 같은 피로도로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밀양의 시내에는 서울 같은 대단지 아파트가 없다. 내가 사는 구도심 지역은 물론 밀양의 신시가지라고 불리는 곳에도 도심 속에 아파트는 없고 주로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도심은 구불구불한 거리와 낮은 저층 주거지역으로 빼곡히 들어차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서울 촌놈에게는 거리를 걸었을 때 같은 모습의 아파트만 보이는 서울 보다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이 도시가 다가오는 것이고 그것이 걷는 행동의 피로도를 낮춰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아파트 :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책을 쓴 박철수 교수도 우리나라 아파트의 진짜 문제는 아파트라는 건축 형식이 아니라 아파트의 거대 단지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도시에 사유지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도시는 사실상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형국이 되었다. 그것은 공동체에 난 구멍과도 같다. 맥이 뚝뚝 끊어져있는 도시는 걷는 리듬을 잃게 만들고 재미도 잃게 만든다. 그나마 그 재미를 조금 살려주는 것이 아파트 외부에 늘어선 1층 상가지역이다. 한때 아파트에는 그 1층 지역의 외부 상가를 반드시 배치함으로써 문제를 완화시키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성을 짓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밀양은 그렇게 재미있고, 걷기 좋은 도시일까. 그것은 또 아니다. 곳곳에 보행로는 없고 차만 다니는 길들이 있다. 사람이 차를 피해서 다니고 때로는 차도 갑자기 등장한 사람에 놀란다. 일방통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리하게 양방향으로 차가 다니고 사람은 노란 점선과 상점 사이를 위태롭게 걷기도 한다. 그래도 걷기에 덜 피곤한 건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그래서 도로 정비나 개선이 느린 건지도 모른다. 


완벽한 도시는 없다. 다만 조금씩 장점을 찾고, 단점을 개선하면서 더 좋게 만들어 나갈 뿐이다. 밀양도 눈에 보이는 단점들이 많다. 하지만 좋은 장점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아파트 단지 없는 다채로운 도시의 모습, 그것이 장점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사카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