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ssy Aug 11. 2024

이건 사실 나의 울분이다.

안면장애인의 삶 1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보통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는 질문이다. “어떻게”라는 단어에는 나의 불행을 요약해서 정리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고, “그렇게”에는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비정상’에 놓여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나에게 폭력적인 질문을 행사했다.

 나는 불행을 전시한 채로 돌아다녀야 하는 경증 장애인이다. 안면장애. 안면인식장애가 아닌 안면장애이다. 안면장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안면장애의 존재 자체를 모르니 사람들에게 난 장애인이라고 인식되지 않는다. 그저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일 뿐이다. 나의 외면은,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비정상이다.

 시선. 장애를 가진 이후로 끝도 없는 시선을 받아야만 한다. 연예인이라면 동경과 선망의 시선을 받겠지만 장애인이라면 동정과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받는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 시선의 의미를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이상하다, 불쌍하다, 왜 그렇지,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그 오만함. 그들에게는 한 번의 궁금증, 한 번의 감정, 한 번의 시선이지만 나는 길을 걸어가면서 그 한 번의 시선을 수 백 명에게 받아야만 했다.

 학교. 나는 나름 열심히 나의 삶을 바로 세우려고 했다.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그런 거짓말을 믿었다. 스무 살이 되고 처음 대학에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위와 같은 “어떻게 이렇게 되었냐?”는 질문이다.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하면 더 나아질 거라는 그런 말을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쏠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다음 역에서 바로 내렸다.

 좋은 대학이 나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을 사람들의 폭력적인 질문에 시달린 나는,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위의 지하철에서의 일화를 다룰 때,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그렇다, 나의 잘못은 아니다. 나에게 질문을 한 그들이 무례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무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무례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질문을 남은 생애동안 또 받아야만 했다.

 심리상담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이고, 그들은 바뀌지 않으니까. 사회가 바뀌지 않으니까. 나의 장애는 완전한 ‘개인적인 체험’이었으며, 나는 깊고 깊은 굴을 팠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고립되어 갔다. 세상은 나에게 무자비했고, 불행은 겹겹이 쌓여갔다. 나를 좀먹는 세상과 사람들에 내가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은 나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칼자루를 쥐어줬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자주 천장을 보고, 내가 목매달 자리를 찾고, 떨어질 곳을 봤다. 끊어지지 않는 줄을 주문하고, 유서를 고쳤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온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졌다. 식욕도 수면욕도 느껴지지 않는 날. 이제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에 다시 병원에 가게 되었고, 약을 먹으며 다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끊을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낼 용기를 얻을 수 있지만, 약을 먹으면 이 고통스러운 삶을 다시 살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다. 어떤 선택이든, 나에게 달갑지 않았다. 다시 주어진 삶의 기회가 달갑지 않았다. 내가 약을 먹는다고 사람들이 바뀌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바라보는 ‘잘못된 삶’이라는 시선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