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브랜드; 모든 무형과 유형의 가치
애플 하면 스티브잡스가 있고 올드셀린하면 피비파일로가 있다. 브랜드는 디렉터의 철학과 그들의 목소리가 투영되기 마련이다. 브랜드를 만드는 다양한 요소와 다양한 배경 등이 있겠지만, 예쁘고 트렌디한 브랜드들은 차고 넘쳐나도 걔 중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정말로 이해하고 그들만의 스토리를 탄탄하게 쌓아나가는 브랜드는 드물다.
스포티앤리치가 유명해진 건 디렉터의 쿨하고 건강한 애티튜드와 라이프스타일이 브랜드 aesthetic과 맞아떨어지면서도 한 몫했지만,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딱히 연상되는 것도 없고 사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무언가도 없고, 하물며 그들의 철학이 와닿는다거나 스토리텔링도 안되고 아이덴티티도 없는데 멋지고 쿨한 비주얼 만들기에 급급한 브랜드가 너무 많은 것은 슬픈 현실이다. 비주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다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 뒷전이란 소리다.
예를 들면, 혼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 랄프로렌 잠옷에 폴로 로고 하나 박혀있다고 30만원을 주고 사고 싶게 만드는 힘은 바로 브랜드의 파워이자 곧 스토리다. 특히나 겉옷이 아닌 파자마나 속옷 등 나만 알 수 있는 좀 더 프라이빗한 아이템들의 구매력을 강화시키는 건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이자 스토리란 생각을 한다. 집에 왔을 때 이걸 입고 자는 내 모습이 내심 고상하게 느껴지고 마치 본인이 미드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상상하게끔 하는 아메리칸 클래식 바이브같은 거.
사람들이 사는 건 잠옷 자체가 아니라 그 브랜드의 바이브나 무형의 가치같은 것이다. 럭셔리 제품이나 하이엔드를 사는 이유도 그러하지 않은가? 가방이 필요한 거라면 그냥 아무 가방이나 사도 될 텐데 왜 그토록 주황색 패키지에 열광하고 샴페인 글라스가 필요하면 다른 데서 사도 될 텐데 왜 우리는 바카라에 열광하는가.
’노출력 = 브랜딩‘이라는 냄비같은 판타지에서 벗어나 이론같은 거 말고 상상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처럼 브랜드는 진정성과 스토리를 팔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대중들은 그런 브랜드에 혹하게 되고 이제는 개성이 뚜렷한 영민한 소비자층이 많아져서 그냥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들고 사고 싶게 하는 일회성 브랜드인지 혹은 내가 지속적으로 그 브랜드의 고객층이 되고 싶은지가 분명해진 시대다.
나는 평소 나라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힘을 쓰는 편이다. 사람들이 나를 떠올리는 것 중엔 링 귀걸이, 때론 과감하고 팝한 컬러 초이스, 호피 무늬 등등이 있을 거다. 이건 내가 꾸며놓은 나의 아늑한 공간, 옷장, 그리고 인스타 피드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내 아우터칸은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다. 이건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냥 나 자체이기 때문에 그걸 의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의도적일 때도 있지만 거짓이 들어가 있진 않다. 예를 들어, 안나 윈투어 하면 눈을 볼 수 없는 까만 선글라스와 함께 항상 c컬로 말려있는 정갈한 단발이 떠오르듯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아이코닉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이자 강력한 무기가 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봤던 드라마 외교관에서 공관 차석이 자기 옷과 머리에 못마땅해한단 외교관에게 그레이스 펜이라는 여자 부통령이 이런 얘길 한다.
보이는 게 중요한 세계에요.
아무도 내 정책서를 읽지 않아요.
잘돼봤자 1년에 한 번 말 한마디가 화제가 되는 정도죠. 반면에 하루 평균 1만 2천 번 내 얼굴이 매체에 등장해요. 미국의 모든 교실과 전 세계의 모든 대사관 벽에 내 사진이 걸리죠.
소프트 파워에요. 그러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군인이 제복을 입듯 정장을 입어요. 모습을 감춰요. 직무 뒤에 개인은 숨는 거죠.
아니면 특징을 만들어요.
금발 단발, 빨간 립스틱,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긴즈버그의 목 칼라, 안경, 약칭 등 사람들이 단번에 알아볼 장치요.
그럼 애들이 할로윈에 당신 분장을 하죠.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그것이 소비자들을 겨냥한 브랜드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다. 연상되는 무언가가 없다면 냄비같이 끓어오르다 식던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특징을 만들거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을 뎁스 있게 파고들어 정체성과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이 브랜드에 녹아들고 단단하게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취향, 그리고 스토리가 잘 버무려진다면 나라는 브랜드도 성공한 셈인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것이 혹 값어치가 나가는 것이더라도 경험이라는 것에 투자해보고 좋아하거나 관심 가는 물건에 투자해보고 무형, 유형 가릴 것 없이 취향을 정제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 플랫폼을 통해 나만의 관점이 들어간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경험을 쓰면서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평범하게 지나쳐 가는 일상 속 물욕을 자극하거나 이야기를 자극하는 어떤 것이든 잘 먹고, 잘 쓰고, 잘 쉬고, 잘 자는 법에 대한 모든 무형, 유형의 것들을 기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