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디커플링(decoupling)과 ‘파괴적 혁신’의 차이점은?
2. 디커플링(decoupling)과 ‘파괴적 혁신’의 차이점은?
많은 사람들이 디커플링과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말하는 파괴적 혁신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합니다.
디커플링과 파괴적 혁신처럼 서로 말하는 현상도 다르고 접근하는 시각도 다른 이론을 비교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커플링 이론과 크리스텐슨의 이론이 서로 겹치는 부분을 비교하고 서로 다른 부분을 대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크리스텐슨이 처음 파괴적 혁신 이론을 발표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용을 여러 차례 수정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본격적인 차이점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시장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단어가 왜 중요한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어쩌다 보니 무너지고 말았다?
보더스(Borders)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서점 체인업체였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 아마존(Amazon)으로 인해 보더스의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되었고, 결국 2011년 보더스는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CEO 마이크 에드워즈는 보더스의 몰락을 통해 ‘겸손’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에드워즈가 그동안 배웠던 모든 지식과 경험은 ‘디지털 쓰나미’ 앞에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선두 주자였지만 파산을 막기 위해 2013년 회사를 매각한 노키아(Nokia) 역시 디지털 디스럽션의 희생물이었습니다. 당시 노키아의 CEO 스티븐 엘롭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무너지고 말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에드워즈와 엘롭은 자신의 실패한 전략에 대해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
비즈니스가 붕괴되는 상황을 속절없이 바라만 보던 다른 모든 기업의 임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디스럽션은 업종, 지역, 시장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현대 시장에서 디지털 디스럽션은 한 번 발생해 변화를 일으키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늘 주변을 맴도는 기본 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경쟁사, 새로운 기술, 새로운 투자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끝없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대기업, 이미 시장에 자리를 잡은 기존 기업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2) 혁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
혁신, 많은 지도자가 꼽는 단어입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회사가 비즈니스에 혼란과 파괴를 조장하고 있다면, 이미 자리 잡은 기존 회사의 리더는 경쟁사를 뛰어넘는 혁신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고, 그래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1997년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출간했으며, 특정 유형의 혁신이 존재할 때 시장 붕괴 또는 파괴의 위험 또한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크리스텐슨에게서 영감을 얻은 경영자들, 혁신에 관한 수많은 책에 영향을 받은 비즈니스 리더들은 더욱 혁신적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만약 경쟁사에서 채택한 어떤 ‘신기술’이 위대한 기업의 실패를 초래한다면 이미 자리 잡은 기업은 스스로 새로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기술 혁신과 시장 파괴가 생각만큼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면 어떨까?
(3) 시장 파괴의 주범은 기술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파괴를 자행하는 주체는 신기술이 아닙니다. 진짜 파괴자는 소비자입니다.
따라서 기존 기업들은 기술이 아닌 다른 종류의 혁신에 힘써야 합니다.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변신이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시 말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누구로부터 어떻게 가치를 확보하는지를 말해줍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객에 대한 심층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특히 고객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택하는 주요 단계, 주요 활동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고객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객 관점에서 시장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 디지털 디스럽션이라는 해일의 전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소매 판매, 전기통신, 엔터테인먼트, 소비재, 공업, 서비스, 운수업 등을 모두 관통하는 새로운 흐름이 보입니다. 업계의 전통 기업들은 그동안 고객이 상품과 서비스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행하는 소비 활동을 모두 또는 대부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들 기존 회사는 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거치는 모든 절차를 한 덩어리로 묶어 하나의 사슬처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신생 기업들은 이 사슬을 끊어내어 고객에게 하나 또는 일부 활동만을 충족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면서 나머지 활동은 기존 기업들이 충족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소비 사슬을 끊어내는 과정을 ‘디커플링(decoupling)’ 이라 부릅니다.
신생 기업들은 디커플링을 통해 시장에서 기반을 구축하고, 고객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충족시켜 가며 성장합니다. 이를 ‘커플링(coupling)’이라 부릅니다.
처음의 디커플링과 뒤이은 커플링은 신생 기업이 기존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빼앗아 올 수 있게 해줍니다. 간단히 말해 신생 기업은 교란자 내지 파괴자가 되는 것입니다.
(4)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 이론.
이 이론은 보통 소규모의 또는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진입 기업이 ‘파괴적 기술’을 사용해서 시장에서 자리 잡은 기존 기업을 앞지르는 변화 내지는 전개 상황을 말합니다.
크리스텐슨의 이론은 기존 기업이 자사에게 가장 유익한 고객에 초점을 맞추어 제품을 향상시킨다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존 기업은 일부 고객층의 욕구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고, 다른 고객층의 욕구를 무시합니다. 이런 상황은 도전 기업들에게 시장의 낮은 쪽으로 진입해서 기존 기업이 간과하는 고객들을 목표로 삼을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더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존 기업은 시장의 고급 부분에 집중하면서 저급 부분을 공략하는 도전자를 처음에는 무시합니다.
신생 진입 기업들은 점차 고품질 제품 공급 능력을 키워가면서 결국에는 고가의 고급 제품 시장으로 이동합니다. 신생 기업은 여전히 저가의 저품질 시장에서 완전한 주도권을 유지한 상태에서 동시에 고가 시장에서 기존 기업과 경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수의 고객이 대량으로 신생 기업으로 옮겨갑니다.
이 현상은, 기존 기업이 어느 순간 무시하던 파괴적 기술(또는 혁신)을 도전 기업이 사용할때에만 발생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예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 제조사에 의해 발생한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미니컴퓨터 제조사의 붕괴입니다.
그러나 ‘도전 기업의 제품 품질을 기존 기업 아래로 하는 것, 품질 상승 각도를 어느 순간 커지게 하는 것,
기존 기업의 대응 방식에서 제품 특성이 근본적인 기술 때문에 향상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들이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 이론을 기술하는 세 가지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