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학기가 막을 내렸다. 성적에만 연연하며 이리저리 치이고 되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쉬는 날도 없이 달려왔던 3개월의 기억들. 내가 만든 작품을 남이 만든 작품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재능이 없다고 치부하며 핍박했다. 또한 갑자기 파도가 쑥 밀려오는 것처럼 우울도 예상치 못하게 밀려왔는데, 그것은 내가 조절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받아들여야 했고 버텨내야 했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되는 내가 비정상같이 느껴졌다.
한 달에 아르바이트로 50만 원을 번다면 그중 생활비로 40만 원이 빠져나갔다.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비싼 외식을 줄이고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통신비, 교통비, 식비 등 매달 나가야 할 돈이 많았으며 다 청구하고 나면 시중에 남은 돈은 10만 원 언저리뿐이었다. 사실상 내년에 입대하기 전까지 1000만 원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쳐있던 내 삶에 변화가 절실해 보였다.
여느 때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피드에 홍콩의 야경을 담은 동영상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너무 황홀해서, 이 풍경을 작은 휴대폰으로밖에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서러워서, 나도 저 아름다운 곳에 있었으면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영화 입시를 준비하면서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타락천사>라는 영화였는데, 영화 속에서 보이는 세기말 홍콩의 분위기는 섹시함의 극치였다. 차로를 거세게 활보하는 새빨간 홍콩 택시, 늦은 새벽에도 꺼질 기미가 안 보이는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 우중충하고 휑한 홍콩의 지하철역 장면을 보곤 처음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가 생겼다. 그곳이 바로 홍콩이었다.
그래서 항공권을 예매했다. 가격이 얼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늘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던 홍콩에 실제로 갈 수 있다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바로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게 큰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너 혼자 그 위험한 곳에 어떻게 가려고 그래?”
“내가 아는 사람이 홍콩에서 장기매매 당했는데 가지 마”
이런 싸늘한 반응에 자신감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한순간의 두려움으로 여행을 포기하게 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결정에 번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밀어붙였다. 누가 뭐라 하든, 설령 그 대상이 가족이라 하더라도.
2개월이 흘러 7월 3일. 드디어 나는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조그마한 필름 카메라 3개와 일기장과 펜을 들고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
있잖아, 나는 혼자 해외여행을 한다는 행위가 정말 대단한 도전이라고 여겼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혼자 가냐고,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 줄 알았지. 그런데 그건 내 상상일 뿐이었어. 공항에는 나 말고도 혼자 온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거든. 그냥 조금 용기가 필요했던 거야.
비행기에서 창밖의 푸른 구름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는 구름 같은 거라고. 그 자리에 평생 존재할 수만은 없는 거라고. 갑자기 바람이 불어 구름이 나에게 올 수도 있는 거라고. 그때 그 인연을 붙잡으면 된다고. 자유롭게 하늘 위를 거니는 구름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몇 시간 뒤, 내가 홍콩의 땅에 밟는다고 상상하니 막 미칠 것 같았다.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서 나를 그곳에 데려다 달라는 바람 단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