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동화 속 세상
동생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시설 장애인을 사회일원과 함께 하는 정책? 시책? 의 흐름에
편승하여 거진 1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자립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사실 말만 자립이지 동생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복지사선생님들과 활동보조사 선생님 그리고 나와 엄마가 항상 동생을 예의 주시해야만 했다.
시설에서 나와 처음에는 자립 연습 주택에서 2~3명의 발달 장애인들과 지내게 되었다.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생보다 나이가 많았고
부모나 형제들이 그들을 찾지 않은지 오래된 사람들이었다.
부모나 형제가 찾아 주는 사람은 시설에서도 자립 연습 주택에서도 동생이 유일했다.
그들을 자신이 버려져서 슬프다거나, 부모가 그립다거나 하는 일반사람이 느끼는 감정들을
대부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런 감정들을 모른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설에서 나올 때부터 자립 연습 주택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동생에게 설명을 해주는 전담 복지사 선생님이 따로 계셨다.
동생이 자립에 어느 정도 적응할 동안 가족이 없는 발달장애인들과 같이 생활하기에
엄마와 나에게 직접 만나는 것을 자제하고 멀리서 지켜봐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엄마는 가까운 거리에서 동생을 마음껏 지켜보시는 것 많으로도 너무 행복해하셨다.
코로나가 극심할 때였다. 동생은 활동 보조 선생님과 마스크를 쓰고 복지관을 가기도 하고,
시장을 가거나 슈퍼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동생은 행복해 보였다.
자신 소유의 핸드폰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동생은 기분이 좋다라든지,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시설에 있을 때는 이런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 시설로 데려다줄 때마다 시설로 돌아가기 싫어서
울고 떼쓰던 동생이었는데,
시설에서 나와 자립이란 것을 하게 되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동생이 시설에 가기 전에는 일부 사람들은, 동생과 같은 발달 장애인들을
전염병 환자같이 대하거나 가까이하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존재같이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이유 없는 폭력을 가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족들이 그런 광경을 보게 된다면, 그 심정은 상상이상의 스트레스에 직면하거나
이성적인 사고가 멈춰버린다든지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아마 엄마가 이런 상황들 속에 가장 많이 직면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이 시설생활을 하는 25년 동안 사회도 복지정책도 사람들도 그리고 동생도 많이 달라져있었다.
발달장애인을 대하고 바라보는 시선도 좋은 방향으로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동생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나는 세상에 빚을 지는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말자면,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악하고 나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요즘도 물론 악하고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동생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니, 엄마도 나도 덩달이 기분이 좋아졌다.
자립 연습주택에서 가끔씩 동생을 만나러 가면
더 이상 나와 엄마가 필요가 없다고 하는 동생을 보면
서운한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시설에 있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와 엄마를 찾더니...
(동생은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와 나를 찾는 경향이 있다.)
몸은 나이가 들었어도, 언제나 3살 같은 동생은 마치 동화 속에서 사는 것 같았다.
행복해하고 매일같이 웃고,
더 이상 동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