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나의 두 번째 회사 '교육업' 이야기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경력 없는 신입'은 참 입사하기 힘들었다.
1년 2개월의 경력이 합격률을 조금이나마 높여주었고
두 번째 회사, 교육업에 최종합격과 함께 입사하게 되었다.
건설업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였다. '부장님', '과장님'등 직급체계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던 반면,
교육업은 '매니저님'으로 서로를 부르며 훨씬 수평적인 조직 구조였다.
나는 곧 있을 퇴사예정자 대체로 입사하게 되었다.
나의 전임자는 10년 이상의 장기근속자였고, 전임자가 맡았던 업무와 더불어
추가적인 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1년의 중고신입 경력이 있으니 처음보단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중고신입답게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짬밥 무시 못한다'는 말....
10년 장기근속자의 업무속도를 따라가기에 너무나 벅찼다.
입사 후, 인수인계를 약 2~3일 받고, 난 혼자가 되었다.
10년 장기근속자의 업무량에 추가적인 업무들을
고작 1년 중고신입이 맡게 되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었구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냥 '잘 해내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혼자 애를 써도 알 수 없는 부분 투성이었다.
10년 동안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일을 하게 될 경우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오류가 많았고 자료가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관습으로 인해 반복되는 비효율적인 업무와 프로세스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같은 팀원에게 물어봐도 그 담당자가 했던 일이라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신고기간은 다가오는데 일의 진도가 더디고,
잘 처리하고 있는 건지 불안하기만 했다.
결국 나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두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협업을 하던 팀에게는 과거에 어떻게 진행했었는지 물어봤다.
"아니 인사팀일 아니에요? 인사팀에서 몰라요?"
"이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요? 거기서 하던 거 있을 것 아니에요"
차가운 대답들과 짜증 나 죽겠다는 시선들. 하지만 그들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사팀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맞았고 우리는 모두 본인의 업무도 바빴기에 그 반응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말 친절히 알려주고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고마운 사람들도 많았다.
1년 정도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위기였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
정시 퇴근을 한 기억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야근의 연속이었다.
정말 힘든 1년이었다. 너무 힘들어 남들 몰래 많이 울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다.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렇게 1년 후 나는 빠르게 승진하게 되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확실히 보는 눈과 생각이 넓어졌다.
업무처리에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지속되는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해 야근은 계속됐다.
나는 사무실에서 항상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이었다.
결국 정문이 닫혀 지하를 통해 나가고 막차는 끊겨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때로는 창고에서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연봉협상을 맞이했다.
그러나 보상은 나의 믿음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이루어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번아웃의 징조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고민 끝에 나의 두 번째 회사의 막을 내려야겠다 결심했다.
사실 사람이 퇴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이유만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두 번째 회사의 막을 내리기로 결심한 이유도 다양하다.
① 과중된 업무량과 근로시간, 내가 없는 삶
어떻게 보면 확실히 많은 업무를 해내며 성장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 2년 1개월이라는 재직기간 동안 정시 퇴근을 하고 나의 삶을 가졌던 날이
한 달 일수도 채 되지 않는다면? 주말출근 공휴일 출근도 불가피한 일이 자주 있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겠는가.
② 가족기업의 단점
가족기업.. 제대로 된 평가체계나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쉽지 않았다.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많았으며 리더십 평가를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결국 다치는 사람만 다치게 되었다.
③ 가장 아까운 비용 '인건비'
인건비, 임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 행사비용과 같은 것들을 제일 아까워했었다.
임금 또한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④ 일부 리더의 성인지감수성 부족
입사 후 첫째 주에 들은 말 중 하나는 '얘는 그래도 날씬하네, 전임자는 너무 뚱뚱했어. 보기 좋다'였다.
잠시 께름칙하였지만, 하지만 어렵게 다시 취업한 직장인만큼 흘려들었다.
그러나 저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졌었다.
⑤ 내 발전은 내가 챙겨야 한다.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나 정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예를 들면, 임금의 정확한 개념이나 법적용어들이다. (생각보다 HR업무에서는 관련된 많은 법률들을 접하게 된다.) 능력 있는 오랜 무명배우가 언젠가는 빛을 발휘하듯 반대로 빛 좋은 개살구도 있기 마련이다. 후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⑥ 새로운 도전 '근로감독관'
근로감사들을 대비하면서 알게 된 직업이었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HR이라는 직무에 대해서도 더 깊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2년 1개월 재직 끝에, '근로감독관'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