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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성희 Nov 28. 2024

추억은 음악으로 흐른다

한 사람을 생각할 때면 그 음악이  떠오른다.  

 늘 건망증 환자처럼 살지만 머릿속 희뿌연 안갯속에서 기억이란 아이는

 " 나 여기 있소 " 얼굴을 드러난다

 까만 밤 얄상한 달빛 미소를 짓기도 하고,

 흙먼지 나부끼는 광야에서 꽃잎처럼

 춤을 추기도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내 마음에

들어 와 펄럭대고 있다.

기억 속에 나는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POKO  'Sea of  Heartbreak' 


  스물둘의 나와 그 친구 모습이 보인다.

 종각 지하상가를 건넌다. 

지하 입구에서부터  노래가 들린다.  

계단을 내려서서 두어 개 가게를 지나면 레코드 가게가 보인다.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 노래가 반갑다.

나와 친구 둘이 걸음을 멈추며

'상심의 바다에 빠진다.

가사를 외웠는지 따라 부르고 있다.

유리 진열장에 비친

우리의 앳된 얼굴이 비춰 보인다.  

 

친구는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힘겹게 외삼촌네 지하방에서 아픈 엄마와 산다.

간신히 대학입시를 치러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외삼촌에게 입학금만 지원해달라 매달렸다.

같은 해 함께 입시를 본

외사촌은  낙방을 했다.

자기 아들에 낙심한 삼촌은

조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울며  애걸복걸 매달리는 친구에게

입학금을 빌려주지 못한다 했다.

결국 그해 입학을 포기했다.

몇 년의 고생 끝에

간신히 등록금을 마련하고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신입 특전 장학생으로 뽑혔다.

 

온갖 알바를 하며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우리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는 듬직한 아이.

  

상심의 바다에 떠있는 배는 그 애다.

나는 그 애 모르게 그 애를 바라본다

투명하게 처연한 눈동자가

그의 눈물보다 슬프게

내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동안 흘린 눈물을 모두 담아

고운 보자기로 감싸서

오래오래 품어 주고 싶다.


언젠가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신이 더 사랑하는 존재에게

강한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고,

 

네가 겪는 지금의 시간

고난이란 포장지에 싸인

보석같은 미래라는 

신의 선물이야

  

지금 생각하니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창하고 근사하기만

실감 없는 말을 건넸는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다.

 

위로가 되었을지

안되었는지도

의미의 언저리라도 다가갔을지 모른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대단한 위로를 주었다고

믿고 뿌듯했다.

 

사실 위로의 문장은

몇 날 며칠 숙면포기할 정도로

준비한 어구였고 내가 줄 수 있었던

최선이었으니까!   

  

무심한 인간들이 오고 가는 길에서 들리는 감성 어린 이 노래가 울려 퍼질 때

 너는 위로가 되었기를 바랐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았냐고 묻고 싶다.

 

가끔 그 애가 그립다.

사느라 , 이사하느라,

연락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평생 친구로 남아있겠지

 

백 마디 말보다 얼굴을 마주한 채

말없이 향긋한 차를 함께 홀짝이거나

 

한낮의 아줌마들처럼

푸짐한 밥을 나누며  과거를

잊어도 좋을 만큼

무심하게 만나

무심하게 다음을 기약할 텐데.   

   


* 양희 '한계령'

  

아침에는 늘 안개가 잦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구름 속 같은 학교를 오른다.

3학년 전공  시 수업시간이다

내가 보인다.

강의실은 문과대학 2호관 10층이다.

14층 건물이 산 앞에 삐쭉하니

 육삼 빌딩보다 높게 서있다.  


창밖은 언제나처럼

안개로 가득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시간처럼 


9시 수업이 15분이나 지나서야

조교와 함께 오늘의 교수님

신** 시인이 등장하신다.

 학생들의 인사를 받고

창가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안개보다 더 이해 못 할 한숨을 쉰다.

 

마지막 숨은 다음 말을 이어가려고

천천히 천천히......


우리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은 채

교탁으로 돌아와 책을 모아 든 채

"오늘  이런 기분으로 수업을 못하겠다."

탄식과 환성이 울려 퍼진다

탄식은 여학생들,

환성은 남학생들.


여학생 무리는 공강시간을

어찌 보낼지 두런대며

1층 로비 휴게실을 지나 도서관으로 

남학생들은 탁주집으로

우르르 몰려 나간다

  

2호관 앞은  

잔디광장이 넓다.

시위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장소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동급생 몇몇의 얼굴도 보인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무슨 수업이냐고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보는데

죄 없는 마음에 비수가 꽂힌다.

 

정권타도 현수막이 빨간 얼굴로

바람에 펄럭대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시험도 출석도 거부하며

학교에 시위하러 등교하던 친구들이

매캐한 체류탄 연기와

안개와 함께 사라진다.

 

부모님의 땀이 담긴 등록금을 내고

부모와 미래를 위해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가는 학생도

가물가물하게 안개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도 때도 없이

개인적 정서에 심취해

뻔뻔하게 휴강을 내뱉는

허울만 멀쩡한 지식인들을

안주삼아 탁주에 비틀대는

학생들이 있는 곳이

86년 우리가 다니는 학교다.


안개 가득한 한계령보다

앞을 예측하지 못할 불온한

시간에 갇혀있다. 


그때 친구들, 학형들, 선배들 모습

교정에 흐르던 이 노래가 아직도

내 귓가에 들린다.

아쉽고, 아련하고 아주 그립게 남아있다.

    

 추억 속의 음악은 한 편의 그림이다.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슬프게도  특별하게도 남는다.

보는 이의 해석에서 일까?

마음 속  잔상으로 남아있는

정서와 부합되어 자신만의 빛깔로

평가하고 존재하게 된다.  

  

살면서 많은 노래와 경험이 교차된다.

모두 빛으로  눈물로 남았다

이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살아도 살아도 인생이 몰라서

다시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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